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제, 멀지 않은 유토피아 - 인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기적

인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기적

Dossier 기본소득제, 멀지 않은 유토피아

출처:<르몽드 디플로마티크>[56호] 2013년 05월 13일 (월) 

벵자맹 페르낭데즈  info@ilemonde.com

 

 

<숨겨진 이면의 장소에서> 시리즈,1973-제임스 쿠와나르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에서 2011년 한 여성노동자조합이 무조건부 현금지원 실험을 했다. 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액수는 아니었지만, 개인적·집단적 기획을 활성화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인도 중부 프라데시주(州) 인도르시(市)에서 남쪽으로 30km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판트바도디아 마을. 마을을 가르며 지나는 거친 비포장도로가 종일 부연 먼지바람을 일으킨다. '인도의 심장부'로 통하는 이 광활한 지역은 인도에서 가장 많은 부족민이 메마른 황무지를 터전 삼아 집중적으로 모여 살고 있는 곳으로, 특히 주민들의 영양실조 상태가 심각하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도로 옆 언덕배기, 다른 주택지와 외따로 떨어진 곳에, 마른 지푸라기와 흙을 이겨 올린 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 앞에는 빌족 여인들이 돗자리를 바닥에 펴고 옹기종기 앉은 모습이 보인다. 빌족은 이 구역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종족으로,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내려오는 분류법에 따라서는 토착부족으로, 인도 정부가 취약계층이나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실시 중인 '우대 정책'(원문은 '역차별 정책')에 의거해서는 '지정부족'(Scheduled Tribes)으로 불리고 있다.(1)

마마타바이 펀지라지가 보랏빛과 황톳빛이 감도는 히잡을 고쳐 매며 태양과 먼지는 물론 남자들의 시선이 닿지 못하게 히잡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펀지라지는 인도 정부가 경작지 1비가(Bigha·인도의 토지 면적 단위로, 약 0.25ha에 해당)를 무상 지급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몇 달 뒤 땔감을 구하러 나무 위에 올라간 그녀는 그만 낙상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왼쪽 다리와 손에 골절상을 입고 말았다. "병원비 2만5천 루피(약 345유로)를 내기 위해 갖고 있던 땅을 담보로 5만 루피를 빌렸다. 병원비를 제하고 나니 2만5천 루피가 남았다. 남은 돈으로 땅 0.5비가를 매입했다. 우기에는 옥수수, 겨울에는 콩을 경작했다. 하지만 지난해 제때 비가 내려주지 않는 바람에 농사를 망치고 말았다. 지주에게 빌린 2만5천 루피를 무슨 수로 갚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아동 학교활동 시간 3배 증가

다른 마을처럼 이 마을에서도 높은 카스트 계급과 토지를 물려받은 지주는 주민들 사이에 유일한 고용주이자 채권자 구실을 하고 있다. 펀지라지는 일정한 직업이 없다. 남편은 도시에 나가 날품팔이 생활을 한다. 장남 비노드는 지주에게 고용된 '나우카르'(Naukar)로, 1년에 1만5천루피(약 207유로)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고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한다. 차남 락스만은 부모가 진 빚을 탕감해주는 대가로 지주를 위해 일하는 '그왈라'(Gwala)다. 펀지라지의 딸은 주정부의 지원을 받아 학교에 다니고 있다. 막내아들은 머지않아 제 형처럼 그왈라가 될 날을 기다리는 처지다. 봉건사회에나 속할 이런 노예제도는 인도 정부가 식민지 독립 뒤 막대한 빈곤인구를 구제하기 위해 실시한 모든 빈곤 대책이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 결과 오늘날 인도의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2) 여전히 하루 1유로 이하로 생활하는 국민이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이르는 실정이다.(3)

하지만 판트바도디아 마을에서 실시 중인 한 실험이 빈민층의 삶은 물론 인도의 빈곤 퇴치 정책에도 획기적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이 마을은 '마디아프라데시 무조건부 현금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40년간 인도 저임금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온 노동조합 자영업여성연합(SEWA·Self Employed Women's Association)이 유니세프 인도지부에서 재정 지원을 받아 이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 시범사업의 목적은 "각 가정에 무조건부로 일정한 현금을 지급할 때 나타나는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라고 연구책임자 사라스 드왈라가 설명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사람들에게 모든 소득과 별개로 소액이지만 정기적으로 일정액의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라고 얼굴을 덥수룩하게 뒤덮은 희끗희끗한 턱수염 뒤로 환환 미소를 떠올리며 드왈라가 말했다.

