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세기만 하던 여름이 저만큼 물러서 있다. 지금은 가을일까? 여름일까? 계절이 오고 가는 길목에 선 나날들. 끝날 것 같지 않던 끈적끈적한 불쾌함마저 그리운 추억으로 기억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 힘겨웠던 여름을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제 몸에 간직한 텃밭 작물들이 제일 먼저 저무는 계절을 아쉬워한다. 매일 아침 이파리 하나하나에 새로운 계절을 새기면서.
▲ 끝물 토마토. 가을을 이파리 하나하나에 새기며 저무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토마토가 애처롭다.
▲ 파프리카.
▲ 익어가는 고추들
계절의 변화는 분명 나보다 내가 키우는 작물들이 먼저 느낄 것이다. 내가 느끼지 못 하는 섭씨 1도의 온도 변화도 작물들에겐 내가 느끼는 10도의 변화보다 더 크게 다가갈 터이니. 아침 저녁으로 느끼는 선선함은 이미 오래 되었으나 한낮의 뜨거움은 여름 못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뙤약볕에서 두세 시간 땀 흘리고 보니 가을이란 걸 내 몸이 머리보다 먼저 느끼고 있다. 여름 내내 아무런 방해 없이 자란 잡풀들이 집 안팎 담장들을 뒤덮고 있어 휴일 한낮을 투자해 정리했다. 늙은 바랭이, 말라가는 닭의장풀, 꽃은 지고 대만 굵은 코스모스, 내 피부를 씹어먹을 듯한 기세의 환삼덩굴 등등. 이것들을 정리하는 두세 시간을 물 한 컵으로 버틸 수 있다는 건 여름이 지나갔음을 알려주는 확실한 증표이리라.
▲ 여전히 계속 피어나는 고추꽃. 이제부터 피는 꽃에서는 붉은 고추를 따기는 힘들다.
▲ 오이. 지주를 벗어나 시멘트 바닥을 기고 있다.
가을을 몸으로 느끼며 둘러본 고추밭. 고추와 파프리카의 부질없는 욕망이 눈에 들어온다. 이 날씨에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한없이 새로운 꽃망울을 피우고 있다. 고추나 파프리카는 꽃이 핀 뒤 45일 전후로 완숙기에 접어든다. 그렇다면 지금 피는 꽃망울은 11월 초순이 되어야 제 색깔로 익는다는 말이다. 여기가 아무리 겨울이 늦게 찾아오는 남도 해안가라 하지만 11월 초까지 과연 정상적인 생육이 가능할까? 하긴 어차피 10월 말쯤이면 고추와 파프리카를 정리할 예정이니 괜히 사서 고민하는 것인지도...
다른 무엇보다 떠나가는 여름을 아쉬워 할 오이는 지주를 보강해주지 않았더니 시멘트가 깔린 주차 공간 쪽으로 새 줄기를 뻗고 있다. 아마도 저 꽃들은 열매를 맺지 못 하고 생을 마감하리라.
▲ 도토리묵 말리기
▲ 지난한 고추 말리기. 그나마 건조한 탓에 썩을 염려는 덜하다.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뜨겁고 공기는 건조하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말리기에는 최적의 날씨다. 그런데 그게 마냥 쉽지 만은 않다. 무슨 심술인지 해가 구름과 숨바꼭질 하느라 낮 시간의 채 절반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래저래 고추 말리기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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