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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농사

하짓날의 텃밭 풍경

by 내오랜꿈 2015.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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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가 지났다. 농사와 관련해서 보자면 하지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다. 보리나 마늘, 감자 같은 월동 작물이나 봄 작물 수확을 마치는 시기이자 고추나 오이 같은 여름 작물이 제자리를 잡고 수확을 시작하는 시기이고 콩이나 깨, 메밀, 고구마 같은 가을 작물 파종의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옛말에 무슨 곡식이든 하지 전에만 심으면 웬만큼은 수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하지를 가리켜 '보리환갑', '감자환갑'이라 부르기도 했다. 더 이상 이삭이 자라거나 알이 굵어지지 않으니 빨리 수확하고 다른 작물을 심어야 한다는 걸 에둘러 표현한 것이리라. 



▲ 메주콩 파종밭. 고랑을 마른 풀들로 채웠다. 비온 뒤 진땅을 다니기도 편하고 나중에 이랑에 올려서 퇴비로 쓰기도 편하다.


하지가 코앞에 닥친 주말, 하루 종일 메주콩을 심었다. 이백 평이 넘는 땅이니 제대로 키우면 몇 년 먹을 콩을 수확해야 하겠지만 그리 큰 기대는 않고 있다. 고라니 등쌀에 남아나기나 할까 싶다. 그래도 가을에 양파나 마늘을 심으려면 무엇이든 심어야 풀밭을 면할 터이니 스스로 비료를 만들어 쓰는 메주콩이 그나마 지력 소모가 덜할 것 같아서 파종하는 것이다. 



▲ 수박


▲ 참외


▲ 당근


▲ 강낭콩


밭 한 구석에서 자라는 수박과 참외. 순지르기를 잘 해야 하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처제는 무작정 키우기만 하고 있다. 올 때마다 과감히 잘라내고 있는데 제대로 클지 모르겠다. 당근과 강낭콩은 수확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상추나 부추, 케일 등도 뜯어먹는데 한계가 있으니 덩치만 키우고 있다.



▲ 비름나물


▲ 당근꽃


▲ 우엉꽃


▲ 대추꽃. 아마도 과실나무 중에 가장 늦게 피는 꽃이 아닌가 싶다.


당근밭에 난 비름이 당근보다 훨씬 큰 덩치를 자랑하고 있다. 이게 비름 밭인가, 당근 밭인가. 그 와중에 하얗게 핀 당근꽃. 아마도 작년 가을에 파종한 당근이 몇 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수수한 듯하지만 당근꽃은 멀리서도 눈에 확 뜨인다. 그 옆에선 우엉도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다. 남들은 벌써 다 익어가는데 이제 꽃을 피우는 대추나무가 언뜻 한심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가장 늦게까지 매달려 있는 게 바로 대추다. 



▲ 사과나무. 심은 지 4년 만에 몇 개 열렸다.


▲ 자두나무. 대부분 자연낙과하고 몇 개 안 달렸는데 그 덕분에 엄청 굵다.


▲ 과실나무 심은 곳. 이곳에 닭장 지어서 닭 풀어 놓으면 닭들이 야산으로 올라다닐 수 있어 금상첨화다.


▲ 고구마를 심던 곳인데 올해는 멧돼지가 무서워 아예 심지도 못했다. 무슨 대책을 세우긴 세워야 한다.


관상용인지 수확용인지도 불분명한 과실나무들. 제 스스로 알아서 자라야 한다. 주인이 게을러서 남들처럼 거름 주고 약 치고 해 주지 않으니 말이다. 풀이라도 좀 제때에 잘라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여름만 되면 풀밭으로 변하기 일쑤다. 올해는 풀밭이 하나 더 늘 기색이다. 해마다 고구마를 심던 곳인데 멧돼지가 무서워 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가 지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누렇게, 붉게 보이던 빈 땅 곳곳이 초록빛으로 우거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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