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부터 봄이와 삼순이가 요란하게 짖는다. 밖을 내다보니 집옆 논에서 유채 베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벼농사 사이 작물로 심은 유채 꽃몽우리가 맺히고 있었는데 오늘 베는 모양이다. 요즘 우리 집 주변은 푸름이 넘친다. 자연의 푸름이라기보다는 약간의 인위적인 푸름. 대규모로 재배하는 취나물과 유채 덕분이다.
▲ 재배 취나물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섬쑥부쟁이
내가 사는 곳은 우리 나라에서 재배 취나물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이고 그 중에서도 우리 집 인근에 취나물 재배 농가가 밀집되어 있다. 이곳에서 재배하는 취나물은 흔히들 울릉도 취나물로 불리는 섬쑥부쟁이다. 섬쑥부쟁이가 울릉도 취나물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아마도 섬쑥부쟁이의 자생지가 울릉도이고 울릉도에서는 이 섬쑥부쟁이를 취나물이라 부른다고 하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섬쑥부쟁이와 생김새도 비슷하고 쓰임새도 비슷한 게 부지깽이나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섬쑥부쟁이와 부지깽이나물을 혼동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같은 것이라 하기도 한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취나물 종류를 통틀어 부지깽이나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섬쑥부쟁이는 초롱꽃목 국화과고 부지깽이나물은 양귀비목 겨자과로 분류되니 이 둘은 전혀 다른 식물이다. 섬쑥부쟁이와 유전적으로 비슷한 식물로는 미역취가 있다. 미역취와 섬쑥부쟁이는 어릴 때는 구분하기 힘든데 좀 자라면 섬쑥부쟁이가 좀 더 많은 줄기를 뻗는다. 결정적인 차이는 꽃색깔인데 미역취는 노란 꽃, 섬쑥부쟁이는 하얀 꽃이 핀다. 꽃을 피워 종자를 퍼뜨리는 식물은 뿌리나 줄기로 번식하는 식물보다 유전적 변이가 심하게 일어나는데 미역취 종류가 울릉도라는 고립된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변이가 적게 일어나 보다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여러 자료를 검토해 본 다음 내가 내린 추측성 결론이다.
▲ 섬쑥부쟁이 재배밭
어쨌거나 전국적으로 취나물 재배 면적은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다. 내가 사는 곳만 하더라도 처음 이사 왔을 때와 비교해 보면 재배하는 농가가 엄청 늘었다. 처음에는 하나 뿐이던 가공 공장이 지금은 우리 집 반경 3Km 안에 4개나 들어서 있을 정도다. 이렇게 취나물 재배 면적이 늘어난 것은 '건강 이데올로기'가 득세한 탓이 클텐데, 막상 재배하는 걸 옆에서 보고 있으면 절대 먹고 싶지 않다. 웰빙 바람을 타고 전국의 마트에 공급되는 건취나물은 이 재배 취나물을 삶아서 말린 것인데 키우는 과정에서 뿌려대는 화학비료와 농약의 살포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1년에 일고여덟 번, 많게는 열 번 가까이 수확하는 작물이다 보니 베고 나면 요소 비료 뿌리고 좀 자라면 농약 치고를 1년 내내 반복한다. 이 지역만 해도 모두 쉬쉬 하고 있지만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올려 보냈다가 잔류농약 검사에 걸려서 퇴짜 맞고 벌금을 문 농가들도 있다.
요즈음 중부지방 같은 곳에서는 하우스 안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하기도 한다는데 이것은 주로 생식용으로 공급되고 비싼 값에 팔리니 건취나물을 만들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건취나물로 공급되는 취나물은 대부분 노지 재배라 보면 된다. 노지 재배에서 농약 안 치는 농가 있으면 어디 한 번 구경하고 싶다. 취나물 재배 농가와 관련되는 사람들이 이 글을 보면 싫어하겠지만 소비자들은 무엇이 웰빙인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몸에 좋다고 농약과 화학비료로 떡칠된 재배 봄나물을 먹고 있는 건 아닌지를.
▲ 유채가 자라는 논. 일반적으로 유채는 어린 순을 먹는다. 이렇게 꽃대가 올라올 때까지 키우지 않는다. 당연히 이런 걸 먹지도 않고. 그러나 건나물 가공용으로 키우는 건 이렇게 꽃대가 올라올 때까지 키운다. 그래야 무게가 많이 나가니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삶아서 건조시키면 어린 순인지 꽃대가 올라온 순인지 그 누가 구별하랴!
취나물이 집 주변 밭을 뒤덮고 있다면 몇 해 전부터 논에서는 겨울에도 유채가 푸르게 자라고 있다. 취나물 가공 공장이 4개나 있다 보니 취나물이 나지 않는 겨울에 유채를 길러 가공해서 파는 것이다. 유통과정은 취나물과 동일하다. 유채를 잘라 가공 공장으로 보내 삶은 다음 건조시켜 유통시킨다. 아마도 '월동 춘채' 이런 식으로 표기되어 있으면 유채라고 보면 된다. 그나마 유채는 겨울에 자라는지라 엽면 농약 살포는 하지 않는다. 대신에 벼수확이 끝난 논에서 재배하는 것이라 가을 파종기에 토양소독제를 뿌린다. 토양소독제나 제초제는 엽면 살포용 농약보다 몇십 배 몇백 배는 독성이 강하고 반감기도 길다.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생각 없이 토양소독제와 제초제를 뿌려대는 동네 어르신들을 보면 내 몸에 소름이 다 돋는다.
▲이 넓은 논에서 베어진 유채는 가공 공장에서 건조시킨 뒤 상품화된다.
제가 먹을 거는 제가 길러서 먹는 게 제일 안전하다. 누구나 다 그럴 수 없다는 게 문제지만. 항상 강조하는 말이지만 건강은 몸에 좋은 음식 찾아 먹는다고 좋아지는 게 아니다. 지나친 건강 염려증이 봄나물을 대량 재배하게 만들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떡칠하게 만든다.
'살아가는 모습 > 생태환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약, 패랭이꽃 그리고 치자 (0) | 2015.05.22 |
---|---|
참개구리와 삼순이 그리고 돼지풀 (0) | 2015.05.11 |
봄장마 속에 맺힌 작약 꽃 몽우리 (0) | 2015.04.06 |
"고추학 개론"을 보고 나서... (0) | 2014.12.16 |
무식한 놈 (0) | 2014.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