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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과 반공의 역사를 미화한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채택했던 학교들이 격렬한 반대 여론에 결국 채택을 철회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역사교과서를 반대하는 걸까. 왜 우리는 ‘친일’과 ‘반공’의 역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걸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일본 사람과 친하게 지내면 안 된다’ ‘공산주의를 반대해선 안 된다’고 가르치려는 걸까. 우리가 친일과 반공의 역사를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그게 실은 민족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그리고 남한에서 소수의 지배세력이 대다수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역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상황, 어떤 방식으로도 소수의 지배세력이 대다수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은 잘못이며, 그런 역사에 굴종해선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건 역사란 단지 과거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현재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역사는 무엇인가. 현재의 지배세력, 현재 한국 사회에서 대다수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박근혜 정권인가. 물론 박근혜 정권이 반공독재의 충분한 자질을 가진 건 분명해 보이지만 ‘오너’는 그 배후에 있다. 더는 함부로 죽이거나 고문하거나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지만 우리 삶을 일제나 반공독재보다 더 속속들이, 가치관과 영혼까지도 지배하는 몸통은 말이다. 그것은 이건희나 정몽구 따위 재벌과 초국적 금융자본으로 대변되는, 자본이다.
현재 교과서의 경제 관련 부분은 철저하게 친자본적이다. 한국 교과서는 내용과 체계에서 미국 경제교육의 표준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독일이나 유럽 교과서들이 노사관계를 자본과 노동의 계급 관계로 접근하는 반면 미국 교과서는 개인과 회사 간의 ‘자유로운 계약관계’로 본다. 한국 초등 교과서의 경제 관련 내용은 신자유주의를 국가의 토대로 하며 ‘국익’과 ‘시장 자유’를 절대화하고 경제발전·경제성장 지상주의를 강조한다. 그로 인한 빈부격차, 차별, 생태 환경 등의 문제는 외면하며 노동의 개념과 노동자 권리에 대한 내용은 없다시피 하다.
이를테면 초등 6학년 교과서엔 이런 내용들이 실려 있다. ‘개인과 기업들이 경제적 자유를 누리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쟁하는 게 우리 경제의 주요한 특징이다.’ ‘경쟁은 개인과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에도 이익이 된다.’ ‘근로자의 불법 파업은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우리나라는 무역 규모가 크지만 무역 상대국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무역 상대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는다.’ 친자본적인 게 아니라 자본의 관점을 대놓고 주입하는 수준이다. 교과서뿐 아니다. 미국경제교육협의회(NCEE)의 한국판인 한국경제교육협회(KAEE·기획재정부 한국은행 한국소비자원 전경련 은행연합회 상공회의소 등이 지원함)를 비롯한 수많은 단체와 소년조선일보, 소년동아 등 온·오프라인 미디어에서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친자본적인 어린이 경제교육을 하고 있다.
▲ “자본의 세계관으로 만들어진 교과서로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다면
정직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세계관 담은
교과서를 만들어야만 한다”
교학사 역사교과서 사건은 역사 교육에 관한 소중한 승리가 틀림없다. 그러나 오늘 지배세력은 친일과 반공이라는 과거의 역사에선 밀렸지만, 현재의 역사와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의 역사에선 우리를 압도하고 있다. 이런 교육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이 제대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까. 대다수 인민이,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대다수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주는 대로 받고 시키는 대로 일하며 모든 걸 ‘자유로운 경쟁’의 결과이자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모자람으로 돌리며, 부자를 우러러보는 실패자로 살아가지 않을까.
오늘과 같은 현실에서 아이에게 현재의 역사에 대해 올바로 가르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명박 박근혜는 물론 김대중 노무현 같은 개혁적 정권마저 별다를 수 없었을 만큼 전능한 자본 독재 치하에서 말이다. 바로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되새기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친일을 옹호하는 사람을 비난한다. 그러나 일제 당시에, 특히 2차 대전 말기의 아비규환의 현실에서 친일은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여겨졌고 일반적이었다. 오늘 우리는 반공을 주장하는 사람은 ‘극우꼴통’이라 비난하지만 반공독재가 한창이던 시절에 대부분의 사람은 ‘북한과 대치하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하곤 했다.
과거의 역사에 올바르긴 쉽다. 그 역사엔 내가 살아가지 않고 삶의 이해관계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올바른 게 ‘상식’이고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역사에 올바르긴 어렵다. 내가 그 안에 끼어 살아가니 눈 밝혀 보기도 어렵고 갖은 이해관계와 불편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지 잊어선 안 된다. 아이들이 이미 자본의 세계관으로 만들어진 교과서로 공부하고 있다면 우리는 대다수 인민,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담은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검정교과서가 당장 어렵다면 대안교과서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결국 검정교과서가 되도록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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