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던 양파가 지난 주부터 줄기를 쓰러뜨리고 있다. 내 예상보다 열흘 이상 빠르다. 작년 11월 20일에 그리 크지 않은 만생종 모종을 심었기에 빨라도 6월 10일은 지나야 수확하리라 생각했던 것. 하지만 연일 3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와 가뭄은 작물의 생육주기를 강제로 앞당기고 있다.
▲ 지난 5월 28일의 양파 모습. 아직 생생한 줄기도 있었으나 3일 뒤인 5월 31일에는 거의 다 드러누웠다.
보통의 날씨였다면 아직 충분히 뿌리로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줄기는 생생하다. 하지만 기온 탓인지 수분 공급 부족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며칠 사이에 대부분의 줄기가 땅바닥에 드러눕고 있다. 며칠 더 놓아 둘까 하다가 이번 주 초에 비 소식이 있어 지난 일요일 모두 뽑아냈다.
▲ 양파 수확. 밭에서 이대로 며칠 말리면 좋은데 비 소식이 있어 들였다가 내 놓아야 할 것 같다.
한 해 양파 농사를 총평하자면, 아주 가느다란 모종까지 전부 580 포기 정도를 심었는데 월동 후에도 거의 99% 생존했던 것 같다. 다만 지난 4월 장마에 줄기가 문드러진 포기가 군데군데 눈에 띄어 한 10여 포기 정도 뽑아낸 걸 제외하곤 수확까지 별 탈은 없었다. 하지만 4월 장마 여파는 수확기에 어느 정도 나타났다. 뿌리가 힘이 없어 흔들리면서 알이 굵어지지 않은 채 곰팡이가 피려고 하는 포기가 생긴 것.
▲ 뿌리가 부실해 알이 굵어지지 않아 일찍 수확한 양파 60여 포기
뿌리 부분에 살짝 곰팡이가 피려고 하는 포기나 줄기가 말라 알이 굵어지지 않는 포기는 본수확 이전에 일찍 수확했다. 햇볕에 말리니 먹는 데는 크게 문제될 것 같지는 않다. 해마다 이런 못난이 양파를 먼저 먹느라 크고 좋은 양파를 뒤로 미뤄 두었다 싹이 나버린 경험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다. 나 역시 그렇다. 그래서 올해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크고 좋은 양파부터 먼저 먹겠다는 다짐을 했었는데 막상 눈앞에 닥치니 이 못난이 양파를 또 버릴 수가 없다. 그나마 양이 많지 않으니 이걸 처리한 다음 크고 좋은 양파부터 먹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할 듯.
▲ 양파 20개 한 묶음. 큰 것 작은 것 섞여 있으니 개당 평균 150g에서 200g 정도 되는 것 같다.
아무렇게나 크고 작은 것 섞어 20개 한 묶음의 무게를 재 보니 3.7Kg 정도다. 줄기 위 10~15cm 정도를 자르고 묶은 것이니 5cm를 잘랐다고 가정할 경우 3Kg이 조금 더 나갈 것 같다. 개당 평균 150g~200g 정도 될 것 같다. 먹고 저장하기에 딱 알맞은 크기다. 양파가 굵다는 건 과피가 두껍다는 것이고 이건 과피에 수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는 뜻이다. 유기농이나 자연농법으로 키운 양파를 잘라 보면 과피의 조직이 촘촘하고 단단하다. 관행농으로 키워 수분을 많이 함유한 양파와 비교해 보면 확연히 구분이 간다. 이 차이가 저장성의 차이를 가져 온다. 그러니 크고 무거운 양파가 결코 좋은 양파인 것만은 아니다. 가끔 보면 유기농을 한다면서도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양파 수확한 걸 자랑스러워 하는 분들이 있는데 양파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건 대부분 거름을 많이 했다는 것을 뜻한다. 양파는 유기농 퇴비, 화학비료 가려 가며 섭취하는 능력이 없다. 그저 질소 이온을 섭취할 뿐이다. 그러니 300g, 400g 나가는 양파를 부러워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굵으면 굵은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쓰임새에 맞게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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