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의 계절이 돌아왔다. 바닷가 근처에 사는지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해산물을 접할 수 있는 편인데, 굴만큼 손쉽게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는 것도 드물다. 생굴 그대로 먹어도 되고 무침으로, 구이로, 전으로 먹어도 된다. 국이나 밥에 넣어도 되고 젓갈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무얼 만들든 별다른 손질도 필요 없다.
우리 나라에 유통되는 생굴의 70% 가까이는 통영 앞바다에서 생산된 굴이다. 통영굴은 종패가 붙은 줄이 연결된 양식용 지주가 조수간만에 관계없이 24시간 바닷물 속에 잠겨 있는 상태에서 키운 굴이다. 따라서 밀물 썰물에 따라 지주가 드러나는 지방에서 키운 굴보다 알이 굵다. 여수나 고흥 등 다른 남서 해안지방에서 양식되는 굴은 양식용 지주가 조수간만에 따라 물에 잠겼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굴은 물에 잠긴 시간이 길수록 알이 굵어진다. 곧 통영에서부터 여수를 거쳐 태안반도에 이르는 동안 굴의 크기는 점점 더 작아진다. 작은 만큼 더 자연산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격도 일반적으로 작을수록 더 비싸다.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굴이 무조건 좋은 굴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굴에 대해 그만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 굴전 1. 계란물만 입혀 부친다.
▲ 굴전 2. 무를 채 썰고 굴과 매생이를 넣어 부친다.
▲ 굴초무침.
▲ 굴뭇국
▲ 굴콩나물밥
내가 사는 지역에서 유통되는 굴은 대부분 여수 돌산도나 나로도 인근 양식장에서 자란 굴이다. 통영굴보다는 조금 작고 자연산 굴보다는 조금 큰, 중굴 크기의 것이다. 이 중굴로 올가을 들어 처음으로 굴 잔치를 벌인다. 굴전, 굴무침, 굴뭇국, 굴밥 그리고 굴김치까지.
굴전은 굴에 계란물만 입혀 그냥 부칠 수도 있고 무를 채 썰어 굴과 매생이를 넣고 부칠 수도 있다. 굴무침은 무를 채 썰어 초무침을 만든 뒤 생 배춧잎에 싸 먹으면 막걸리가 술술 들어간다. 아침은 굴뭇국, 점심은 굴콩나물밥. 이런 식으로 주말 이틀을 굴 음식으로 도배를 한다.
▲ 굴김치. 특별한 건 아니고 겉절이 김치를 만들어 굴을 넣는 것 뿐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굴김치까지 만들었다. 텃밭에서 한창 알이 들고 있는 배추 두 포기와 돌산갓을 뽑아 겉절이 김치 식으로 절인 뒤 김장 양념소를 만들어 버무린 것. 여기에 생굴을 섞는데 굴 넣은 김치는 오래 보관하기 힘든 까닭에 한두 번 먹을 분량에만 굴을 넣는다.
굴은 사실 한꺼번에 많이 먹기는 힘든 음식인데 국, 전, 초무침에 김치 속으로까지 먹으니 한 번에 너무 많이 먹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까지 하게 만드는 주말이다.
'삶의 여유 > 먹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장, 겨울나기의 시작 (0) | 2015.11.29 |
---|---|
멸치 젓갈 거르기 (0) | 2015.11.27 |
이룰 수 없는 꿈들을 모아 만든 먹거리들 (0) | 2015.11.05 |
고추 순지르기 그리고 고춧잎 묵나물 만들기 (0) | 2015.10.12 |
밤 껍질을 까면서... (0) | 2015.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