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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농사

거름 넣지 않고 고추 심기

by 내오랜꿈 201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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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전국이 때 아닌 더위로 난리다. 열흘 전이었던가? 강원도에 눈 왔다고 하던 때가. 이러한 날씨의 급격한 변동은 농사 짓는 사람들을 아주 난감하게 만든다. 지금 온도를 보면 가지과 작물이나 박과 작물 같은 여름 과채류를 심어야 할 때인데 그래도 중부 내륙 산간 지역은 혹시 모를 늦서리 걱정에 쉽게 결정을 못 내리는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은 올해 같은 경우 지지난 주말 정도에 고추나 가지를 심는 게 적당했다. 지지난 주 토요일(18일) 이후 최저기온이 10℃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당연히 없을 것이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는데 다른 일이 있어 때를 놓쳐 버렸다.




지난 토요일 새벽, 고추 모종도 살 겸 진주로 향했다. 토마토, 가지, 오이 등 텃밭에 심을 작물은 전부 육묘를 했는데 고추만 모종을 키우지 못 했다. 3개월에 가까운 육묘 기간이 힘에 버거운 까닭이다. 단골 종묘상에 들러 "대촌" 한 판(105구 트레이 포트)에 오이 고추 열 포기, 꽈리 고추 청양 고추 각각 5포기씩만 구입한다. 토마토, 가지, 파프리카, 오이 등 심을 작물 전부를 구입하던 예년에 비하면 단촐하다. 


어제, 산나물을 뜯은 뒤 해거름에 모종을 옮겨 심을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햇볕이 너무 뜨겁다. 그래서 화요일에 비 온다는 예보도 있고 하니 오늘 오후에 심는 게 좋을 것 같아 미뤘다. 뿌리가 제대로 활착하기도 전에 25℃를 넘어가는 한낮의 뙤약볕은 옮겨 심은 모종을 아주 힘들게 한다. 이 정도 기온과 햇살의 세기면 지표면의 온도는 50℃를 훌쩍 넘어가기 때문이다. 




오늘도 역시 햇볕은 뜨겁다. 해가 질 무렵이 다 되어서야 양배추와 브로콜리 모종을 옮겨 심은 이랑 한편에 고추 모종을 심는다. 이 이랑은 폭이 120cm 인데 작년까지는 고추를 두 줄로 심었다. 그런데 한여름에는 아무래도 가지들이 서로 겹치고 통풍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올해부터는 하나의 이랑에 생육 특성이 전혀 다른 두 작물을 섞어짓기로 키울 생각이다. 그 첫 번째 조합이 양배추 종류와 고추다. 양배추나 브로콜리의 잎만 적당히 조절해주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할 이유도 없고, 고추가 한창 가지를 키울 무렵이면 양배추는 이미 수확한 다음이라 너른 이랑을 고추만 쓰게 되니 통풍이나 광합성에 훨씬 유리할 것 같기 때문이다. 또 상황을 보아 가며 양배추를 수확한 다음 적당한 가을 작물을 파종할 수도 있을 거고.


고추 품종은 올해도 '대촌'인데 열매 모양이 조금 가늘고 긴 편이다. 건조기를 쓰지 않고 고추를 말리기 때문에 최근 유행하고 있는, 과육이 두껍고 큰 대과종 품종은 나에겐 맞지 않다. 미리 이랑을 만들어 둔 터라 고추 130포기 심는 건 일도 아니다. 지난 번 양·브·케 심을 때와 마찬가지로 퇴비는 따로 넣지 않는다. 나중에 고추 상태를 보아 가며 웃거름으로 깻묵을 조금 줄 생각은 있지만 이것도 가능하면 바닷물 희석액이나 EM/쌀뜨물 발효액 엽면 시비로 대신할 작정이다. 가능한 한 인위적인 비료 성분 공급은 안 하는 게 작물이 더 건강하게 자란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노지 고추 농사의 관건은 8월에서 9월초 사이의 습한 날씨에 탄저병을 이겨내느냐 못 이겨내느냐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고추 뿌리가 최대한 깊고 넓게 퍼져 스스로 병충해를 이겨내는 힘을 키워야 한다. 이 문제, 곧 뿌리의 깊고 넓은 퍼짐이라는 문제 앞에서 비료 성분의 인위적 공급은 별 도움 되지 않는다는 게 내 판단이다. 이것이 내가 화학비료는 물론이거니와 유기질 비료의 공급도 점점 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가는 이유다. 


written date : 201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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