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농이 아닌 텃밭 농사는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기르기 쉽고 병충해가 적은 상추 같은 잎채소 기르기를 가장 많이 시도하고 그 다음으로는 무나 배추 같은 김장 채소 기르기를 선호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경우는 처음 농사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온갖 작물들을 키운 탓에 어떤 작물이 키우기 쉽고 어떤 작물이 어려운가를 나누는 게 일반적이지는 않은데 아무래도 상추 치커리 같은 잎채소류나 마늘 양파 쪽파 같은 인경채소류, 감자 고구마 같은 구근 작물이 키우기 쉬운 거 같다. 상추 치커리는 병충해가 거의 없어서 쉬운 것 같고, 인경채소류나 구근 작물은 한 번 심어 두면 손이 덜 가서 쉽다고 할 수 있다.
▲ 5년째 같은 곳에서 키우는 김장 배추와 무
그런데 같은 잎채소이긴 하지만 무나 배추 종류는 유기농으로 키우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나 역시 처음 키울 때는 떡잎만 나오면 달라붙는 잎벌레 종류나 나방 애벌레 때문에 구멍 숭숭 뚫린 열무나 배추를 수확하는 게 고작이었다. 재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가을이면 김장 배추나 무에 달라붙은 벌레나 달팽이 잡느라 한밤중에 랜턴 들고 텃밭에 나가는 게 일상일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작년부터는 잎벌레나 배추벌레의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달팽이에 의한 피해만 조금 입는 정도라 김장 채소 키우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떨까?
▲ 파종 38일째 김장무
▲ 무도 배추도 아닌 무엇? 배추 씨앗을 모종으로 키워 옮겨 심었는데 이상한 돌연변이가 생겼다.
배추는 1차로 옮겨 심은 게 25일째, 2차로 옮겨 심은 게 20일째다. 무는 1차 파종한 게 38일째, 3차 파종한 게 30일째다. 한랭사나 다른 장치 없이 따로 물도 주지 않고 노지에 방치 상태다. 그것도 5년 동안 같은 밭 같은 장소에서. 그런데도 올해는 벼룩잎벌레나 좁은가슴잎벌레는 거의 구경을 못 했고 배추나방 애벌레는 가끔 눈에 띄는데 보이는 대로 오며가며 잡아 준다. 겉잎 군데군데 뜯어 먹힌 흔적은 있는데 아마도 달팽이나 메뚜기 때문인 것 같다. 먹어 봐야 니네들이 얼마나 먹을까 싶어 배추 속 눌러줄 때 눈에 보이는 것만 잡는다. 예전처럼 벌레 잡느라 밤에 랜턴 들고 나갈 일도 없고 낮에도 일부터 벌레 잡으려고 뒤적거리진 않는다. 벌레 때문에 김장 농사 힘들다는 분들께는 염장지르는 소린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배추와 무를 거의 공짜로 키우는 기분이다.^^ 따로 퇴비를 넣지도 갈아엎지도 않았으니 모종 키워서 옮겨 심은 거밖에 한 일이 없는 거 같다.
▲ 옮겨 심은 지 25일 된 김장 배추(벌려주기 전)
▲ 옮겨 심은 지 25일 된 김장 배추(벌려준 뒤). 자주 햇볕을 쬐인 탓에 속까지 연두빛으로 푸르다.
▲ 시퍼런 녹색이 아니라 연두빛 초록색이 예쁘다. 주변에서 자라는 검은 빛이 도는 녹색의 배춧잎을 보면 나는 왠지 공포스럽다.
물론 그렇다고 아주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바닷물을 20배 정도 희석하여 엽면시비 한다. 그리고 이틀에 한 번 정도 배추 속을 벌려서 눌러 준다. 많은 사람들이 옅은 빛깔의 배추 속을 선호하는데 나는 결구가 완전히 시작되기 전까지는 최대한 자주 배추 속을 벌려 햇볕을 쬐게 해 준다. '무엇 때문에'라고 물으면 '무엇 때문이다'라고 명확하게 답하기는 곤란한데 최대한 광합성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대답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연약하게 크고 굵게 키우는 것보다는 섬유소가 풍부하면서 조직이 치밀하게 키우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 월동용으로 키우고 있는 양배추와 브로콜리 모종
김장 채소 키우기가 너무 수월하게 진행되는 바람에 다른 일거리를 만들게 된다. 이번 겨울에 허브나 양배추 종류의 노지 월동 가능 여부를 실험해 보기로 한 것. 로즈마리의 경우 영하 5℃ 정도는 견딘다고 하는데 작년 같은 날씨라면 크게 문제될 거 같지는 않다. 양배추나 브로콜리 종류도 양지바른 앞마당에 심을 계획인데 지금 포트에 키우고 있는 모종을 10여 일 뒤 옮겨 심어 내년 2, 3월에 수확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적어도 브로콜리는 견디지 않을까 싶은데 한겨울 기온을 미리 점칠 수는 없으니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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