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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먹거리

죽순 삶기 그리고 죽순 장아찌

by 내오랜꿈 2015.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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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인가 싶더니 여름이다. 낮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고 있는 것. 며칠 집을 비운 사이에 텃밭의 양파가 줄기를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농사깨나 지었다는 분들이 오며가며 말을 건다. '양파는 줄기를 꺾어 줘야 알이 굵어진다'고. 때가 되면 스스로 알아서 줄기가 드러눕는데 왜 일부러 꺾어 주어야 하는지를 이해 못 하는 나로서는 한쪽 귀로 흘리고 만다. 생각의 차이겠지만 나로서는 몇백 개 몇천 개 양파 줄기 꺾을 시간 있으면 여행이라도 한 번 다녀오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


연휴 동안 밭일 하랴 산에 가랴 먹거리 장만 하랴 바쁘게 보냈다.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씨에 하루는 산에 오르고 하루는 참깨 파종밭 일구느라 땀으로 목욕하며 보낸 이틀을 보상해 주는 건 살 오른 죽순을 꺾을 수 있었다는 것. 내 어릴 적엔 모내기철을 전후한 시기는 늘 죽순이 들어간 음식을 먹었다. 요즘 이름으로 말하면 '범벅'일텐데 쌀가루인지 보릿가루인지 모를 곡류 가루에 죽순과 들깨를 비롯한 온갖 재료를 넣어 끓인 죽이었다. 지금은 별미요 웰빙식이겠지만 그때는 오랜만에 배 터지게 먹어도 괜찮았던 음식 가운데 하나였다.





옆지기 고향 동네 뒷산의 대나무밭. 죽순이 한창 올라오고 있다. 옛날 같으면 없어서 못 먹던 식재료인데 요즘에는 꺾어 가는 사람이 거의 없단다. 안 그래도 죽순 꺾을 데를 찾던 중이었는데 횡재한 기분이다. 혼자서 2시간 가까이 굵은 것만 골라 꺾어 날랐더니 라면 박스 가득 3개가 넘는다. 삶는 일도 만만찮을 것 같다. 



죽순 다듬기. 죽순 껍질은 밑둥만 조금 제거한 뒤 삶아서 벗기는 게 훨씬 편하다.


집으로 가져와 대충 손질한 뒤 삶기 시작한다. 인터넷이라는 게 편할 때도 있지만 그 편함이라는 게 때로는 너무 많은 엉터리 정보를 양산한다. 인터넷에서 죽순 삶는 법을 찾아 보니 '앵무새 따라 하기'가 너무 심하다. 대표적인 '앵무새 따라 하기'의 사례를 들자면,


첫째, 껍질을 까서 삶는다. 또는 반으로 잘라서 삶는다. 

둘째, 40분간 삶는다.

셋째, 쌀뜨물이나 된장을 넣어 죽순의 아린내를 없애 주어야 한다.

넷째, 삶으면서 죽순에서 나오는 불순물과 석회분(?)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


등이다. 블로그나 SNS 상에 올려져 있는 글의 절반 이상이 이걸 마치 진리인 양 반복하여 재생산하고 있다.



죽순 삶기. 장작불에 1시간 30분 정도 삶고 30분 정도 뜸들인다.



