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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태환경

무식한 놈

by 내오랜꿈 2014.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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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송이 들국화 축제"



지난 일요일, 고흥이란 동네에 5년째 살면서 처음 가본 곳이 하필 들국화 축제장이다. 올해로 6회째라 하니 우리가 오기 전부터 해왔던 행사인 듯한데, 우리는 존재 자체를 몰랐었다. 알고 보니 그 행사장이란 곳이 우리가 수도 없이 지나쳐 다닐 수밖에 없는, 고흥읍내에서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 야산이다. "저게 뭐지?" 하며 쳐다보며 다녔던 바로 그곳.




행사장 입구에서 들어서니 손으로 쌓은 돌탑들이 보인다. 축제라고 하기에는 너무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얻은 정보를 종합하면, 이곳은 사유지고 군 산하 기관의 공무원들 부인들이 모여 만든 친목회에서 후원하는 것이라 한다. 군수 마누라를 비롯해서 내가 꼴 뵈기 싫어하는 인간들의 부인은 다 모여 있는 친목회다. 말이 친목회지 완전 '마피아' 집단이다. 군 단위 지자체의 이권이 있는 곳이면 개입 안 하는 데가 없는 마피아들. 다행히도(?) 들어갈 때는 저 현수막을 자세히 보지 못해서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나오면서 사진을 찍고 보니 그제사 눈에 들어온다. 들어갈 때 봤으면 꽃들도 제대로 못 볼 뻔 했다.




어림잡아 10,000㎡ 정도 되어 보이는 넓이의 야산에 손으로 쌓은 돌탑과 황칠나무 조경수 사이로 각종 들국화 종류들이 활짝 피어 있다. 들국화의 한 종류인 노란 산국 사이로 구절초인 듯한 꽃들이 무리지어 있는데 자세히 보니 구절초보다는 쑥부쟁이가 더 많은 것 같다.




쑥부쟁이를 보면서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니 한 종류가 아니라 여러 종류인 듯 꽃 모양과 잎들의 형태가 조금씩 달랐다. 순간 느낌이 왔다. 이건 안도현의 시만으론 구별이 안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안도현은 "무식한 놈"이란 시에서 나에게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구별할 수 있는 자각만 제공했기 때문이다.


무식한 놈  /  안도현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絶交다!


촌에 살면서도 야생초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지 못하기에 직접 채취해서 먹는 것들이나 책에서 자주 접하는 것들만 조금 알고 있을 뿐이다. 구절초와 쑥부쟁이도 안도현의 시 덕분에 겨우 구별할 수 있는 정도다. 이런 나에게 쑥부쟁이들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당혹스러웠던 것.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간직한 채 행사장 전체를 한바뀌 돌아 나온다. 황칠나무 사이로 쑥부쟁이와 벌개미취 군락들이 펼쳐져 있고 군데군데 활짝 핀 금국과 산국도 보인다. 멀리 고흥읍내의 아파트들도 눈에 들어온다. 만추의 상징인 노란 감들도 더러 홍시가 되어 새들과 곤충의 먹이로 제공되고 있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행사장 한편에서 방문객들의 노래 자랑을 유도하는 마이크 소리만 요란한 일요일 오후다.



▲ 구절초


▲ 쑥부쟁이


▲ 벌개미


그렇게 두 시간의 짧은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와 나의 '무식함' 여부를 바로 확인했다. 쑥부쟁이로만 알고 있던 야생초들의 차이. 기본적으로 구절초와 쑥부쟁이는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꽃잎도 다르지만 잎 모양이 완전히 다르다. 구절초는 잎이 거의 국화잎과 같이 톱니바퀴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다. 쑥부쟁이는 잎이 가느랗고 톱니가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안도현 시인이 이 둘도 구별 못 하는 '무식한 놈'(='그 자신'을 가르킨다) 하고는 절교라고 말할 만할 정도로 구별이 쉽다.


문제는 쑥부쟁이와 벌개미취의 구별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둘은 구별하지 않고 쑥부쟁이 혹은 벌개미취라고 알고 넘어갈 듯하다. 잎의 모양으로 구별하기도 하고 꽃의 색깔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차이는 꽃잎의 모양이 아닐까 싶다. 즉 쑥부쟁이는 홑꽃, 벌개미취는 겹꽃으로 기억하고 있으면 헷갈릴 염려가 없을 것 같다. 사진에서 구별되듯이 쑥부쟁이는 코스모스처럼 꽃잎이 낱낱이 피어나는 홑꽃이고 벌개미취는 장미 정도는 아니지만 여러 겹의 꽃잎이 겹쳐져 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쑥부쟁이나 벌개미취가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종류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종류가 있지만 대체로 꽃잎의 수나 모양으로 구별하는 게 가장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아가면서 꽃 구별 못한다고 못 살아갈 것도 없고 '무식하다'는 소리 들을 이유도 없다. 그러나 구별 못 하고 사는 것보다는 구별하고 살아간다면 한결 더 아름답고 여유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그나저나 안도현 시인은 쑥부쟁이와 벌개미취의 구별은 하고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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