18개월 동안 드왈라가 이끄는 연구팀은 8개 마을 4천 명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소득·직업·계층·성별·연령에 관계없이 돈의 용처를 묻지 않고 매달 일정액의 기본소득을 제공한 뒤 나타나는 변화를 살펴봤다. 성인에게는 매달 정부의 사회복지지원금과는 별도로 200루피(약 2.7유로)를 지급했다. 각 가정의 어머니에게도 자녀 1인당 100루피를 지급했다. 실험에 참가한 마을 가운데 4개 마을은 수년 동안 SEWA에서 각종 지원을 받았다. 지원모임(Support Group) 및 저축조합(4) 조직, 신용대출, 재정관리 교육, 지역 당국 지원 등과 관련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비교연구를 위해 기본소득을 제공하지 않은 12개 마을을 비교군으로 설정해 함께 살펴봤다. 사실 SEWA는 그 전에도 뉴델리 동부 도시에서 비슷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야말로 인도에서 실시하는 사상 첫 무조건부 현금지원 프로그램이었다. 이 실험은 직접 현금을 지급하는 경우 각 가정의 삶을 향상시키거나, 특히 아동의 영양 및 건강 상태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의 태도가 변화할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세 차례에 걸친 조사(실험 시작, 중간, 끝) 결과, 이 가정이 사실임이 입증됐다. 기본소득을 제공받은 마을의 주민들은 달걀·고기·생선 구매나 병원 치료에 예전보다 더 많은 돈을 지출했다. 전체 가구의 68%가 자녀의 학교 성적이 향상됐다. 자녀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도 3배나 늘어났다. 저축률은 3배 증가했고,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사람의 수도 2배 이상 급증했다.

"현금을 지원받은 덕에 종전보다 식료품을 더 많이 구입할 수 있었다. 돈을 빌리지 않고도 약값을 댈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여자들이 결성한 저축모임에도 가입할 수 있었다. 이제 알뜰히 돈을 모아 아들 결혼자금을 마련할 생각이다." 펀지라지의 말이다. 그녀의 시동생 바하두아는 13살이 될 때까지 1년에 4천 루피를 받고 그왈라 생활을 했다. 당시 바하두아는 모든 생활비를 지주에게 빌려 썼다. 하지만 현재 22살이 된 그는 무조건부 현금지원 덕에 더는 이런 악조건을 견디며 일할 필요가 없어졌다.

"정기적 소득이 근검과 저축을 낳고 있다"

빈곤층에게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돈을 준다고? "처음에는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치켜떴다. 분명 남자들은 술을 퍼마시는 데, 여자들은 보석이나 사리를 사는 데 돈을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빈곤층이 합리적으로 돈을 쓸 줄 모를 것이란 생각은 중산층이 지닌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오히려 정기적 소득이 있는 경우 사람들은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빈곤층도 우선순위를 매길 줄 안다. 희소한 것의 가치를 따질 줄 안다. 게다가 부족민들은 술만큼은 직접 담가 먹는다"고 드왈라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사업의 가장 큰 장점은 규칙성이다. 규칙성 덕분에 모임을 조직하고, 돈을 모으고, 돈을 빌려주는 일이 가능하다. 소액의 돈이 마을 내에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창출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밀리바도디이아는 판트바도디아와 수십km에 달하는 도로로 나뉘어 있다. 그것 말고도 두 마을을 가르는 것이 또 있다. 바로 SEWA가 여성들과 함께한 10년이란 세월이다. 판트바도디아에서는 SEWA가 여성들의 손에 돈을 직접 쥐어준다. 저축모임에 참여하는 여성 20여 명이 함석지붕 그늘 아래 다닥다닥 모여 있다. 이런 모임에 계층과 출신이 다른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은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그들은 공동 프로젝트에 대해 한창 토론하고 있었다. 사원에 지붕을 얹거나 공중화장실을 짓는 일 따위를 놓고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불쑥 드왈라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어디 솔직히 털어놔봐요. 혹시 돈을 받아 보석을 산 사람은 없나요?" 한 여성이 12개월 동안 돈을 모아 구입한 재봉틀을 내밀었다. 또 다른 여성은 TV 할부금을 거의 다 갚았다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 가족은 지난해 겨울에 산 것보다 훨씬 품질이 우수한 300루피짜리 이불을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SEWA에 참여 중인 '만구'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은 남자들의 반발과 경찰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고물가 규탄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트랙터를 몰고 도시로 상경한 여자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전해주며 좌중의 배꼽을 빼놓았다.

