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액젓갈 담근 지 1년 반이 지났다. 멸치 젓갈은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밀폐 조건에서 보관하면 오래 묵힐수록 좋다. 그러나 아주 고염도로 담근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1년 정도면 멸치살이 가수분해되어 액젓으로 변한다. 염도를 낮추거나(20% 이하) 고온 조건에서라면 4~6개월만에도 액젓은 완성된다.
몇 년 전에 담궈서 먹고 있던 젓갈이 떨어졌기에 김장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이 걸러 내야 한다. 액젓 거르기는 아주 간단한 작업이면서도 자잘한 손이 많이 간다. 기름기가 많은 까닭에 최소한의 도구를 사용해 뒷처리 거리도 최대한 줄이는 게 좋다.
▲ 2014년 6월, 40Kg의 멸치를 두 통에 나눠 액젓을 담그다.
▲ 담근 지 1년 6개월 지난 멸치 액젓.
▲ 액젓을 받을 그릇 위에 채망을 올려 놓고 한 국자씩 퍼서 저어가며 걸러 낸다.
멸치 젓갈은 용도에 따라 두 가지 방식으로 걸러 낸다. 액젓 찌꺼기가 들어 있는 탁한 형태 그대로 보관하기도 하고 걸러낸 액젓을 창호지나 광목천을 받쳐서 한 번 더 걸러 내 맑은 액젓으로 보관하기도 한다. 김치 등을 담글 때는 주로 탁한 액젓을 사용하고 무침이나 국 같은 요리에 넣을 때는 맑은 액젓을 사용한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한 만큼 액젓 원액을 떠 내고 적당한 비율로 물을 혼합하여 한 번 달여서 맑은 어간장을 만들기도 한다.
내 어릴 적, 고향집에서는 젓갈이 어느 정도 삭았을 때 용수를 박아 맑은 액젓을 떠 내고 남은 찌꺼기를 물과 섞어 달인 다음 다시 걸러 낸다. 아마도 젓갈 찌꺼기들을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으리라. 멸치 젓갈 달이는 날에는 온 집안에 구수한 냄새가 진동한다. 동네 어귀만 들어서도 오늘 어느 집에서 젓갈 달이는 날인가보다 생각할 정도로 그 냄새는 멀리 퍼져 나간다. 하지만 별다른 콩고물이 떨어질 것 없는, 냄새만 요란한 잔칫날이기 일쑤였다. 기껏해야 남새 가득 뜯어 쌈 싸 먹는 정도랄까. 요즘은 상추 같은 쌈을 먹을 때 된장과 고추장을 섞은 쌈장을 주로 먹지만 내 고향 동네에서는 거의 멸치 액젓 양념장으로 먹었다.
▲ 멸치 액젓 원액. 주로 김장속 만들 때 넣는다.
두세 시간 작업했을까? 진한 액젓 원액 5병을 만들었다. 서너 병 정도는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병입은 여기서 마무리. 올해는 멸치 젓갈을 달여 맑은 어간장을 만들 생각이다. 무침이나 국 같은 요리에 사용하면 국간장보다는 훨씬 더 풍부한 맛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액젓 원액이 남아 있는 게 좋기 때문이다.
이제 젓갈 달여서 한 번 더 거르는 일만 남았다. 내일은 날씨가 어떠하든 따듯한 아궁이 불 쬐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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