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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먹거리

솔순 효소 담기 : 효소 담기의 몇 가지 문제

by 내오랜꿈 2015.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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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물 장아찌 담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솔순이나 칡순 같은 산야초 효소 담기가 시작된다. 장아찌가 주로 봄나물로 자주 섭취하는 재료에 국한된다면 효소는 식용 가능한 재료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한 가지 재료만 가지고 단일 효소로 담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서 혼합 효소로 담을 수도 있다. 다만 여러 가지 재료를 섞을 경우는 각 재료의 효능이나 성분이 서로 충돌하거나 길항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재료를 선별해야 하므로 각종 산야초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는 아직 혼합 효소를 담기에는 산야초에 대한 지식이 얕은 까닭에 단일 효소만 담고 있다.





효소 담기에서 이 시기에 빠뜨릴 수 없는 재료가 솔순이다. 솔순 효소는 향기가 너무 좋아서 한 번 담은 사람은 계속 담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효소 담기에 비해 손이 많이 간다. 꺾을 때부터 송진이 묻어나 갈무리하기도 까다롭고 다듬은 뒤에는 송진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더해야만 한다. 송진을 제거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물에 담궈 우려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솔순을 큰 통에 담은 뒤 수돗물을 틀어 4~5일 동안 물이 흐르도록 하면 송진이 깨끗하게 제거된다고 하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4~5일 동안 수돗물을 계속 틀어 두는 반환경적, 반생태적 행위까지 해 가면서 몸에 좋은 것 찾아 먹어야 할까? 내가 보기에는 어떤 방법을 쓰든 송진을 100% 제거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또한 왜 송진을 제거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도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들은 효소액에 송진이 배어 나오는 까닭에 희석해서 음료수로 마실 때 물에 뜨게 되니까 보기에 안 좋다는 이유를 내세우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송진의 유해성을 이야기 한다. 곧 송진이 인체 내에서 분해되지 않는 까닭에 혈관 속에 축적된다는 것이다. 살벌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솔순의 효능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솔순 효소가 혈관 속의 콜레스트롤 축적을 막아 동맥경화를 방지하고 말초혈관을 확장시켜 혈액순환을 촉진시킨다고 한다.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한쪽은 혈관이 막히니까 유해하다고 하고, 한쪽은 혈관을 확장시키니까 몸에 좋다고 한다. 과연 어느 쪽 주장이 진실일까?



▲ 손질한 솔순을 물에 씻으면서 떠오르는 송진을 제거하는 중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솔순에서 나오는 송진 성분이 인체 내에서 분해되지 않아 혈관 속에 축적된다는 걸 기술한 건 없었다. 자료는 없고 인터넷이나 SNS 상에서 그저 '그렇다더라' 라는 '카더라 통신'만 난무할 뿐이다. 적어도 이런 주장이 과학적인 힘을 얻으려면 솔순에서 나오는 송진의 어떤 성분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인체에서 다른 물질로 분해 불가능하다는 근거를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찾아본 한에서는 이런 근거를 밝힌 책이나 자료는 없었다. 혹 있다면 그 근거를 좀 밝혀주시기 바란다.


오히려 솔순의 유해성을 따지자면 환경적인 요인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심각하게 문제되고 있는 게 소나무 재선충이다. 솔수염 하늘소에 기생하면서 소나무를 갉아먹는 선충을 말하는데 효과적인 방제수단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이다. 별 효과가 없는 걸 알면서도 전국의 야산에 항공 방제를 하느라 상당한 양의 약제를 살포하고 있는 모양이다. 소나무의 경우 송진 때문에 한 번 묻은 약제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솔순을 채취할 때 소나무 재선충이 번지고 있는 지역에서는 삼가는 게 좋다. 주변 야산에 소나무를 잘라 방수포로 덮어 놓은 게 널려 있다면 차라리 솔순 채취를 포기하는 게 건강을 지키는 길이다. 몸에 좋은 것 조금 찾아 먹자고 살충제 덩어리 먹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 씻은 솔순의 물기를 말리는 중


