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 백 미터만 걸으면 그 유명한 77번 국도다. 우리 나라 남서 해안을 따라 바닷가 근처라면 어디든 뻗어 있는, 부산에서 시작해 인천에서 끝나는 가장 긴 국도. 하긴 뭐, 이것도 아는 사람한테나 의미가 있지 모르면 그냥 아스팔트 길일 뿐이다. 이 길을 만나 오른쪽으로 가면 바닷가, 왼쪽으로 가면 산이다. 우리 부부가 주로 가는 길은 당연히 왼쪽, 산이다.
토요일 새벽 진주로 가서 고추 모종 사고 묵은 밭 정리하고 갖가지 모종 심고 다시 집으로 오니 밤 11시. 이것저것 정리하고 나니 일요일로 넘어간다. 길고 긴 하루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기억에도 없는데 일어나니 8시가 다 되어 간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는 옆지기에게 도시락을 준비시키고 산에 갈 채비를 한다. 산나물을 뜯기 위해서다.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두 말 하면 잔소리지만 오늘 하지 않으면 1년 뒤에나 다시 할 수 있는 일들도 있는 법이니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고사리, 고비, 취나물도 캐야 하지만 오늘은 야생 참다래순과 청미래덩굴순을 따야 하기 때문이다.
▲ 주변 소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참다래 나무
▲ 야생 참다래순
▲ 집에서 키우는 참다래순
걸어가기는 좀 애매한 거리라 차를 가지고 유주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이미 먼저 온 승용차 두 대가 정차해 있다. 확실히 나물철이긴 한 모양이다. 옆지기는 취나물을 캐고 나는 고비, 고사리 꺾기를 두 시간여. 유주산 등산로 중턱에 있는 야생 참다래 나무를 만난다. 아마도 이 지역에서 재배하는 참다래 나무의 씨앗이 퍼져 야생으로 크고 있는 듯하다. 우리 집에서 자라고 있는 참다래와 비교해 보면 사진에서와 같이 잎이 조금 붉고 잔털이 많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참다래도 어떠한 인위적인 수고로움도 더함이 없으니 차이가 나는 건 품종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확인하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다.
몸도 무거운데 이것저것 따다 보니 손에 든 봉지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오늘따라 날씨도 엄청 덥다. 아이스박스에 넣어 온 막걸리 생각이 간절하다. 물가에서 점심을 먹자는 옆지기의 말을 따라 집 뒤편 저수지 상류 쪽으로 가 자리를 편다. 찰밥에 텃밭에서 뜯어 온 상추와 치커리, 장아찌가 전부다. 아, 막걸리는 덤이자 주빈이다. 지금은 밥보다 막걸리가 더 당긴다. 땀 흘리고 난 뒤에 먹는 막걸리의 맛이란...
▲ 청미래덩굴
부른 배에 막걸리까지 먹었으니 돗자리에 드러누워 계곡의 물소리를 자장가 삼아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이 간절함을 억누를 수 있는 건 눈앞에 널린 취나물과 청미래덩굴순 때문이다. 청미래덩굴은 흔히들 '망개'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경남 의령 지역에는 '망개떡'이라고 하는 향토 음식도 있는데 망개로 만든 떡이라기보다는 송편이나 찹쌀떡 종류를 부패 방지를 위해 망개잎을 싸서 보관하거나 유통시키는 떡을 일컫는다. 그만큼 청미래덩굴 잎에는 천연방부제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는 뜻이리라.
▲ 청미래덜굴순 장아찌
▲ 참다래순 장아찌
작년까지는 청미래덩굴이나 참다래의 경우 장아찌는 담지 않고 효소액만 담궜다. 올해 처음 담아 보는 장아찌인데 청미래덩굴순은 보기만 해도 익은 뒤의 아삭한 식감이 느껴질 정도다. 또 관련 자료를 찾아 보니 거의 만병치료제다. 백합과 식물치고는 특이한 케이스다. 우리가 재배하는 백합과 작물, 예컨대 마늘이나 양파, 부추 같은 널리 알려진 식용작물 외의 백합과 식물은 강력한 독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콜히친이라는 맹독성 성분이 들어 있는 원추리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산야에서 산나물을 채취할 때 백합이나 수선화 어린 잎 모양으로 생겼으면서 외떡잎으로 올라오는 것들은 함부로 채취하지 않아야 한다. 나의 경우는 확실히 아는 것 외엔 외떡잎으로 싹이 나는 건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청미래덩굴순은 생으로 먹어도 될 만큼 독성이 없다. 아니 천연방부제로 쓰이는 걸 감안하면 독성이 없다기보다는 인체에 무해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청미래덩굴순까지 땄으니 이제 솔순, 칡순, 죽순으로 가는 길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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