라쉬마니는 이글거리는 두 눈 사이에 박힌 붉은 점이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미간에 잔뜩 힘을 줬다. "여자들은 더 이상 두려울 게 없다. 이제는 여자들도 독립성을 지니고, 돈을 관리하거나 새로운 일을 기획할 수 있게 됐다. 어떤 마을의 여자들은 지주에게 임금을 인상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20년을 담배 제조 공장 노동자로 지낸 라쉬마니는 현재 약 300개 마을에서 SEWA 조직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SEWA 노조 대표들은 자기 구역 안에 수많은 공동체를 결성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무려 7만5천 명의 노동자를 규합한 공동체도 있다. 라쉬마니는 "우리는 노동조합이 돈을 관리하는 경우 분배 구조가 더 개선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더불어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일 때 성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드왈라도 곁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가 증명하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 시민사회의 존재가 모든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처음 이 사업은 정부의 빈곤 퇴치 정책 실패에 관한 성찰에서 출발했다. 계획위원회의 평가에 따르면, 빈곤 프로그램이 지급하는 지원금 가운데 저소득층에까지 도달하는 돈은 전체 지출의 27%에 불과하다.(5) 전체 활동인구의 90%를 차지하는 비공식 부문의 노동자가 여전히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직접 현금을 지원한다면 중간관리자의 부정부패나 여기저기 새는 돈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드왈라는 "다른 조건부 프로그램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무조건부 현금지원 사업을 기획하게 됐다. 조건을 다는 경우 중간관리자가 필요한 법인데, 중간관리자가 있는 곳에 권력이 있고 권력이 있는 곳에 부패가 만연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SEWA에 따르면, 마디아프라데시주에는 현재 321여 개의 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다. 성별·계층·인종·연령·자녀수·노동여부 등 엄격한 조건에 의거해, 토지·식료품·가스·장학금·자전거·유급일자리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드왈라는 "기아와 병에 시달리고, 집도 TV도 없는 '순수한' 빈민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빈곤의 경계를 왔다갔다 한다. 그런 이유로 정부 지원 혜택을 박탈당할 때도 있다." 그러니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무조건부 소득을 지원하는 것뿐이다.

대체 원조가 아니라 생활 보완

어쨌든 SEWA의 실험을 계기로 정부 당국은 무조건부 현금지원 사업에 한층 더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 사업이 거둔 놀라운 성과를 지켜본 마디아프라데시 주정부는 SEWA에 소외된 부족마을 역시 현금지원 프로그램에 포함시킬 것을 요청했다. 이에 유니세프도 6개월 더 재정 지원을 추가하기로 약속하고(2012년 6~12월) 지원금을 성인 1명당 300루피, 아동 1명당 150루피로 인상했다. 만모한 싱이 이끄는 연방정부도 2012년 11월 '인도 빈민을 위한 현금지원 사업'(India's Cash Transfer for the Poors)이라 불리는 빈곤가정 지원 프로그램을 재추진하겠다는 깜짝 놀랄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1월 1일 이후 29개 프로그램이 현금지원 사업으로 전환되면서, 17개 주에 분포된 20지구의 주민들 통장에 먼저 현금이 지급됐다. 이 사업은 6월 이후 전국적으로 확대될 계획이다. 인도 정부가 이런 획기적인 전환에 나서기까지는 브라질의 '볼사 파밀리아' 사업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볼사 파밀리아 프로그램은 1200만 브라질 가구를 빈곤에서 탈출시키는 한편, 국가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뿐 아니라 2006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의 재선에도 힘을 실어주었다.

총선을 1년 앞둔 상황에서 빈곤 퇴치 사업을 재추진하는 한편, 어마어마한 수의 빈민에게 직접 현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분명 많은 이의 귀를 솔깃하게 할 만한 계획이다. 가령 자유주의자들은 이 소식을 반갑게 생각할 터다. 현재 정부가 사회복지 지원 예산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5%에서 2%로 축소하겠다고 약속한 상황이기 때문이다.(6) 하지만 정부의 계획에 신중한 태도를 견지한 이들도 있었다. 가령 석유부 장관이 가스보조금을 현금수당으로 전환하려는 계획을 3개월 더 미루자고 요구했다.(7)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인도 일간지 <이코노믹타임스>도 이 사업이 10월 전에는 실시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8)

이런 상황에서 정부 빈곤 퇴치 사업과 전혀 무관한 SEWA의 현금지원 사업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항간에는 SEWA 사업이 정부지원제도 철폐의 서막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드왈라는 "우리는 현금지원 사업을 통해 정부지원금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려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영국 배스대학 경제안정학 교수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를 공동 창립한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은 지난 25년 동안 기본소득이란 개념을 열심히 설파해왔다. 사업팀이 최종 평가를 위해 델리 소재 사회개발위원회(CSD) 사무소에 모였다. 스탠딩 교수의 눈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많은 사람들이 기본소득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비공식 부문이 확대되고 양극화와 경제적 불안정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보편적 소득이야말로 사회 안정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토대다." 그는 소득 보장 유형을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개인의 자유를 증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고, 둘째는 기본적인 사회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토대라고 보는 시각이다. "좌파는 사회관을 재정립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뜻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등장한 신노동자 계층을 의미)를 모든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재분배를 위한 재정 지원에 지금보다 한층 더 불안정한 계층을 배려해야 한다."

