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모습/생각

토론의 방향과 관련해서...

by 내오랜꿈 2015. 6. 15.
728x90
반응형


세상의 '살벌함'을 이야기하는데, 그 '살벌함'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는데 열혈 운동권들은 자신의 '정치적 올바름'을 이야기한다. 정치적 올바름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세상의 살벌함을 치유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의 올바름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적들은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세상의 살벌함을 조장하고 이용하는데 자칭 열혈 운동권들은 말로서는 세상의 살벌함을 치유하고자 한다면서 자신의 정치적 올바름만 관철시키려 한다. 적이 아니라 동지를 향해서...


싸워야 할 대상이 적인가? 동지인가?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치적 올바름 정도는 (적을 향해서는) 숨길 수도, (동지를 향해서는) 양보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지금이 '언더' 활동하던 시대인가? 빨치산 투쟁하던 시대인가?


지긋지긋하다. 넌더리 난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 썼던 글이다. 이 자체로도 무슨 말인지는 대충 이해 되겠지만 페이스북에서 나와 친구 관계를 맺어 서로 공유하는 알고리즘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 아마도 약간의 전후사정을 설명해야 하리라. 두 개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헌법재판소의 전교조 법외노조 근거 조항 합헌 판결 논란과 진보정치 재편을 위해 참여하고 있는 한 정당의 내부 논란 문제.


먼저, 지난 달부터 내가 몸담고 있는 정당에서 진보정치 재편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노동당, 정의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4자가 참여하는 진보정치 재편과 결집을 위한 모임에 내놓을 당의 입장을 정리하기 위한 내부 논의인 셈이다. 솔직히 불량 당원이라 그런지 크게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이 논의의 와중에 당게에 글을 쓰면서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상대방을 향해 '어린이, 참 잘했어요."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아마도 상대방을 향해, 상대방 논의 수준을 향해 어린이 같이 모자란다는 걸 말하고 싶었으리라. 당연히 상대측에서는 반발했고 사과하라, 어쩌라 하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발언을 한 당사자는 사과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논란은 엉뚱한 곳으로 이어졌다. 사과의 방식이 잘못되었고 중요하게는 무얼 잘못했는지 모른다는 비판으로 발전한 것. 단순히 그 표현만 문제 삼은 게 아니라 '어린이의 인권 문제를 무시한 것이다', 더 나아가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에 대한 무지의 표현이다'라는 논쟁으로 비화한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각 부분 운동에 종사하는 사람의 어려움을 아느냐, 안다면 그런 소리 할 수가 없다, 당직을 사퇴하라'는 식의 논의로 발전했다. 


내가 보기엔 어이가 없는 짓거리들이다. 진보 재편을 위한 당의 방침은 이제 아예 뒷전이 되어버렸다. 한 일주일째 당게를 쳐다 보지도 않아서 그 뒤에 진행된 흐름은 잘 모르겠지만, 여기까지만으로도 '개'(요샌 '개'가 강조의 의미로 쓰이더만...ㅠ)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그래서 요즘 15년 정당 생활을 청산할까 어쩔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두 번째는, 헌법재판소의 전교조 법외노조 근거 조항 합헌 판결 논란에 관련된 것이다. 알다시피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에 대한 것인데 법이 아니라 시행령 만으로 노조 해산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관련되는 것이니 논란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꽤 알려진 친구 하나가 자신의 페북 계정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진심으로 전교조에게 묻고 싶다. "동지를 포기할 수 없다. 해고자들의 조합원 자격을 포기할 수 없다."는 동지애는 존중한다. 그런데 당장 두 명의 교사가 기간제라는 이유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학생들에게로 달려가서 죽었는데도 순직이 될 수 없다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먼저 좀 고발하고, 그들 역시 자랑스런 이 땅의 교육 노동자였음을 선언하는 게 더 전교조스럽지 않은가? 열 명이 안되는 정규직 해고자가 전교조의 거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만큼 소중한 건 알겠다. 그런데 당신들 기간제 교사가 얼마나 해고됐는지 수치는 파악하고 있는가? 왜? 그 사람들은 조합원이 아니어서 교사가 아닌가? 아니할 말로 데모해 봐라. "우리는 동지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와 "기간제와 정규직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사입니다." 어느 쪽이 더 사람들의 호응을 받고 더 박수를 끌어낼 수 있을지.


