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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각

국밥은 인생이다

by 내오랜꿈 2015.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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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짠가』의 시인 함민복은 국밥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함민복, ‘긍정적인 밥’ 중에서. 이 시는 1990년대에 쓰여졌다.)


잔치국수가 결혼식을 대표하는 음식이라면 국밥은 장례식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언제부터인가는 모르겠지만 국밥은 상가에서 문상객들에게 대접하는 음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요즘은 시락국으로 많이 바뀌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붉은 고추기름이 떠다니는 육개장이 장례식장의 대표 음식이었다. 곧 국밥은 돌아가신 이가 이승에 남은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대접하는 음식으로 여겨지는 것.



▲ 사진 출처:<한국일보> 2014. 11.10


작년 가을, 서울의 한 독거노인이 10만 원과 아주 짧은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하직했다고 한다. 그 노인이 남긴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


생의 마지막에 남긴 이 한 마디에는 우리네 삶의 풍속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자신의 장례를 치러 줄 누군가에게 남긴 국밥 한 그릇의 마음. 몇 번이고 곱씹어보게 만드는 애틋하고 쓸쓸한 메시지다.




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하동군 평사리. 최참판댁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자그마한 음식점이 하나 있다. 그 이름도 너무나 평범한 '평사리 국밥'. 





이 평범한 국밥집의 미닫이문을 밀고 들어서면 정면에 모든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국밥은 인생이다."


아, 하는 짧은 감탄사를 뒤로 하고 스무 명 정도가 앉을 수 있을까 싶은 좁은 실내에 배치된 탁자를 골라 앉아 국밥을 주문한다. 밥이라고 해봐야 소고기국밥과 소고기새싹비빔밥 두 개 뿐이고 그나마 겨울철에는 새싹비빔밥이 되지 않으니 고민할 필요도 없다. 국밥과 더불어 반드시 이 집에서 직접 담는 동동주(=막걸리)도 맛보아야 한다.


지금은 좀 사그러들었지만 3,4년 전까지만 해도 막걸리 열풍이 대단했었다. 하지만 이 막걸리 열풍은 나에겐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중·장년 층의 술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서인지 젊은 층의 입맛을 잡기 위해 전국의 대표 막걸리들이 점점 더 달콤해지고 탄산수화되어 가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서울의 '장수막걸리'와 부산·경남 지역의 '생탁'이 그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막걸리가 아니라 사이다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릴 적 집집마다 담궈 먹던 탁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평사리 국밥'의 막걸리를 쉬이 잊지 못할 것이다. 아무런 합성감미료도 들어가지 않은, 술지게미 원액을 고운 체에 물을 부어 가며 걸러서 먹던 막걸리의 맛. 물의 양에 따라 조금 싱겁기도 하고 진하기도 하던 막걸리의 맛. 바로 그 맛이다. 탄산수 막걸리에 찌든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을 무(無)맛의 막걸리 맛. 아마도 살아온 삶의 무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리라.




국밥 이야기하다가 막걸리 이야기로 빠져 버렸다. 그만큼 나에겐 임팩트가 강했기 때문이다. 국밥이 나오기 전에 세팅되는 밑반찬. 인공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배추 김치, 무 김치, 장아찌, 묵나물, 쌈장이 전부다. 국밥 맛은? '담담한' 맛이다. 어쩌다 한 번 찾게 되는 맛집의 음식이 아니라 매일 아침저녁 밥상에 오르는 음식 같은 맛. 하동이나 섬진강에 갈 일이 있거든 꼭 한 번 들러 당신의 인생을 맛보시기 바란다. 아마도 국밥 한 그릇을 비우기 전에 몇 번이고 김치 좀 더 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는 당신을 보게 되리라.


국밥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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