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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농사

김장배추 키우기에 관해 잘못 알고 있는 몇 가지 것들

by 내오랜꿈 2015.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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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회결핍증과 배추 무름병


가을재배용 중만생종 배추는 옮겨 심은 뒤 6~7주째부터 결구가 활발하게 진행된다. 날짜를 꼽아 보니 텃밭에 1차로 옮겨 심은 김장배추가 45일째, 2차는 40일째다. 결구가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날씨가 너무 가물다. 이 지역은 10월 1일에 40mm 가까운 비가 내린 뒤 아직까지 비 다운 비가 내리지 않고 있다.


배추는 구성 성분의 90~95% 정도가 수분이기에 자라는 과정에서 다량의 수분을 필요로 하는 작물이다. 특히 결구 초기에 가장 많은 수분을 필요로 하는데 물 한 번 주지 않는 매정한 주인을 만난 텃밭의 배추가 힘겹게 버티고 있다. 물 주고 덩치 크게 키워서 어디 내다 팔 것도 아니니 굳이 물을 주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너무 가문 탓에 석회결핍증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 배추벌레도 잡을 겸 배추 포기를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 석회결핍증 증상을 보이는 배추. 결구잎의 둘레가 하얗게 마르는 증상을 보이다 수침상으로 부패한다. 사진 출처: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홈페이지


▲ 배추 무름병 증상. 잎의 밑동에서부터 수침상의 반점이 생긴 다음 썩기 시작하면서 악취가 나고 서서히 포기 전체로 번진다. 사진 출처: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홈페이지.


석회결핍증은 말 그대로 석회 성분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증상인데 실제로 토양의 칼슘 성분이 부족해서 나타난다기보다는 질소나 칼리 비료의 과다 시비에 따른 길항작용이나 수분 부족으로 인해 나타날 경우가 더 많다. 곧 토양 속에 질소나 칼리 성분이 늘어나면 길항작용으로 칼슘 성분의 흡수가 방해를 받는 것이다. 만약 파종 전에 칼슘제를 충분히 뿌렸는데도 석회결핍증이 나타난다면 이건 거의 대부분 과다 시비에 따른 길항작용으로 보면 된다.


석회결핍증이 나타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수분 부족이다. 모든 무기물질이 그러하듯 칼슘도 물에 용해된 상태로 작물이 흡수하는데 수분이 부족하면 칼슘의 이동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유기질 퇴비도 따로 주지 않는 내 텃밭에서 과다 시비에 따른 길항작용이 나타날 리 없으니 석회결핍증이 생긴다면 필시 수분 부족일 확률이 크다. 작년의 경우 두세 포기에서 석회결핍증 증상이 보였었는데 올해는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보통 결구가 어느 정도 진행되어야 그 증상이 확연하게 나타나니 조금 더 지켜 보아야 할 듯하다.



▲ 이제 막 결구가 시작된 배추(옮겨심은 지 45일째)


▲ 파종 55일째인 김장무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거나 오해하는 게 석회결핍증과 배추 무름병의 관계다. 농사를 꽤나 오래 지었다는 사람들조차 석회 결핍과 배추 무름병을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둘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석회 결핍증은 어디까지나 배추가 여러 가지 이유로 석회를 흡수하지 못해 생기는 생리장해 현상이다. 곧 질병이 아니다. 그러나 배추 무름병은 'Pectobacterium carotovorum'이라는 병원균에 의해 발병하는 병해다. 이 둘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도 다를 뿐만 아니라 성격도 전혀 다른 것이다. 또 배추 무름병이 석회(칼슘) 결핍 때문에 발병하는 병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오해를 하고 있다. 오히려 석회 결핍 때문에 발병하기 쉬운 병은 뿌리혹병, 곧 무사마귀병이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뿌리혹병은 산성 토양에서 많이 발병하고 중성이나 알칼리성 토양에서는 발병이 현저히 감소한다고 한다. 하지만 배추 무름병의 경우 산성 토양, 알칼리 토양 가릴 것 없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뿌리혹병의 경우 토양 개량(산성 토양-->중성 또는 알칼리 토양)으로 인해 발병이 현저히 줄어들 수 있지만 배추 무름병의 경우 석회를 투입하여 토양을 개량한다고 해서 없앨 수 있는 병이 아니다. 배추 무름병의 병원체인 'Pectobacterium carotovorum''이라는 병원균은 토양 산도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추 무름병이 발병한 밭은 콩과 작물로 2,3년 윤작 한다든지 배추 무름병 저항성 품종을 재배하든지 해야만 방제할 수 있다.