정말이지 난 이 글에 100% 동의한다. 지금 전교조가 시민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전교조 조합원들은 알기나 할까? 그런데 이 글에 대해 전교조 옹호 열혈 투사 한 사람이 긴 글에서 말하기를, '위의 글을 쓴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은 겉만 기간제 교사를 옹호하는 듯할 뿐 실제로는 9명의 해직교사를 전교조에서 제외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라는 식으로 요약한 뒤 왜 그래서는 안 되는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걸 양보하면 정부는 더 큰 양보를 요구할 것이고 실제 전공노에서도 확인된 것이다, 그러니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게 이 사람 글의 핵심이다.


이 사람 주장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자신의 생각대로 글쓴이의 의도를 난도질하는 과감함에는 혀를 내두르겠다. 가슴 아픈 현실을 놓아 두고서 왜 하나에만 목 매달고 있느냐는 말에 대해 자신들 노선의 올바름에 대해서만 모든 촛점을 맞추는 과감함. 아마도 모든 게 자신들의 입장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으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페북의 글은 이 두 가지 문제가 겹쳐지면서 든 생각을 적은 것이다.


좌파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 특히나 운동권 물을 좀 먹었다는 인간들의 사고방식에는 항상 이렇게 자신의, 자신의 입장의 옳고 그름을 먼저 생각하는 DNA가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나도 그러하리라. 


모든 게 맞다 틀리다의 문제는 아니다. "네가 맞고 나는 틀리지만 네것보다는 더 좋은 방향도 있을 수 있다. 내가 맞고 네가 틀리지만 내것보다 더 나은 방향도 있을 수 있다. 둘 다 맞지만 그보다 더 좋은 방향도 있을 수 있다." 토론이나 논쟁은 항상 이렇듯 더 나은 방향을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예가 내가 위에서 인용한 전교조와 노동당 문제일 것이다. 이건 네가 맞느냐 내가 맞느냐를 넘어설 때 가능하다. 올바른 논쟁이나 토론은 항상 '무엇 때문에 이걸 하고 있느냐'를 생각해야 하는데 논쟁하다 보면 '내가 왜 틀렸단 말인가?'에 매몰되어 버린다. 그런 논쟁은 100% 소모적인 논쟁이다.



네가 아래 내 글에 덧붙인 댓글에서 말하는 걸 충분히 이해하고 또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는지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내가 뭐라 시비걸 수 없는 것, 논리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건 네가 느낀 감정적인 부분인데 따로 뭐라 안 한다. 그건 네 몫이다. 다만 그 감정의 연결선에 이르는 논리구조에 대해서는 언급해야겠다. 네게 그러한 폭력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만든 예가 다른 사람들과 나 사이에 있었던 부분과 '소 귀에 경 읽기'라는 비유가 나오는 글밖에 없는 건 좀 그렇네. 네가 예를 든 게 그러한 계기가 되는 글이라면, 그리고 다른 많은 예도 네 기억 속에 존재한다고 하는 걸 보면 나의 의도나 내가 쓴 글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내가 쓴 다른 글이 상대방과 좀 심각하게 주고 받는 것이라면 넌 그것들에서 너만의 폭력성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내가 다른 사람(아마 삼호하고 기홍이었지?)하고 나하고 주고 받은 부분을 언급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논쟁하다가 내가 오버한 부분에 대해서 누군가 지적하니까 '그건 내가 오버했다'고 사과하고 넘어간 부분인 거 같네. 무얼 오버해서 그러했던 것인지는 지금 잘 기억 안 나. 뭐, 논쟁하다가 잘못했으니 당연히 사과해야지. 이런 모습들과 '소 귀에 경 읽기' 같은 표현이 들어 있는 것 등을 넌 내가 보여주는 폭력적인 모습으로 가는 연결 고리, 그러니까 네가 감정적인 느낌을 언급하면서 내가 이 밴드의 다른 구성원을 동등한 대화 대상으로 여기지 않거나, '어린이' 취급하는 느낌이 든다면서 폭력적인 거 아니냐는 것으로 연결되는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맞지?