인도에서 보편적 소득이란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언뜻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 소득을 보장하는 일은 형평성에도 어긋나고 비용도 더 많이 드는 것처럼 보인다"고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이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정부가 소득세를 걷거나 호화 상품과 서비스에 세금을 부과한다면 고소득층에게서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반면 레나나 자브흐발라 SEWA 인도 지부장은 한 발짝 물러난 태도를 보였다. 그녀는 '보편적 소득' 대신 '무조건부 소득'이란 용어를 더 선호했다. "현재 인도인의 10%만이 세금을 내고 있다. 50%는 자영업자다. 정규직 노동자는 20%에도 채 못 미친다. 이런 조건에서 보편적 소득을 실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만일 정부가 정말 돈이 절실한 국민의 절반을 대상으로 삼는다면 한번 시도해볼 만한 일인지 모른다."

SEWA는 1972년 구자라트 섬유 공장에서 처음 탄생했다. 오늘날 인도 전역에 조합원 수가 170만 명에 이른다. 또한 112개 협동조합기업과 수십 개의 신용협동조합, 병원, 법률상담소, 은행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노동자조합이 무조건부 기본소득 실험에 나서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4년 전 처음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예산 절감 차원에서 기본소득에 찬성했다. 좌파는 기본소득이 정부지원제도를 침해할 수 있다며 반발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은행을 조직해 돈을 관리한다. 우리는 수중에 가진 돈이 강력한 힘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이 사업과 관련해 문제점이 아주 없지는 않다. 먼저 공공서비스 차원에서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 자브흐발라는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되도록 민영서비스를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민영서비스가 언제나 더 우수한 것은 아니지만 마케팅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디아프라데시주의 학교는 형편없다. 주정부가 나서서 지속적으로 교육과 의료 서비스의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은행 서비스 관련 인프라가 미흡한 것도 문제다. 정부는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수급자에게 각각 12자리 숫자로 된 고유번호를 발급할 계획이다. 본래 신원번호가 있는 사람은 7억2천만 명에 달해야 하는데, 현재 2억2200만 명에 불과하다.(9) 돈이 제때 정기적으로 수급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정부가 계획한 대혁명도 결국 뼈아픈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스탠딩 교수는 "정부가 실패를 자초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차차 은행망이 갖춰질 때까지 돈을 직접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은행이란 본래 돈 갚을 능력이 안 되는 계층에게 비협조적이기 마련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은행이 각 마을에 이동식 사무소를 개설하고, 현금지원 통로를 확대하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

"돈이 더 생기면 특별 서비스를 원하기 마련"

말리바도디아를 벗어나 마디아프라데시주 남단까지 80km를 더 내려가면 '고다크후르드'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도로가 언덕 위로 올라갈수록 한결 공기가 맑아진다. 메마른 평야의 풍경도 조금씩 멀어진다. 빌족만 700명 가까이 모여 사는 작은 외진 마을로, 머리를 산발한 어린아이들이 물소와 염소 주변을 마구 뛰노는 데도 그 특유의 고요함과 태평함을 그대로 간직했다. 그럼에도 누추한 집 안에 들어가면 최근 변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사방의 벽은 벽돌과 시멘트로 보강해 한결 튼튼해졌고, 건기를 대비한 옥수수 더미도 제법 묵직하게 쌓여 있다.

정부 요청으로 남은 6개월 프로젝트 기간에 무조건부 현금지원 실험에 동참하게 된 이 마을은 심각한 소외와 빈곤을 겪는 지역이기에 더 각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과거 이곳 주민은 모두 따뜻한 계절 동안 담뱃잎을 따는 일에 매달렸다. 국영 담배제조 회사가 주민에게서 5천 잎 한 묶음당 75루피에 담뱃잎을 사갔다. 그때만 해도 마을에서 좀처럼 현금을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무조건부 현급지원 사업이 시행되면서, 5남 중 장남인 21살의 디네시는 과외수업을 받아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통과한 뒤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됐다. 20살 먹은 동생 우메시도 형을 모범 삼아 고등학교 졸업반에 들어갔다. "무조건부 소득은 어떤 면에서 부모와 비슷하다.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한다."

