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고 연탄 들여놓으면 겨울 준비 마쳤다고 하던 때가 불과 30~40년 전이다. 어느 정도는 '생존'의 필수 조건이라는 뜻마저 포함하고 있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비록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김장은 여전히 겨울나기 준비의 핵심이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는 그렇다. 달랑 두 식구 먹는 김장인데 해마다 배추만 해도 오십여 포기씩은 하고 있으니 생존의 필수조건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햇볕 보기가 어려운 탓에 이리저리 재다가 날을 잡은 게 이번 주말이다. 11월 내내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였지만 기온만은 따뜻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랬다고 며칠 전부터 온도도 뚝 떨어지고 바람도 심하게 분다. 햇볕 좀 보고 김장하려다 추운 날씨속에 고생만 하게 생겼다.
작년까지는 텃밭의 배추 크기가 들쭉날쭉한 탓에 쓸데없이 포기 수가 많아 일만 많은 편이었는데 올해는 대부분 적당한, 어쩌면 내가 원하던 크기보다 더 크게 자랐다. 그래서 올해는 작년보다 열다섯 포기 정도 줄인 45포기만 수확해서 다듬고 절이는 작업에 들어간다. 나는 너무 속이 꽉 찬 배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배추를 가르면서 칼을 넣어 보니 무거운 느낌이 드는 배추가 꽤 있다. 칼이 무겁게 들어간다는 건 배추 속에 빈틈이 별로 없이 밀도가 높다는 뜻이다. 이는 수분을 그만큼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 안 주고 키운 두 달의 노력이 늦가을 장마에 물거품이 되었다는 게 아쉽기만 할 뿐이다.
배추 절이는 작업은 몇 해에 걸쳐 이런저런 방법을 써 봤는데 작년부터는 김장용 비닐봉투에 하는 걸로 결론내렸다. 굴리기도 뒤집기도 편해서 절이는 시간도 단축되고 해체하기도 편해서 씻는 시간도 줄여주는 것 같다. 다만, 단점이라면 막 굴리다간 비닐이 터질 수 있다는 것. 10시간 정도 절인 다음 씻어 건져 내는 것까지 마치니 새벽 두 시다. 나름 아침부터 시작한다고 움직였는데 멸치 액젓 달이고 거르는 작업을 병행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여기까지가 오롯이 내가 할 일.
절이는 중간중간 옆지기와 함께 김장소에 들어갈 마늘을 까고 생강과 쪽파를 다듬고 찹쌀풀을 쑤고 다싯물을 만드는 등 양념 준비도 곁들인다. 전부 직접 재배하거나 담근 것이지만 생새우와 청각은 따로 과역장에 나가서 구입했다. 도저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다.
김장은 사실 양념소 만들어 버무리는 과정보다는 그 전에 준비하는 과정이 더디고 힘들다. 하루 온종일 준비한 재료를 가지고 막상 사십여 포기 절임배추에 양념 버무리는 건 세 시간 남짓이면 끝이다. 그것도 김치통과 항아리에 넣는 작업까지 포함해서. 전부 김치냉장고 용기 8통과 25L짜리 항아리 하나에 들어갈 양이다.
이틀간의 노동에 대한 댓가는 돼지 목살 보쌈에 막걸리 한 잔. 소박한 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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