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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태환경

"고추학 개론"을 보고 나서...

by 내오랜꿈 2014.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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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SNS 사이트에서 고추에 관한 글 하나를 보았다. <고추학 개론>이라는 제목이 붙은 동영상인데, 우리네 식생활에서 빠질래야 빠질 수 없는 양념의 하나인 고추에 관해 이런저런 상식을 엮어서 만든 동영상이었다. 흔하디 흔해서 무심코 넘어가는 고추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나름 잘 만든 동영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동영상을 만든 이도 코멘트로 달아놓았듯 '상상'이 좀 과도해서 그런지 민족의식의 과잉 발현인지 모르겠지만 빈약한 사료를 근거로 들이밀며 한반도에서 고추 재배의 오랜 역사성을 입증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곧, 옛 문헌에 '고쵸'라는 말이 나온다는 근거를 토대로 고추가 조선시대 이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먹어 왔던 음식재료라 주장하는 것이다. 동영상을 만든 이가 어떤 자료를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이러한 주장들은 대부분 일부 식품영양학자들이 편찬한 <고추이야기>(권대영, 정경란 외)에 실린 걸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 이전 한반도에서의 고추 재배 근거를 1489년에 간행된 <구급간이방>에 고추의 옛 한글 표기인 '고쵸'가 한자 '초椒'와 명기되어 있다는 사실을 내세운다. 또한 <구급간이방>보다 몇십 년 앞서 조선초에 간행된 <향약집성방>(1433)과 <식료찬요>(1460)에 나오는 '초장椒醬'이 오늘날 우리가 먹는 고추장을 가리킨다고까지 주장한다. 



▲ 초피나무에 핀 꽃(2014년 4월 18일)


이 주장들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은 하나다. 고추가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기존의 학설이 틀렸다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고추를 재배해서 식재료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냥 고문서에 '고쵸'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초장'이라는 단어가 나온다는 사실이 근거의 전부다. 기존의 학설에서는 이를 어떻게 해석할까?


먼저 '초椒'라는 한자어는 나무 목木과 숙叔을 합한 형성문자인데, 갑골문에 등장하는 숙(叔)은 '가지에 붙어 있는 콩'을 의미한다고 한다. 곧 '초椒'라는 한자어는 초피나무에 매달려 있는 열매를 가르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문헌에 등장하는 '고쵸'는 후추나무, 산초나무, 초피나무 등의 열매를 통틀어서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초장椒醬'은 초피로 담근 장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 된장, 간장을 오래전부터 담궈 먹었으니 초피를 이용해 오늘날의 장아찌 같은 형태의 장을 담궈 먹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존의 학설을 뒷받침하는 문헌들은 수도 없이 많다. 고추에 관한 최초의 기록으로는 1614년에 간행된 이수광의 <지봉유설>이라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지봉유설>에 묘사된 고추는 식용으로 적합한 식재료로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 이것의 의미는 우리나라에 고추가 도입된 초창기에는 고추가 식용이라기보다는 약용으로 쓰였고 장류 등에 넣어 삭혀서 사용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먹는 고추장의 제조법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문헌도 1740년대에 편찬된 <수문사설>이나 1766년에 간행된 <증보산림경제>에 각기 다른 제조방법이 선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고추의 어원인 ‘고쵸’라는 말은 분명 고추 도입 이전에도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말이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고쵸'가 오늘날의 고추를 지칭한다기보다는 진초(초피), 천초(산초), 호초(후추)같이 매운 향신료를 통틀어 ‘초(椒)’ 혹은 ‘고쵸’라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후추, 산초, 초피를 통칭하던 '고쵸'가 오늘날의 '고추'를 의미하는 단어로 한정해서 쓰인 것은 18세기 이후로 보고 있다. 곧 단어의 의미가 축소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자연스러운 언어분화의 수순인 것이다. 우리나라 고추란 뜻의 ‘아초(我椒)’란 말이 보이는 것도 고추가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18세기 이후라 한다. 


이러한 기존의 학설을 뒤집으려면 단순히 '고쵸'라는 단어가 그 이전 문헌에 등장하고 있다는 정도가 아니라 무엇인가 과학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고추가 중앙아메리카 원산지의 고추와 다른 것이라는 DNA 분석 자료라든가, 고추를 이용해 김치나 고추장을 담는 방법이 나와 있는 자료를 발견했다는 등의 사실 같은 것 말이다. 이런 근거도 없이 고추가 임진왜란 전후에 전해진 게 아니라 그 이전부터 우리 민족이 독자적으로 재배해 왔다고 주장해서 얻는 이득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자랑스럽기라도 하다는 걸까? 고추의 원산지인 중앙아메리카를 제외하고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고추 재배가 시작된 게 16세기 무렵부터이고, 심지어 중국이나 일본도 자기들 나라에 고추가 들어온 게 1,500년대로 보고 있는데 유독 왜 우리나라만 그 이전부터 고추를 재배했다고 주장해야만 할까? 이쯤되면 이건 한민족 우월주의나 국수주의에 가깝다.