반면에 솔순의 효능에 대한 건 몇 가지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만 SNS 상에서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직접적으로 혈관을 확장한다거나 콜레스트롤 축적을 방지하는 특정한 물질이 있는 건 아니다. 이런 효과를 촉진하는 무기물이나 비타민 성분이 들어 있다는 말이다. 예컨대 비타민 A의 여러 기능 중에 혈액의 콜레스트롤 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있는데 솔순에는 비타민 A가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걸 가지고 '솔순이 콜레스트롤 수치를 낮추는 식품이다'라고 말한다면 '시금치가 콜레스트롤 수치를 낮추는 식품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알다시피 시금치는 비타민 A의 보고라고 하지 않는가.


한국식품과학회에서 펴낸 『식품과학기술대사전』(광일문화사, 2008)에 나와 있는 솔잎의 성분을 보면 "수분 58.1%, 단백질 4.5%, 지방 3.9%, 탄수화물 19.6%, 섬유 13.3%, 무기질 0.6% 이며 비타민 A와 B1 및 C가 풍부하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무기질에는 페놀화합물, 키닌, 털핀, 철분 등이 풍부하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다른 식물에도 있는 물질인데 동일한 양을 비교했을 때 솔순에 조금 더 많다는 정도다. 여기서 우리가 내려야 할 결론은 어떤 식품이든지 환상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 요즘 논란이 되는 가짜 백수오 문제도 결국은 지나친 '건강염려증' 내지 '건강이데올로기'가 가져온 부작용의 일환이다. 만약 어떤 사이트나 블로그에서 솔순이나 솔잎의 효과를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고 있다면 관련 제품을 판매하고 있거나 맹목적으로 다른 사이트의 글을 카피해 놓은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 솔순을 3~5cm로 적당히 잘라 주기


오히려 솔순이나 솔잎의 순기능은 조선시대에는 구황작물로도 이용되었다는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다. 20여 명의 인문학자들이 함께 편찬한 『18세기의 맛:취향의 탄생과 혀끝의 인문학』(문학동네, 2014)이라는 책에 보면 조선 세종때 편찬된 『구황촬요』를 인용하여 솔잎을 구황작물로 이용하는 방법과 문제점 등을 상세하고 서술하고 있다. 이 『18세기의 맛:취향의 탄생과 혀끝의 인문학』은 현대와 18세기를 비교해서 아우르는 '퓨전 인문학' 책인데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 솔잎을 언급하는 장의 제목이 "사람 살리는 맛 : 굶주린 백성에게 솔잎을"이다. 그리고 이 장의 소제목에 "똥구멍이 찢어지는 가난의 고통"이라는 게 있다. 이 제목들이 모든 걸 말해 준다. 솔잎은 대표적인 구황작물로 이용될 만큼 순한 식물이지만 단 하나, 똥구멍이 찢어지는 변비의 고통이 따른다는 거다. 이른바 '가난의 고통'.


결론적으로 솔순이나 솔잎의 효능은 제한적이다. 그냥 향기 좋은 차 마신다고 생각하고 적당히 먹는 게 건강에 이롭다. 몸에 좋은 거라고 과하게 섭취하면 변비가 따르는 등의 부작용도 있으니까. 그러나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변비가 생길 정도로 솔잎을 먹겠는가. 송충이도 아니고. 반면에 송진 덩어리를 먹는 것도 아닌데 과학적인 근거도 없으면서 솔순의 송진 성분이 혈관을 막니 어쩌니 하는 허무맹랑한 소리는 내가 찾아본 한에서는 믿을 게 못 된다.




