엄동설한이라는 말을 쓰기가 무색해지는 날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래도 겨울이다. 겨울 기온은 아무리 따뜻하다고는 하나 작물이 생육하기에는 부족한 온도다(대부분의 작물은 5℃이하에서는 생장이 정지된다). 그래서 월동작물들은 겨울 동안 지상부의 성장보다는 뿌리나 생장점의 활력을 유지하고 강화시키는 전략을 취한다. 이미 자란 잎들은 생장이 정지된 채 뿌리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마늘, 양파 잎이 한겨울 동안 누렇게 말라가는 건 이런 까닭이다. 따라서 마늘 양파의 잎 색깔을 보면 추운 지역인지 따뜻한 지역인지, 그해 겨울이 추웠는지 안 추웠는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 작년 11월 7일 심은 마늘, 양파밭 모습
▲ 중만생종 양파. 지금 쯤이면 겉잎이 시들어 없어지는데 올해는 아직 푸른 색을 유지하고 있다.
▲ 중만생종 양파. 위의 사진은 피복한 짚이 두꺼워서 잘 표가 나지 않는데 왕겨를 뿌린 이 사진과 비교해 보면 잎색이 선명함을 알 수 있다. 추운 해에는 지금 쯤이면 지상부의 잎은 거의 시들어 누렇게 변한다.
▲ 한지형 마늘 모습. 잎이 파릇파릇하다.
작년 11월 7일경 심은 한지형 마늘, 중만생종 양파 모습이다. 이 밭은 남쪽이라고는 해도 지리산 자락의 끄트머리라서 그런지 최저기온이 동위도상의 다른 지역보다 꽤 낮은 편이다. 요즘 같은 경우는 영하 7~8℃ 정도는 우습게 내려간다. 물론 이런 날에도 낮 기온은 영상 10℃를 오르내리고 있다. 예년 같으면 낮에도 영하의 기온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올해는 겨울 치고는 일교차가 큰 편이다. 이런 일교차가 마늘, 양파의 생육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자못 궁금한데 예년과 비교해 지금까지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는 지상부의 잎색이 아직 푸르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1월 중순이면 양파는 푸른 잎이 거의 보이지 않고 마늘은 잎 끝이 누렇게 변해야 하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은 것.
▲ 마늘밭 앞쪽. 한 사람은 왼쪽에서 한 사람은 오른쪽에서 풀 정리를 했더니 가운데만 남았다. 하루 정도는 더 해야 마무리 될 것 같다.
▲ 과실나무 심은 곳. 잘 가꾸지 않으니 해마다 풀밭으로 변하기 일쑤다.
▲ 고구마밭. 멧돼지 때문에 두어 해 놀렸더니 완전 풀밭으로 변했다. 올해는 무엇이든 심어야 한다.
날씨가 따뜻하건 아니건 지금은 마늘, 양파 밭에 특별히 할 게 없다. 짚과 풀로 두껍게 멀칭한 덕분에 풀도 잘 보이질 않으니 김매기도 필요 없고 웃거름을 줄 시기도 아닌 것. 대충 둘러보고는 작년에 묵혔던 밭과 과실나무 주변의 풀을 정리했다. 심한 곳은 풀들이 사람 어깨 높이까지 자라 있다. 한 해만 묵혀도 이러니 아무리 좋은 밭이라도 놀리면 쑥대밭 되는 건 일도 아니다. 밭 한 귀퉁이에 해마다 고구마를 심어 먹다 멧돼지 때문에 두 해를 놀렸더니만 잡풀이 우거져 고라니들의 놀이터가 돼버렸다. 올해는 뭐라도 심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풀이 아니라 나무까지 자랄 지경이다.
▲ 고라니에게 알뜰하게 뜯어 먹힌 시금치
▲ 밭 한 귀퉁이에서 자라고 있는 목련. 꽃 몽우리가 맺히고 있다.
주말 동안 풀 정리하면서 보니 밭 군데군데가 온통 고라니 똥이다. 지금 이 밭엔 마늘, 양파, 대파 외엔 지들이 먹을 거라고는 시금치밖에 없는데도 풀 속에서 뒹군 흔적들이 여러 군데 나 있다. 덕분에 사람 먹으려고 심은 시금치는 채 자라기도 전에 고라니들의 밥이 되고 있다. 이럴 줄 알기에 다른 겨울 채소를 심지 않았던 것이긴 하지만 멧돼지, 고라니 등쌀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울타리를 치지 않고서 지을 수 있는 농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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