고추의 원산지는 중앙아메리카라고 알려져 있다. 현재 고추는 전 세계적으로는 2,000여 품종이 넘고, 우리나라에서도 550여 품종의 고추가 재배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많은 고추 품종들도 분류학상으로는 4가지 중 하나라고 한다. 이 가운데 3가지 종은 아직까지 오로지 원산지인 안데스 주변 지역에서만 재배되고 외부로 전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수많은 품종의 고추는 모두 멕시코가 원산지인 고추로 학명이 "Capsicum annuum"이라는 고추의 아종이다. 매운 맛이 나건 단맛이 나건 붉은 색이든 노란색이든 모두 멕시코가  원산지인 이 아늄종의 사촌인 것. 이것은 요즘은 초등학생도 아는 DNA 분석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이는 콜럼버스가 카리브해 연안에 도착한 이후 원주민이 재배하던 고추 씨앗을 유럽으로 가져가 퍼트리고 이 고추가 아프리카, 아시아 각지로 퍼졌다는 기존의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고추의 유래나 전파 및 현황에 대해서는 시카이 노부오, 『씨앗혁명』을 참조)


서양 역사에서 콜럼버스의 항해는 사실 후추와 같은 향신료의 안정적 확보라는 단순한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슬람이 지배하는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인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는 것이 항해의 목적이었던 것. 그래서 콜럼버스는 신대륙에 도착해 놓고도 인도가 아니라는 사실에 엄청난 실망을 하면서 네 번에 걸쳐 인도 항로 개척의 길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향신료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콜럼버스의 항해는 고추라는 인류 최고의 향신료를 유럽에 전파했다는 측면에서 성공적인 항해여야 할텐데 처음에는 유럽 식탁에서 고추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고추는 포르투칼에 의해 유럽을 경유하지 않고 아메리카 대륙 유일의 포르투칼 식민지였던 브라질에서 직접 전해졌으며, 각각의 땅에서 단기간에 각 나라의 식생활에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콜럼버스가 고추를 눈으로 본 지 불과 50년 뒤인 16세기 중반에 고추는 아시아 북동부의 일본에까지 전해지게 된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하소설 <도꾸가와 이에야스>를 보면 16세기 후반, 조총을 수입하는 등 포르투칼 함대와 교류하는 장면도 나오고 포르투칼 상인으로부터 산 흑인 노예를 '보디가드'로 데리고 다니는 도꾸가와 이에야스를 묘사한 부분도 있다. 중국이 아니라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고추가 전해졌다는 기록은 그만큼 아시아에서의 포르투칼의 영향력을 증명하는 사실이기도 하다.




고추는 이후 각국의 기후와 재배조건에 맞게끔 새로운 품종이 개발되는데, 고추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품종 가운데 하나가 파프리카다. 파프리카는 원래 헝가리어로 후추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헝가리에서 고추는 처음에는 '투르크의 파프리카' 또는 '이교도의 파프리카'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것은 고추가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투르크를 통해 헝가리에 전해졌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헝가리에 전해진 고추는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곧바로 헝가리 식탁문화에 안착하게 된다. 고추는 크게 보면 매운맛을 내는 품종과 단맛을 내는 품종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단맛을 내는 파프리카 품종을 개량하고 산업으로 발전시킨 나라가 바로 헝가리다. 현재 헝가리의 파프리카 산업은 농업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파프리카 씨앗은 국가가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파프리카 씨앗이 대체 뭐라고 국가가 나서서 관리할까?


그러나 사정을 알고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만 국한하더라도  파프리카 종자는 금보다 비싸게 판매되고 있다. 설마? 하지만 사실이다. 금보다 비싼 향신료로 유명한 게 '샤프란'이라면 금보다 비싼 종자는 파프리카인 셈. 파프리카 종자 1g당 가격을 금값과 비교해보면 1.5~2배 정도 비싸다. 국내의 유명 종묘 업체에서 판매하고 있는 파프리카 종자는 1립(1g당 약 120립)에 500원~1,300원 정도이므로 약 1g에 60,000원~156,000원인 셈이다. 금 1g당 가격은 현재 보통 6~7만원을 오르내리고 있다. 


일부 '민족의식이 너무 투철한'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우리나라에서의 고추 재배가 조선시대 이전부터 행해지고 있었다면 원산지인 아메리카 대륙을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셈이다. 그 고추가 세계 어느 나라도 거치지 않고 우리나라에만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황당한 주장이긴 하지만, 설사 아직 DNA 검사를 거치지 않은 토종 품종이 있다고 치더라도(그럴 리가 만무하지만.ㅠㅠ) 그 오랜 기간 동안의 세계 고추 재배 역사에 한 줄이라도 올려놓을 만한 게 무엇인가? 불과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도 금보다 비싸게 팔리는 씨앗으로 개량·발전시켜서 국부의 바탕으로 삼고 있는 나라도 있는데, 그보다 훨씬 오랜 기간 동안 재배했다는 나라는 도대체 무얼 한 것일까? 사실이라면 자랑스러워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과거를 미화해서 억지로 만들어내는 '자랑스러움'은 어찌 보면 '역사적 허기'로부터 출발한다. 남과 비교해서 자신의 우위를 주장할 게 없는 사람이 명품을 따지고 명차를 내세우는 법이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을 자꾸 미화하려 든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역사를 초라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의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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