그리고 배추 무름병에 걸린 배추는 그대로 버려야 하지만 석회결핍증을 보이는 배추는 증상이 나타나는 부분만 떼어내고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비교하자면 먹이를 잘 못 먹어서 비쩍 마른 닭과 AI(avian influenza)에 걸린 닭을 연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카페나 SNS 상에서 석회 결핍과 배추 무름병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인 양 주장하며 자기 고집을 굽히지 않는 분들이 더러 있다. 근거나 증명은 없이 오로지 그렇다고 우길 뿐이다. 자기가 오래 농사 지어서 잘 안다면서. 정 미심쩍으면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농업과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시기 바란다. 배추를 비롯한 각종 작물의 유기재배에 관한 여러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다.



2. 배추 결구와 묶어 주기의 상관관계


▲ 대규모로 재배하는 해남 지역의 배추밭. 결구기에 묶어 주는 일은 없다.


▲ 2014년 10월 13일 찍은 사진. 내가 사는 동네의 소규모 배추밭 모습이다. 10월 중순이면 이곳 기온은 낮에는 25도, 최저기온도 15도 이상이다. 이런 날씨에 배추를 묶어 주었다니 정말이지 상식 밖이다. 아마도 속이 잘 차라고 묶어 준 것 같은데 오히려 광합성를 방해해 속이 차는 걸 막는 격이다.


배추 결구와 관련하여 또 하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묶어 주는 것과 결구의 상관관계다. 이 역시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김장배추는 거의 대부분 결구형이다. 결구형이란 스스로 알아서 속이 차면서 결구를 한다는 말이다. 양배추를 생각해 보시라. 양배추 속 차게 한다고 묶어 주는가? 정선, 태백의 고랭지 배추밭이나 해남이나 괴산의 드넓은 벌판에 재배되는 배추밭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 그곳에서 키우는 배추를 묶어 주는 걸 본 일이 있으신지? 만약 결구하고 묶어 주는 것 하고 관계가 있다면 상업적으로 재배하는 이들 밭의 배추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묶어 주느라 난리를 치루었을 것이다. 


배추 겉잎을 싸서 묶어 주는 건 결구 때문이 아니라 서리 피해나 동해 방지를 위한 것이다. 배추는 갑작스런 기온 급강하가 아니면 -8℃ 정도까지는 견디지만 -3℃ 이하로 내려 가면 겉잎부터 얼기 시작한다고 한다. 한 번 언 잎은 줄기세포가 파괴되어 김치를 담근 뒤 껍질이 벗겨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중부 내륙지방이나 산간지방의 소규모 재배의 경우 동해 방지를 위해 배추를 묶어 주기도 한다. 동해 방지를 위한 이런 관행이 굳어져서인지 마치 배추를 묶어 주어야 속이 잘 찬다는 '미신 아닌 미신'이 소규모 텃밭 재배 농사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다. 이게 무슨 신앙도 아닐 터인데 왜들 그리 목숨을 걸고 수호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작년 가을 어느 까페에 이런 내용의 글을 올렸더니만 당연히 묶어 주어야 속이 더 잘 찬다며 수십 년 농사 지은 관록을 이야기 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수십 년이 아니라 수백 년이라도 잘못 알고 있는 건 잘못 알고 있는 거다.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라면 모를까 속이 잘 차게 한다는 이유로 요즘 같은 날씨에 배추를 묶어 주는 건 오히려 광합성을 막는 것이라 속 차는 걸 방해하는 격이다.


국립농업과학원에서 펴낸 자료에 따르면 배추의 결구 적온은 15~18℃ 정도고 4~5℃ 정도까지 결구가 진행된다고 한다. 동해를 입는 온도는 -8℃ 정도고 갑작스런 기온급강하 조건이라면 -3℃에서도 동해를 입을 수 있다고 한다. 곧 최저 기온이 -8℃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서 최고기온이 4℃ 이상인 날이라면 어느 정도는 계속 속이 차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조금, 그러니까 2~3도 정도는 양보해서 동해 방지를 위해 묶어 준다 하더라도 최저기온이 -5℃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날씨라면 굳이 묶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보면 된다. 상업용으로 재배하는 전문 농가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급농이라도 -5℃ 이하로 내려가기 전에 수확하여 김장을 마치는 농가가 아마도 대부분이지 않을까? 그럴 경우 속을 잘 차게 한다는 이유로 묶어 주는 건 괜히 헛심 쓰는 것이다. 수십 년 농사 지었다는 분들도 이야기해 보면 잘못 알고 있는 게 한둘이 아니다. 남들이 한다고 별 도움도 안 되는 노동을 괜히 따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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