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햇볕을 구경할 수 없는 날들의 연속. 무슨 놈의 날씨가 이리도 청승맞을까? '골 빈 년' 하나가 나라 거덜 내듯 잿빛 하늘이 세상을 온통 우중충하게 만든다. 11월에 햇볕 보기가 이렇게나 힘들어서야...
며칠째 거실에 널린 붉은 고추를 보며 원망스런 눈길로 창밖을 보다 한 곳에 눈길이 머문다. 치자나무. 어느새 치자가 붉게 익어가고 있다. 충분한 햇볕을 받았더라면 이보다 훨씬 더 선홍빛 자태를 뽐내고 있을 텐데 멀리서 보니 있는 듯 없는 듯 수줍은 빛깔이다. 아마도 따서 말리면 이보다는 더 짙은 붉은 색으로 변해가리라.
▲ 11월 21일의 고추 모습. 지금 꽃을 피워 어쩌자는 것인지...
날씨만 흐릴 뿐 기온은 그리 낮은 게 아니기에 텃밭의 작물들은 푸르기를 멈추지 않는다. 제대로 말리지도 못 하는 고추 따는 심정은 어떨까? 그렇다고 푸른 고추를 달고 축축 늘어지는 가지를 무턱대고 잘라 내기도 그렇다. 버리지 않는다면 보관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다. 장아찌 담고 삭힌 고추 만드는 등 웬만한 건 다 했으니 냉장, 냉동 말고는 달리 보관할 방법이 없는데 냉장고 용량은 한계가 있으니... 가꾸는 사람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11월 하순에도 한사코 꽃을 피우는 고추를 보고 있으면 서글퍼진다.
배추와 무, 쪽파, 당근은 언제든 뽑아서 김장을 해도 될 정도로 자라 있다. 며칠만이라도 햇볕 쨍쨍하게 쪼이고 난 뒤 담그고 싶은데 기상청 예보를 보니 아마도 그러긴 틀린 것 같다. '골 빈 년' 욕하는 만큼이나 하늘도 원망하게 되는 날들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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