취재진이 고다크후르드를 떠날 채비를 하는 동안, 드왈라의 시선이 도로 밀밭을 향했다. 밀 새순이 초록빛 물결을 이루는 가운데 여기저기 자그마한 흰 꽃들이 피어 있었다. "저 꽃의 이름은 '베샤람'이다. 인도 말반 지역어로 '수치심을 모르는 꽃'이란 뜻이다. 이 꽃은 자기 땅인지 아닌지 상관없이 아무 곳에서나 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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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벵자맹 페르낭데즈 Benjamin Fernandez 언론인.

번역 / 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Purushottam Agrawal, ‘인도, 낮은 카스트 계급을 위한 할당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7년 5월호.

(2) 인도의 성장률은 2010년 8.3%에 달한 이후 2012~2013년 5~6% 수준에 머물렀다.

(3) 세계은행, 2010년 구매력 평가 자료.

(4) 계모임처럼, 여성들이 소액의 돈을 모아 회원 사이에 대출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5) ‘The eleventh five-year plan’, 계획위원회, 인도 정부, 뉴델리, 2009.

(6) ‘Gamechanger? Why the cash transfer math doesn’t add up’, <The Times of India>, 뭄바이, 2012년 11월 30일.

(7) <The Indian Express>, 뉴델리, 2012년 12월 5일.

(8) ‘Did government jump gun on cash transfers?’, <The Economic Times>, 뉴델리, 2012년 11월 27일.

(9) Hartosh Singh Bal, ‘Will vote for rupees’, Latitude,  http://latitude.blogs.nytimes.com, 2012년 12월 7일.

각국에서 시행되는 기본소득제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여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남아프리카 노동조합위원회(Cosatu)는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이 폐지되면서부터 여러 시민단체와 함께 기본소득동맹(Basic Income Grant Coalition)을 결성해 기본소득제 도입을 위해 싸우고 있다. 하지만 ANC의 많은 장관들이 기본소득제도에 반대하고 있다.

브라질: 2003년부터 룰라 정부는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le·가족수당) 정책을 통해 빈곤선 이하의 가정에(1200만 가구가 넘는다) 수당을 제공하고 있다. 브라질 노동당은 2004년 브라질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점진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또 한 번의 쾌거를 이루었다. 법안을 제출한 노동당 소속 상원의원 에두아르도 수플리시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의 공동 명예회장이다.

캐나다: 매니토바주에 있는 인구 10만 명의 도시 도핀에서 1975∼79년 소득보장 정책이 시범실시됐다. 결과 분석을 담당한 연구원 에블린 포겟은 무엇보다 입원환자 수가 크게 줄고 고등학교 졸업 뒤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 수가 늘어난 것에 주목했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1982년부터 6개월 이상 거주한 모든 주민에게 석유개발 수익으로 제정한 기금(Alaska Permanent Fund)에서 나온 배당금을 매년 지급하고 있다. 2000년과 2008년에는 배당금이 2천 달러까지 올랐고, 2012년에는 878달러였다. 2003년 이라크 침공 뒤, 많은 상원의원이 유사한 소득보장 정책을 이라크에 시행하기를 제안한 바 있다. 몇몇 경제학자가 나이지리아에도 같은 정책을 제안했다. '고전적' 형태의 소득보장 정책이 1970∼80년대 미국의 여러 주에서 시범실시된 적이 있다.

인도: 얼마 전부터 시범사업으로 델리의 빈민가와 마디아프라데시주의 여러 마을에서 실시되고 있다.

이탈리아: 지난 2월 총선에서 이탈리아 제2정당으로 떠오른 오성운동의 당수 베페 그릴로는 실업자와 노숙자에게 3년 동안 매달 1천 유로를 지급하는 '시민소득보장'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주장과는 달리 기본소득제는 아니었다.

나미비아: 교회, 노조, 청년과 여성단체의 발의로 2008년부터 오치베로 오미타라 마을에 거주하는 65살 미만의 모든 주민에게 기본소득이 지급됐다.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인 막달레나 세풀베다는 기본소득 프로그램의 긍정적 결과에 힘입어 나미비아 정부에 전국적 확대 실시를 건의했지만 나미비아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반대했다. 민간의 기부로 진행되던 기본소득 프로그램은 예산 부족으로 2012년 중단됐다.

스위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스위스 지부는 기본소득이니셔티브 네트워크와 함께 2012년 4월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위한 연방청원' 운동을 시작했다. 2013년 10월까지 10만인 서명을 받으면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