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땀에 절어 지냈다. 마늘, 양파 심을 밭 준비하느라 모기를 친구 삼아 풀 정리하며 보낸 것. 여름 내내 자란 풀들이 심한 곳은 내 키와 맞먹을 지경이다.
▲ 여름 내내 한껏 자란 바랭이
▲ 왕겨와 짚으로 멀칭된 마늘밭(2013년 1월 모습)
그냥 밭이라기보다는 확실히 풀밭이다. 쑥대밭이라고 표현해도 손색없겠다. 비록 쑥은 없지만. 보통의 밭이라면 중간에 관리기로 한 번 갈아엎어 풀을 제어했겠지만 관리기를 쓰지 않는 나는 자라는 대로 내버려둔다. 여름철에는 하루 종일 볕이 들지만 태양 고도의 영향으로 겨울철에는 일찍 그늘이 지는 이 밭의 특성상 월동작물인 마늘, 양파의 보온을 위한 멀칭 재료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이 넓은 밭의 멀칭 재료를 다른 데서 구해 온다는 건 사실 상당한 노동력과 돈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3년 전이었던가? 짚과 왕겨를 구해 멀칭하느라 꽤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외부에서 멀칭 재료를 구하는 게 어렵다면 자체 조달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아무런 방해 없이 여름 내내 자란 바랭이는 그 방법의 하나일 수 있다. 고랑은 고랑 대로 이랑은 이랑 대로 풀을 베어 쓰러뜨려 주면 한 달 뒤에는 이슬, 비 맞아가며 적당히 부드러워져 멀칭하기 좋은 재료로 변한다. 그 사이 땅속 50cm 이상 파고들었을 뿌리도 파종골을 만드는데 별다른 장애물이 되지 못할 정도로 미생물에 의한 분해가 진행되어 있다. 관리기로 돌려버리거나 비닐로 멀칭한 땅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포슬포슬함이 살아있는 땅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이기에 육체적 힘듦이라는 고통은 감내해야 한다. 추석 연휴 마지막 이틀을 수많은 모기에게 헌혈하며 낫과 씨름한 이유다.
▲ 수확을 기다리는 들깨
▲ 꼬투리의 대부분을 고라니에게 뜯어 먹힌 팥
▲ 씨앗이 떨어져 자연 발아한 우엉
▲ 늦게 파종한 당근. 제대로 수확할 수 있을까?
9월 말의 한낮. 햇볕은 또 왜 그리 따가운지. 풀을 베어 눕히는 동안 목에 두른 수건이 흐르는 땀에 몇 번이나 빨래 짜듯 쥐어짜야 할 지경으로 젖는다. 밭일 하는 동안은 누가 뭐래도 아직 여름이다.
풀 정리를 마치고 가지, 호박, 토란대 등을 대충 갈무리하면서 둘러 보니 애처로운 작물 몇 가지가 눈에 띈다. 이미 베어 말리고 있는 들깨 사이로 아직 영글지 못한 들깨가 막바지 피치를 올리고 있고 그 옆에서는 고라니에게 대부분의 꼬투리를 뜯어 먹힌 팥이 남은 꼬투리를 익히고 있다. 추위에 강한 우엉이야 제 스스로 겨울을 날 터이니 지금 발아해도 이상할 게 없는데 늦게 파종한 당근이 걱정이다. 이 밭은 남쪽이라고는 하지만 지형적인 영향으로 겨울 아침 기온이 낮은데다 해까지 일찍 지니 생각보다 겨울 추위가 억센 지역이기 때문.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아서 자랄 거라 믿는다. 파종 뒤 며칠째 발아하고 발아 뒤 며칠째 옮겨 심고 옮겨 심은 뒤 며칠째 성숙해야 한다는 웃기지도 않은 기계적 사고에 찌든 인간보다는 훨씬 현명함을 갖춘 식물들이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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