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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일상

산책길에서 만나는 다도해 풍경

by 내오랜꿈 2015.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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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 이내에 제법 괜찮은 산들이 서너 개 있다. 팔영산, 천등산, 마복산... 팔영산이야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도 이름을 올리는 산이니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테고 천등산이나 마복산도 산객들에게는 꽤나 알려진 산이다. 천등산은 봄철 철쭉이 필 때면 전국의 관광차가 몰려들 정도로 붐비는 산이고 마복산은 주말마다 등산객들이 꾸준하게 찾는 산이다. 어느 산이나 정상에 오르는 길에서 탁 트인 남해 바다를 볼 수 있으니 그 눈맛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즐겨 찾게 되는 것 같다.


일요일 오후.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늘 가던 이 산들이 지겨워 집에서 매일 쳐다보는 산으로 산책을 나섰다. 유주산. 3년 전에 한 번 간 적이 있는 산인데 우리 집 쪽에서 정상 가는 길은 긴 능선길이지만 반대편으로는 급경사 너들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3년 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정상에서 이 너들지대 쪽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엄청 고생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는 삼순이도 데리고 갔었는데 다섯 시간 넘게 걷고 나서는 집에 와서 바로 드러눕던 삼순이가 새삼 그리워진다.




집을 나서 십여 분 지나면 바로 산행길이다. 유주산의 북동쪽 사면을 오르는 코스인데 산행길 초입부터 참나무 종류를 비롯한 이런저런 낙엽들로 덮여 있다. 이쪽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좀 급한 곳이 몇 군데 있다는 것 말고는 특별히 어려운 구간은 없다. 조금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쭉 능선길이다. 정상 쪽 봉우리가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인지 몰라도 능선길의 대부분은 참나무 같은 낙엽송이 우점하고 있다. 정상에 가까운, 바다가 보이는 능선길에 오르고 나서야 소나무들이 보인다. 거의 대부분 해송들인데 중간중간 적송이나 리기다소나무도 눈에 들어온다. 한 곳에서 세 종류의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걸 보는 게 그리 흔한 건 아닐 것이다.



▲ 유주산 정상 봉수대

▲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다였을 간척지. 저 멀리 나로도가 보인다.

▲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섬들은 거문도의 부속섬들이다. 이곳에서 거문도까지는 직선거리로 40~50Km 정도다.

▲ 지죽도 인근의 김 양식장.


그렇게 1시간 30분이면 정상에 닿는다. 거금도 적대봉에서 시작해 이곳을 거쳐 마복산으로 이어지던 봉수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른쪽으로는 거금도, 왼쪽으로는 나로도를 사이에 두고 김 양식장으로 유명한 지죽도가 자리한다. 지죽도 앞 쪽으로는 멀리 거문도의 부속섬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아마도 손죽도나 소거문도가 아닌가 싶다. 여기서 거문도까지는 직선거리로는 40~50Km 정도밖에 안 될 텐데 거문도를 가려면 네 시간 가까이 걸린다. 여수로 가서 배를 타야 하는 까닭이다.



▲ 정상에서 내려다 본 구암마을. 땅끝에서 산속에 들어앉은 모양새의 꽤 큰 마을이다.

▲ 우리가 가는 곳은 언제나 따라다녔던 삼순이


집에서 정상까지 이어진 완만한 능선길과 달리 유주산의 남쪽 사면은 급경사 너덜지대다. 군데군데 돌들이 많은 까닭에 오가는 사람들이 쌓은 돌탑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유주산 높이가 해발 416 미터인데 산 밑은 제로 미터일 터이니 산 아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건 꽤나 가파르다는 걸 의미한다. 게다가 따로 정해진 등산길도 나 있지 않다. 이런 너덜길을 개를 데리고 내려갔으니 그 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음은 자명한 일. 3년 전, 이 너덜지대로 내려갔다 5시간 30분 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같이 갔던 삼순이가 집에 오자마자 쓰러지다시피 했던 기억이 새롭다. 개도 오래 걸으면 녹초가 될 정도로 피곤할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몸으로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물 한 병 달랑 들고 나선 산행길. 어쩌면 좀 거친 산책길 정도라 할 수도 있는 코스다. 왕복 세 시간이면 넉넉하게 다녀올 수 있는 산. 눈 앞에 보이는지라 매일 쳐다보는 익숙한 풍경이기에 잘 오르지 않던 산이지만 앞으로는 자주 오르게 될 거 같다. 집에서 걸어 나와 오르는 산에서 운동도 하고 탁 트인 남해 바다의 풍광도 볼 수 있다면 안 갈 이유가 없는 셈이니까. 지금까지 자주 가지 않았던건 아마도 3년 전의 그 안 좋았던 기억 때문이었으리라. 그 기억은 이제 밀봉되어 봉인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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