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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먹거리

칡순 효소 담기, 그리고 칡에 대한 몇 가지 상식들

by 내오랜꿈 2015.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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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 겨울철 추억을 꼽으라면 첫손가락에 꼽힐 게 칡 캐기다. 먹을 게 변변찮던 시절, 10살 전후의 어린 꼬마들이 겨울 한나절을 동무들과 어울려 놀이 삼아 동네 야산에서 캐낸 칡 몇 뿌리는 며칠 간식거리 치고는 꽤나 인기 높은 먹거리였다. 어린애들 뿐만 아니라 동네 청년들이나 어른들도 갈분을 얻기 위해 칡을 캐러 다니던 시절인지라 동네 야산에서 어린 꼬마들에게까지 실한 칡뿌리가 얻어걸리기는 쉽지 않은 법. 괭이, 삽, 톱, 호미를 들고 점점 깊은 산으로 들어가다 보니 어느새 한나절이 아니라 하룻일이 되어버렸던 어린 날의 칡 캐기.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동네 어귀에는 지천으로 널려 있던 칡넝쿨이 깊은 산으로 들어갈수록 왜 보기 힘든지를.



▲ '삼출복엽'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잎 모양, 도판. 출처 : "한국식물생태보감1", p1090


칡은 콩과 식물이다. 오랫동안 농사 짓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칡이 콩과 식물이라고 하면 "진짜?" 하고 반문하곤 한다. 얼핏 생각하기에 칡하고 콩을 연결짓기란 쉽지 않다. 그 사람들에게 칡잎을 보여 주면 대개는 "맞네" 하며 수긍한다. 칡잎은 콩잎, 특히 메주콩이나 강낭콩 잎과 흡사하다. 크기가 좀 다를 뿐. 이런 잎 모양을 전문용어로 '삼출복엽'이라고 한다. 잎 세 개가 항상 한 세트로 난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콩과 식물이 그러하듯 칡도 햇볕이 잘 스며드는 곳에서 왕성하게 자란다. 땅바닥을 기다가도 햇볕 쪼이기를 방해하는 대상을 만나면 그 대상을 타고 오른다. 튼튼한 나무든 연약한 갈대든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칡은 지금은 많은 곳에서 다른 식생을 방해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먹거리가 되고 약이 되고 한 잔의 차가 되어 주던 칡이 왕성한 번식력과 생활력 때문에 오히려 나쁜 식물로 인식되고 있는 것.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는 모두들 칡을 캐러 다녔기에 다른 식생을 방해할 정도까지 자랄 여지도 없었겠지만 그때도 칡은 늘 사람들의 곁에서 자라고 있었다. 사람들이 없는, 사람의 손이 가지 않은 곳에는 칡도 없다. 햇빛을 보아야만 자랄 수 있는 칡은 자연림이 이미 자리잡고 있는 곳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사람의 손이 간 곳, 예컨대 벌목된 곳, 무덤가, 산불이 난 곳, 개간한 땅 등 칡이 자라는 곳은 어떤 형태로든 사람의 개입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생태학자인 김종원 교수는 칡이 싫다면 자연생태계에 인간이 간섭하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1", p682). 끊임없이 자연생태계에 간섭하면서 칡을 탓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5월은 칡순이 왕성하게 돋아나는 때다. 땅속에서 나온 줄기가 땅을 기다가 적당한 곳에 뿌리를 내리면 새로운 줄기를 밀어올린다. 그 줄기에서 새순이 돋아나 다시 땅을 기고 새로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가 다시 새로운 줄기 키우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2년이 지나면 새로운 뿌리는 어미 개체와 연결되어 있던 줄기가 끊어져 완전히 독립된 개체가 된다. 빛이 들어오는 곳이면 칡의 이러한 무한생장은 멈추질 않는다. 곧 칡을 통제하고 싶으면 빛을 통제하면 된다.


칡은 보통 뿌리를 식용이나 약용으로 이용하지만 칡잎이나 칡꽃을 차로 이용하기도 하고 칡순을 장아찌나 효소로 담그기도 한다. 남부지방은 5월 중순에서 말까지가 칡순 채취하기 가장 좋은 때인데 장아찌는 칡순의 끝부분인 여린 순을 이용해야 하고 효소는 조금 억센 순까지 사용해도 된다. 지금이 채취하기 좋은 때라는 건 이 시기가 지나 잎이 활짝 피면 송충이 같은 애벌레나 진딧물 같은 벌레들의 공격을 받아 손질하기가 번거롭기 때문이다. 잎이 피기 전에는 벌레들이 잘 달려들지 않는다.




칡순 효소 담는 방법은 솔순 효소 담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 칡순도 과일이나 채소 같은 재료보다 수분 함량이 낮기 때문에 설탕 비율을 원재료보다 적게 하는 게 좋다. 수분함량이 58%인 솔잎이나 솔순보다는 조금 높은 60~70% 사이가 아닐까 싶다. 칡 뿌리의 수분 함량은 67% 정도라고 나와 있는데 칡순이나 칡잎의 수분함량은 정확히 나와 있는 자료를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칡 뿌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채취한 어린 순을 손질하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준다. 그런 다음 설탕량은 칡순 무게의 80% 정도만 넣는데 60%는 칡순과 버무려서 넣고 나머지 20%는 동량의 물에 녹여서 시럽 형태로 만들어 넣어 준다. 담은 뒤 처음 일주일 동안은 바닥에 설탕이 응고되지 않도록 항아리나 통을 흔들어주거나 막대기로 저어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 그늘진 곳에서 3개월 정도 보관한 다음 효소액은 걸러내어 2차 발효시키고 칡순 건더기는 다시 소주를 부어 칡술을 담는다.




효소액이란 건 결국 삼투압 작용으로 원재료의 수분이 밖으로 배출되는 것인데 원재료의 여러 성분 중에는 물에 녹지 않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성분 중에는 물에는 녹지 않으나 알코올에는 녹는 것이 있을 것이므로 효소 건더기에 소주를 부어 우려내어 마시는 건 원재료가 가진 여러 성분을 섭취하는 훌륭한 방법의 하나일 수 있다.


칡은 옛부터 구황작물로 이용되었고 자양강장제 같은 건강식품으로도 쓰였다. 요즘은 워낙에 여러 가지 전분 가루가 넘치는 세상인지라 갈분용으로 칡을 캐는 일은 드물고 칡즙 정도만 건강식품으로 이용된다. 최근에는 칡에 함유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함량을 들먹이며 칡을 '신격화' 하는 글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에스트로겐 함량이 높은 석류보다 600배가 많으니, 626배가 많으니, 636배가 많으니 하며. 도대체 이 숫자들은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일까? 찾아 봐도 '그렇다'는 주장만 있지 비교 방법이라든가 데이타 같은 건 없다. 대부분 칡즙을 만들어 파는 곳 하고 연관된 곳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아니면 앵무새처럼 아무 생각없이 남의 글 스크랩 해다 놓은 것이거나.


항상 강조하는 말이지만 '기적의 식품' 같은 건 없다. 어떤 식품 하나 먹는다고 우리 몸이 갑자기 좋아질 것 같으면 세상에 아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칡순이나 칡즙도 마찬가지다. 먹어서 나쁠 건 없겠으나 이거 먹는다고 안 좋던 몸이 갑자기 좋아지는 걸 기대하지는 마시라. 무엇이든 적당히 즐겁게 먹는 게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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