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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농사

비파나무,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다

by 내오랜꿈 2015.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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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보는 모습이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것도 더러 있기 마련이다. 나에겐 비파나무 꽃이 그러하다. 보통의 과실나무는 봄에 꽃을 피워 여름과 가을에 걸쳐 결실을 맺는다. 그런데 비파나무는 늦가을에 꽃을 피운 상태로 월동을 한 뒤 여름에 결실을 맺는다. 아열대성 작물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나 남도 해안가 일부 지방에서만 생육 가능하다. 특히 겨울철 최저기온이 -5℃ 이하로 자주 내려가는 지역에서는 가까스로 생장은 한다 하더라도 거의 결실을 맺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같은 지역이라도 서식지가 남향이냐 서향이냐에 따른 일조량 차이에 의해서도 수확량이 차이 난다고 할 정도로 온도에 예민한 식물이다. 집에서 자라는 비파나무가 한 그루 있기에 이런 사실은 익히 알고는 있지만 겨울 문턱에 핀 비파나무 꽃을 볼 때마다 여전히 낯설다.



▲ 비파나무 꽃봉오리. 원추꽃차례 모양이다.

▲ 2014년 5월 초의 비파나무 열매.

▲ 2014년 6월 중순의 비파나무 열매.


집 마당 한 귀퉁이에서 자라고 있는 비파나무 한 그루. 이사올 때부터 심어져 있었으니 수령은 최소한 9년 이상이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나무인지도 몰랐다. 크기도 작았을 뿐더러 나무나 잎의 생김새도 그리 썩 호감이 가지 않았기에 뽑아버리고 다른 나무를 심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나중에야 이게 비파나무란 걸 알고 여러 자료를 찾아 보니 열매, 잎, 줄기 등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약재로 쓰이는, 한방에서는 꽤나 유명한 나무였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열매 하나 맺지 않은 채로 조금씩 자신의 덩치만 키워가더니 재작년부터 처음으로 꽃을 피워 열매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 가지마다 꽃송이를 키우고 있는 비파나무.


그럼에도 지난 2년 동안은 결실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했다. 기껏해야 두세 송이 정도였으니. 그러나 올해는 가지마다 꽃송이를 피울 태세다. 비파 열매는 어느 정도 자연낙과를 한다손 치더라도 한 송이에 열 개, 많으면 스무 개 가까이 달린다. 꽃송이마다 부처손처럼 생긴 작은 송이가 다시 여러 개 달리는 구조인데 별 탈 없이 이 송이들이 모두 열매를 맺는다면 내년 6월에는 그야말로 비파 풍년이 될 것 같다. 너무 이른 설레발일지라도 마음은 이미 콩밭에서 된장찌개 끓이고 있다.



▲ 2014년 12월에 담궈 2015년 6월에 걸러낸 비파잎 담금주.


작년에는 열매가 얼마 달리지 않아 비파잎을 가지고 술을 담궜었다(비파잎 담금주). 6개월 정도 지나 걸렀는데 향, 색깔, 맛 모두 뛰어난 편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모과주를 연상하면 되는데 색깔은 거의 비슷하고 맛이나 향은 훨씬 부드럽다. 모과 담금주는 특유의 떨떠름한 맛이 있는데 비해 비파잎 담금주는 떫은 맛은 없는 편이다. 아마도 내년 6월에는 비파 열매를 가지고 발효효소액과 담금주를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소박한 꿈 하나를 내 삶에 더 보태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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