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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태환경

참개구리와 삼순이 그리고 돼지풀

by 내오랜꿈 2015.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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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고흥에서 철쭉 군락지로 유명한 천등산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다. 집 주변이 전부 논밭이고 집 앞으로는 천등산 남쪽 사면의 어느 이름 모를 골짜기에서 시작되어 풍남항으로 흘러드는 제법 큰 개울이 흐른다. 이 개울은 6년 전 내가 이사올 때만 하더라도 도롱뇽이 우글거릴 정도로 깨끗한 물이었는데 지금은 비만 오면 도롱뇽이 개울물을 피해 우리 집 마당으로 피신할 정도로 오염되어 가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취나물 재배가 늘어남에 따라 산 아래에 생긴 취나물 가공 공장 때문이다. 일년 내내 섬쑥부쟁이와 유채 삶은 물을 개울로 쏟아내고 있는 것. 이로 인해 개울은 부영양화되어 점점 돼지풀이나 고마리 등 질소질이 넘치는 곳에 잘 자라는 풀들로 뒤덮이고 있다. 처음 이사왔을 때는 이 개울에서 돼지풀은 구경할 수조차 없었다.




▲ 돼지풀 군락지


내가 알기에 돼지풀이 우거지는 곳은 다른 식물군들이 견뎌나질 못 한다. 식물생태학 전문서적을 찾아 보면 돼지풀은 이웃 식물의 발아와 생육을 저해하는 생화학적 타감효과(alleropathy)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식물사회학에서 돼지풀은 '진개식물군락' 진단종으로 쓰인다. 여기서 '진개(塵芥)'란 '오물', '쓰레기' 등을 뜻한다. 곧 '쓰레기터식물' 진단종이란 말이다. 그만큼 돼지풀이 서식하는 곳은 지저분한 곳이거나 질소질 비료가 과용된 곳일 확률이 크다. 1급수 진단종인 도롱뇽이 살던 곳에 진개식물군락 진단종인 돼지풀이 우거지고 있는 현실. 인간이 생태계에 미치는 급속한 영향력을 매일 눈 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이사 와서 도롱뇽이 살고 있는 걸 보고는 몇 번 개울의 쓰레기도 청소하는 모범도 보이곤 했었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제발 쓰레기 좀 개울에 버리지 마시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던 셈인데, 청소하는 나를 보고선 동네 노인분들이 하는 말씀은 나를 거의 '그로기' 상태로 몰았다. 


"냅둬버러~. 큰물 한 번 지면 다 떠내려 가!"


그래, 떠내려 가겠지. 저 앞 바다로. 자기들이 바지락 종패를 뿌려 캐먹는 곳으로. 김 미역 다시마 양식장이 밀집되어 있는, 청정지역이라 자랑하는 곳으로.ㅠㅠ 도저히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제는 더이상 청소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저 위의 취나물 가공 공장이 없어지지 않는 한. 



▲ 대파 모종 사이에 터를 잡고 웅크리고 있는 참개구리


비록 개울물이 점점 오염되어 가고 있지만 그래도 이 주변 생태계는 아직 건강한 편이다. 목장이나 축사 같은 특별한 오염원이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우리 집은 여름이면 여느 집에서는 쉽게 구경할 수 없는 동물들과 공존한다. 밤이면 하루살이를 잡아 먹으려고 창틀에 매달리는 청개구리, 큰 비 오면 한 번씩 집 마당에 기어다니는 도롱뇽, 텃밭과 집 마당을 오가는 참개구리와 두꺼비 그리고 개구리를 잡아 먹으로 오는 꽃뱀 유혈목이. 유혈목이가 나타나면 옆지기는 기겁을 하지만 개구리가 우글거리는데 어떻게 뱀이 없을 수 있을까. 


우리 집 주변에 나타내는 개구리는 주로 참개구리다. 참개구리의 생태에 대해서는 그닥 아는 게 없는 편인데, 경험적으로 이놈들은 자기 영역을 고수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앞마당에 보이는 놈은 줄곧 앞마당에만 있고 텃밭에 보이는 놈은 텃밭에서만 생활한다. 며칠 전부터 참개구리 한 마리가 아침이면 포트에서 키우고 있는 대파 모종 사이에 터를 잡고 웅크리고 있다. 쫓아내도 몇 시간 뒤에 보면 다시 그 자리에 와 있다. 아직까지 연약한 모종이라 이놈이 저러고 있으면 대파 모종이 몇 개씩 부러지는 건 당연지사. 몇 번 실랑이를 하다가 도저히 안 돼 오늘 이 개구리를 생포한 뒤 텃밭으로 쫓아보낼 수밖에 없었다.



▲ 참개구리가 웅크리고 있던 자리


참개구리가 웅크리고 있던 흔적을 보고 있으니 "아~"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러고 보니 앞마당에 있는 텃밭 화분 곳곳에 움푹 파인 흔적이 있는데 형태를 살펴 보니 아무래도 참개구리의 흔적인 것 같다. 아, 불쌍한 삼순이. 이걸 모르고 맨날 삼순이만 나무라다니... 앞발로 파헤친 흔적과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던 흔적은 엄연히 구분되는데 말이다. 


삼순이한테 괜히 미안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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