일단 네게 먼저 설명해야 할 게 문학적인 수사, 비유적 표현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는지 묻고 싶다. '소 귀에 경 읽기'라는 수사적 비유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지? 네 글 속에서 드러난 것으로만(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유추해 낸다면 넌 소를 하급 동물, 저급자, 인간보다 못한 존재 등으로 이해하고 있고 이 비유를 든 나는 이 밴드의 구성원들이 나에 비해 저급한 수준의 사람들, 나보다 이해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로 취급하지 않느냐는 혐의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이 비유에서 '어린이' 표현이 연결될 수도 없고 폭력적이라는 네 감정과도 연결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소 귀에 경 읽기'라는 비유, 속담이 가지는 의미가 뭘까? 아마도 우리 조상들은 '쓸데없는 노력'을 하는 행위를 비유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도 이 비유가 쓰이는 일차적인 의미 연결은 이런 것이겠지. 나도 그 비슷한 의미로 썼고. 물론 어떤 경우는, 상대를 아주 멸시하거나 비하하는 의미로 쓰는 경우도 있지. 하지만 그건 욕설이거나 친한 친구 사이에 하는 농담일 경우겠지. 네가 이러한 쓰임으로 이해한다면 그건 정말 '수준'의 문제니 논외로 한다. 그런데 여기서 네게 꼭 지적해야 할 게 왜 이 비유에서 내가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연결하는지를 이해하려면 네가 가진 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나? 


난 이 속담이 소가 인간보다 저급한 동물이라는 비유로 쓰인다는 생각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다. 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사람이 자기 귀에 읽어 주는 경은 어떤 소리로 들릴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소리겠지. 차라리 먹을 거나 하나 더 주지 저게 뭐 하는 짓이냐고 하지 않을까? 소는 인간과 대비되는 '타자'일 뿐이다. 이 비유나 속담이 소가 인간보다 꼭 하급 동물이기 때문에 성립하는 건 절대 아니다. 왜 쓰잘 데 없는 노력, 짓거리를 하느냐는 게 핵심이지. 


네가 얼마나 관심 있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좌파, 내가 속한 그룹의 논쟁이나 논의는 이런 것도 엄격히 따진다. 앞의 글에서 내가 든 예의 '어린이'라는 표현도 이런 사고의 연장선 상이다. 어린이든, 개든, 소든 비유의 대상은 나와 다른 개체, '타자성'을 드러내는 개체일 뿐이다. 이런 논쟁에서는 우리가 무심결에 쓰는 '개' '소'가 들어가는 비유나 속담은 꼭 써야 할지 안 써야 할지 가려 가며 쓴다. 그렇지 않다면 '개'나 '소'나 '인간'과 뭐가 다르냐는 반격 바로 들어 온다.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은 논쟁할 자격 없단 말 바로 나온다. 요즘의 진보 운동이 어떤 면에서는 8~90년대식 메타적 사회 변혁 운동보다는 소수자, 사회적 약자를 위한 운동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 약자에는 당연히 동물이나 생태, 환경 같은 인간에 의해 짓밟히는 대상들이 들어간다. 


내가 쓴 '소 귀에 경 읽기'라는 비유는 나와 이 그룹의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대상이 서로 다른 것, 일상으로 부딪치는 삶이 다른 걸 비유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속한 삶은 농사, 생태, 환경 이런 것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삶이다. 이곳과 진주를 오가며 농사 짓고, 귀농자들이 만든 네트워크에서 농사기술, 생태, 환경 이런 것에 대한 의견 주고 받고, 가끔씩 내가 속한 정당의 시끄러운 꼬라지에 참여하고... 이런 것들이지. 그래서 이 비유를 쓸 때도 농사나 환경 이런 데 좀 관심 가지고 텃밭 농사라도 짓는 게 어떠냐고 하면서 덧붙인 비유지. 곧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속한 삶과 이 밴드의 다른 사람들이 속한 삶이 완전히 다르기에 말은 농사나 환경 이런 데 관심 좀 기울이자 이야기 하면서도 어차피 서로 속한 삶이 다르니까 '소 귀에 경 읽기'에 불과할 것 같다는 비유를 덧붙인 것이지. 바라보는 대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타자의 삶에 관심 기울이는 게 쉬울까? 쉽지 않다는 걸 아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고 표현한 것이다.


