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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먹거리

엄나무 순 따기

by 내오랜꿈 2015.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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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수도권을 비록한 중부지방엔 제법 많은 비가 내려 가뭄 해갈에 상당한 도움을 준 모양이다. 이곳 남부지방엔 기상청 예보와는 달리 그리 많은 비는 오지 않았는데, 주말엔 또 비가 온다고 하니 작물들 자라는 데는 별 지장은 없을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매화꽃이 모두 졌다는 것. 어제 분 바람 탓도 있겠지만 떨어질 때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텃밭을 보니 완두콩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완두콩은 개화후 30일 정도면 수확 가능한 작물이니 이달 말부터는 상태를 보아가며 따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을 파종의 잇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나를 설레게 만드는 건 엄나무 순의 채취 여부다. 우리 집 마당의 매화꽃이 지는 시기와 뒷산의 엄나무 순 피는 시기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오전엔 날씨가 조금 흐리기에 내일 칠 '유기농업 기능사' 시험 공부를 하다가 점심을 먹고 뒷산에 올랐다. 엄나무 군락지가 눈에 들어오는 산기슭에 다다르니 멀리서 보아도 순이 나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자연의 섭리란 거짓말을 안 한다. 우리 집 마당의 매화나무나 뒷산의 엄나무나 멀리 떨어져 자기 할 일만 할 터인데 나의 기억력으로 둘은 해마다 사이좋게 만난다.


내 고향인 울산 인근 지역에서는 봄나무 햇순 중에서 엄나무 순을 최고로 친다. 봄나무 순 매니아들 사이에선 '일 옻, 이 가죽, 삼 엄'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첫째가 옻나무 순, 두 번째가 가죽나무 순, 세 번째가 엄나무 순이라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이맘때면 대형 마트 농산물 코너에서 빠지지 않는 두릅은 아예 끼이지도 못 한다. 뭐, 각 지역에 따라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다를 것이니 절대적인 기준 같은 건 없다. 내 경우엔 셋 다 좋아하는데 옻나무 순과 가죽나무 순이 조금 순한 맛이라면 엄나무 순은 독특한 향이 강한 맛이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 십상이다.


때를 잘 맞췄는지 활짝 핀 상태가 아니라 적당히 피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정도다. 가지를 휘어 잡고 조심스레 따기 시작한다. 엄나무 가시에 한 번 찔리면 통증이 장난 아니다. 찔릴 때 아픈 건 물론이고 심할 경우 며칠 동안 뼛속까지 느낌이 전달될 정도의 묵직한 통증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 조심 안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따니 가지고 간 망태기가 금방 가득 찬다.




기꺼운 마음으로 고사리까지 꺾어 한 망태기 가득 들고 내려오니 울산 고향집에서 가져와 집 뒤에 심어 둔 엄나무는 아직 요지부동이다. 뒷산의 엄나무와는 거의 열흘 이상 차이가 난다. 집 근처 몇 군데 엄나무 군락지의 순이 모두 핀 다음에야 딸 수 있다. 이 또한 고마울 따름이다. 당분간은 집 근처 야산에서 엄나무 순이 처치곤란일 정도로 많이 올라올 것이기 때문에.


오늘 저녁은 엄나무 순 파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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