솔순 효소 담는 방법은 다른 효소 담기와 별다를 게 없다. 솔순을 씻어 물기를 말린 다음에 적당한 크기로 잘라 설탕과 혼합하면 된다. 나는 언제나 원재료의 무게와 설탕의 비율을 1:0.8~0.9 정도로 한다. 수분이 조금 많은 재료는 0.9까지 설탕을 넣고 수분이 적은 재료는 0.8 정도만 넣는다. 이때 한 가지 고려하여야 할 것은 원재료의 수분 함량이 80% 이하일 때다. 앞에서 언급한 『식품과학기술대사전』에는 솔잎의 수분 함량이 58.1%라고 나와 있다. 효소를 담는 다른 일반적인 재료와 비교해서 수분 함량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이럴 경우는 원재료의 수분 함량과 같은 비율 정도만 설탕을 넣어 버무리고 나머지 설탕은 시럽을 만들어 넣어 준다. 원재료의 부족한 수분을 보충하고 효소를 잘 발효시키기 위한 방법이다.


솔순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10Kg의 솔순이나 솔잎이 있다면 효소를 담기 위해서는 8Kg의 설탕이 필요하다. 이때 솔순의 수분 함량이 58.1%니까 1차로 5.8Kg의 설탕을 솔순과 혼합한다. 그런 다음 남은 설탕 2.2Kg은 물 2.2L에 녹여서 설탕 시럽을 만들어 넣어 준다. 꼭 5.8Kg, 2.2Kg 따질 건 없다. 적당히 6Kg, 2Kg으로 나누어도 된다. 요는 원재료의 수분 함량과 설탕 넣는 양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라는 말이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원재료 대비 설탕 양의 상관관계다. 보통 원재료 대비 설탕 양을 1:1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요한 건 어떤 효소액을 원하는가에 따라 담는 사람 스스로가 조절해야 한다. 발효라는 건 설탕 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재료와 설탕 양이 동일한 비율로 올라갈수록 발효라기보다는 시럽 형태가 되고 설탕 양이 내려갈수록 발효가 왕성하게 진행되어 초산 형태로 된다. 식초화 된다는 말이다(이걸 '식초가 된다'는 의미로 해석하지는 마시라. 초산 발효가 진행되어 시큼한 효소가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원재료 추출액을 발효보다는 시럽 형태로 장기 보관하고 싶으면 설탕 양을 원재료의 무게 수준으로 높이고(단, 이때는 거의 발효가 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발효가 진행된 효소를 먹고 싶으면 설탕 양을 줄이면 된. 내가 생각하기에 이 마지노선이 원재료의 0.8이 아닌가 싶다. 이 이하로 설탕을 줄이면 왕성한 발효로 인해 초산화하는 속도가 너무 빨리 진행된다. 물론 이것도 담는 곳의 환경, 곧 기온이나 습도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계절에 따라 적당히 조절해야 할 문제이다.




이 원리를 이해한다면 3개월을 발효시켜야 한다, 3년을 발효시켜야 한다는 등의 말은 핵심을 벗어난 소리다. 인터넷이나 SNS 상에서 보면 효소를 오래 숙성하면 숙성할수록 마치 발효가 많이 진행된 좋은 효소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반쪽짜리 진실이다. 심지어 발효가 되지 않을 정도의 설탕을 넣었다면 3년이 아니라 30년을 보관해도 발효는 되지 않는다. 꿀을 30년 동안 보관한다고 발효가 될까? 핵심은 원재료와 설탕의 비율이다. 원재료와 설탕을 1:1로 혼합한 효소보다는 1:0.8로 혼합한 것이, 1:0.8보다는 1:0.6으로 혼합한 것이 훨씬 더 발효가 잘 된다. 물론 설탕 함량이 낮아질수록 과발효되어 초산화될 위험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정확한 실험을 해 보지 않아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1:1로 혼합해서 3년 보관한 효소보다는 1:0.8로 혼합해서 3개월 보관한 효소가 더 많은 발효가 진행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이조차도 원재료가 어떤 것이고 환경이 어떠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요는 오랫동안 숙성시키니 어떠니 하는 게 핵심이 아니란 말이다. 설탕 양이 핵심이다. 물론 동일한 설탕 양이라면 오래 숙성시킬수록 더 좋을 수 있다. 단 이때도 발효가 지나쳐 초산화되어 버린다면 오랜 기간 숙성시킨 의미는 반감된다. 그러기에 효소 담기는 오랜 경험과 발효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병행되어야 한다. 발효는 경험이 아니라 과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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