나의 이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 없다. 그래서 작년까지 열심히 올리던 농사 관련 얘기도 지금은 안 올리고 있다. 왜냐면 서로 바라보는 삶이 다르면 타자의 삶이나 이야기는 자신의 귀에 별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 글을 한참 안 올리니까 이 그룹의 누군가가 나에게 쪽지를 보냈더만. 왜 요즘은 글을 안 올리냐고. 그래서 답했다. 다들 제대로 읽지도 않는데 올려서 뭐하겠냐고. 


이게 내가 '소 귀에 경 읽기'라는 비유를 덧붙였던 이유지. 그런데 여기서 왜 네가, '나는 이 그룹의 사람들을 나보다 저급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읽어내는지는 너만이 알 수 있는 문제겠지. 아니할 말로 이런 비유를 쓸 때마다 이 비유는 '이런저런' 의미로 썼다고 부연 설명해야 하나? 난 그런 글 못 쓴다. 그런 글쓰기가 무슨 필요가 있나? 


이건 네가 사양하든 말든 설명해야 할 것 같고 네 사고에서 드러나는 타자에 대한 멸시나 차별을 드러내는 편린 같은 것은 꼭 지적해야겠기에 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함부로 예를 들면서 쓸 글이 아니었겠지. 타자는 너도 알다시피 나와 다른 '차이'지 '차별'이 아니다. "장자"의 '제물론'에서 이야기하는 핵심도 나와 타자의 동일성이다. 내가 나비고 나비가 나이듯이.


네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는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일면 수긍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아무래도 내가 위치지어진 연장자라는 무의식이 글에 녹아 나오겠지. 그런 부분이라면, 그런 부분을 지적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과하다면 언제든지 사과할 수 있다. 그때그때 지적해라.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 난 이 그룹의 남자들이 가끔 보이는 군대식 의식구조의 발화들, 쫄따구니까 니가 해야지 같은 걸 혐오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네가 지금 나에게 제기하는 방식에는 전혀 동의할 수도 없고 네가 나에게 느끼는 감정의 논리 구조도 전혀 수긍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이런 식의 '폭력적' 대응은. 넌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 폭력적인 거 아니냐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네가 지금 문제 제기하고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폭력적이다. 네가 폭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글쓰기는 개개의 사안마다 대응이 가능하지. 누구라도 언제든 지적하면 사과든 오해든 풀어낼 수 있으니. 그런데 네가 지금 제기하는 방식은 그런 게 불가능하다. 너만의 논리구조를 가지고 너만의 방식으로 상대방이 그것에 가볍게 대응할 수 없게 만드는 것. 이건 상당한 수준의 언어폭력이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내가 쓰는 문학적 수사나 비유적 표현을 너에게, 또는 너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필요한지는 모르겠다만) 하나하나 이건 이런 의미로 쓰였다 저런 의미로 쓰였다는 걸 설명하고 글을 쓸 생각도 없다. 차라리 글 쓸 인연을 정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게 나하고 너하고만의 차이인지 나하고 다른 사람 모두의 차이인지는 모르겠다. 그 어느 것이든 너의 그 '황당한' 이해방식을 미연에 방지할 부연 설명을 곁들여 가면서 글 쓸 생각은 없다. '소'를 비유하면서 '차이'를 이야기 하는데 '차별'을 느낀다면 그건 느끼는 사람의 문제지 내가 설명해 줘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이게 나의 결론이다. 


쓸데없는 군더더기 말은 하지 말자.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