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양배추와 브로콜리 키우기는 처음이다. 해마다 가을 재배만 한 탓에 올해 처음 봄 재배를 시도할 때도 상당히 망설였다. 서늘한 기온을 선호하는 양배추와 브로콜리가 30도를 오르내리는 여름에 제대로 결구할 수 있을까 싶어서. 더군다나 이곳은 바닷가 근처라 여름에는 습도가 아주 높은 편이다. 내가 아는 한 고온다습한 기후와 양배추과 작물은 그다지 바람직한 궁합은 아니다. 그럼에도 직접 키운 양배추의 고소한 맛을 잊지 못해 기어이 씨앗을 파종했다.
▲ 3월 29일, 파종한 지 40일 만에 본밭에 옮겨 심은 양배추, 브로콜리 모종
▲ 4월 30일의 양배추 모습
40일 동안 실내와 바깥을 오가며 키운 모종을 3월 말에 정식했다. 옮겨 심고 한 달이 지나도 저게 제대로 자라 결구할 수 있을까를 걱정했는데 이달 초부터 애기 머리 만한 양배추와 야구공 만한 브로콜리를 수확해서 먹고 있다. 그런데 브로콜리는 어차피 살짝 데쳐서 다른 요리에 넣어 먹기에 별 차이를 모르겠는데 생으로 즐겨 먹는 양배추는 아무래도 가을에 재배한 것과는 맛 차이가 상당하다. 가을 양배추의 그 고소하고 기분 좋은 단맛이 나지 않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런 차이가 날까?
▲ 6월에 들어와 양배추와 브로콜리가 덩치를 키우고 있다.
어떻게 보면 가을 재배보다는 품이 더 들어갔다. 가을 재배에는 없었던 진딧물 공격이 심했던 까닭에 방제하느라 이런저런 손이 갔기 때문이다. 이것 외에는 같은 땅에 같은 방법으로 키웠는데 맛의 차이가 이리도 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봄 재배는 처음이니 비교해 볼 데이터도 없다. 큰 것부터 순차적으로 수확해서 먹고 있지만 먹는데 한계가 있어 내버려 둔 양배추가 건조한 날씨 탓에 덩치를 한없이 키워 가고 있다(아마도 장마철이었다면 물러졌을 확률이 클 것이다). 양배추의 직경이 22cm에 이르는 것도 있다. 이건 내가 싫어하는 크기다. 화학비료로 키워 마트에서 파는 양배추보다 더 큰 것 같다. 브로콜리도 상품성 있는 크기라는 12cm를 넘어서고 있다.
가을 재배와는 달리 맛은 떨어지고 덩치만 키우는 봄 재배 양배추. 내가 키운 것만 이런 것일까? 아, 물론 못 먹는다는 말이 아니라 가을 재배 양배추보다 맛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가을 양배추는 거의 생으로 먹었는데 봄 양배추는 생으로 먹기보다는 여러 요리에 넣어 익혀 먹는 정도의 차이랄까. 똑같은 땅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재배하는데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나로서는 결구기의 온도 차이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 컬리플라워. 노린재 종류인지 벌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그나마 브로콜리와 컬리플라워는 수많은 진딧물의 공격을 이겨내고 그런대로 자라 주었으니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양배추나 브로콜리 입장에서 보자면 온갖 악조건을 이기고 자라주었더만 자라준 공도 모르고 괜한 억지부리는 인간의 투정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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