누가 처음 이러한 정보를 퍼뜨렸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 중에서 따라해야 할 근거가 있는 정보는 없다. 먼저, 죽순은 껍질을 까거나 자르지 말고 그냥 삶아야 죽순 색깔도 예쁘고 껍질도 잘 벗겨진다. 죽순을 다듬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생죽순 껍질 벗기기는 많은 시간과 조심성을 요한다. 잘못 벗기기라도 하면 끝부분이 부러지거나 껍질이 균일하게 벗겨지지 않고 툭툭 끊기기 일쑤다. 반면에 삶아서 껍질을 벗기면 한 손가락으로도 벗길 수 있다. 그리고 색깔도 전체적으로 고르게 나온다. 이걸 왜 힘들게 생죽순 껍질을 벗기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죽순의 아린내를 잡기 위해 쌀뜨물이나 된장을 넣어 주어야 한다는 것도 굳이 따라할 이유가 없다. 쌀뜨물이야 넣어 줘서 나쁠 건 없겠지만 된장은 죽순의 색깔을 검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죽순의 아린 맛을 잡아 주어야 한다는 이유 자체를 납득하기 힘들다. 죽순에서 무슨 아린 맛이 난다는 말인가? 나의 경우는 소금을 약간 넣고 1시간 30분 정도 장작불에 삶아 주는데 특별히 다른 걸 넣어서 잡아주어야 할 죽순의 잡내를 못 느끼겠다. 뭐 사람에 따라 미각에 차이가 있을 것이기에 이 부분은 내 주장만 옳다고 하지는 못 하겠다. 다만 삶는 시간은 40분으로는 부족하다. 1차로 삶은 뒤 육개장이나 소고기국에 넣을 재료로 쓴다면 모를까 죽순 숙회나 죽순 회무침으로 바로 쓰기에는 40분 가지고는 힘들다는 게 내 생각이다. 1시간 30분을 삶아도 밑둥 부분은 잘라낸 뒤 제육볶음이나 닭볶음에 넣어 먹기 위해 따로 보관하는데 40분을 삶아서 어떻게 먹는다는 건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다. 처음부터 밑둥은 버리고 연약한 윗부분만 삶는다면 모를까.



 죽순 껍질 벗기기. 삶은 뒤에 벗기면 한 손가락으로도 벗겨진다.


인터넷의 죽순 삶기 정보에서 제일 황당한 건 죽순을 삶으면 석회 성분이 우러나니까 그 성분을 걷어내 주어야 한다느니 어떠니 하는 것이다. 죽순을 삶을 때 우러나올 석회 성분이 많다는 것도 웃기는데 석회 성분이 우러나 불순물처럼 위로 떠오른다는 발상 자체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어떻게 사실처럼 둔갑해서 인터넷에 넘쳐나게 된 것일까? 이게 궁금해서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 보았다. 그 결과 유추해 낸 가장 그럴싸한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는 게 죽순 통조림이 아닌가 싶다. 


죽순 통조림을 따면 회백색의 고형물질이 묻어 있는데 이걸 석회 성분이라고 생각한 어느 '헛똑똑이 ' 하나가 죽순에는 석회 성분이 있고 보통 이걸 걷어내고 먹으니까 죽순을 삶을 때 떠오르는 불순물도 석회 성분이라고 생각하고 걷어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그 시초가 아닐까 싶다. 하나의 '헛똑똑이'든 여럿이든 그 출발점은 죽순 통조림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혹 다른 이유를 알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듣고 싶다.



 죽순 장아찌. 장아찌 담금장의 농도는 늘 똑같다. 봄나물 봄햇순 장아찌 담기 참조.


여기에 과학을 들이밀자면 죽순 통조림에 들어있는 회백색의 고형물질은 석회 성분이 아니라 '티로신'이라는 아미노산의 일종이다. 죽순에는 꽤 많은 단백질 성분이 들어 있는데 죽순을 삶았다가 냉각시키면 이 단백질 중의 일부가 물에 녹았다가 다시 응고하면서 결정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이 죽순 통조림에 들어있는 회백색 물질의 정체다. 죽순의 단맛은 죽순에 포함된 단백질 성분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인데 삶은 뒤 물 속에 오래 두면 단백질 성분이 물에 우러나게 되고 이것이 냉각되면 다시 고형화 되는 것이다. 따라서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죽순의 아린 맛을 제거하니 어쩌니 하면서 삶은 뒤 물 속에 오래 보관하는 건 죽순의 단맛을 없애는 것과 같다. 


어쨌든 죽순에는 우러나오는 걸 걱정해야 할 만큼 석회 성분이 들어 있지 않다. 제발 좀 확실한 정보만 올리고 유통시켰으면 한다. 스스로 앵무새가 되는 게 그렇게도 즐거운 일인가? 


죽순을 먹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우리 집에서 먹는 방법은 한정되어 있다. 가장 연한 부분은 죽순 숙회나 여러 가지 채소를 곁들인 죽순 회무침으로 먹고 가장 예쁘고 모양 좋은 부분은 장아찌를 담는다. 그리고 죽순 밑둥의 단단한 부분은 잘라내 따로 두었다가 제육볶음 등 볶음 요리에 넣어 먹는다. 아삭한 식감이 뛰어나고 끓이거나 볶아도 쉬 물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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