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에 살면 '맥가이버'가 되어야 한다는 말들을 한다. 웬만한 건 다 직접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사일 하면서 해야 하는 것들은 대부분 사람의 손이 필요한 일인데 이걸 누가 대신해 줄 수는 없는 법. 누가 대신해 준다면 그건 또 도회지에서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가기 일쑤다.
시골에서 자랐지만 공부한답시고 도회지로 유학(?)간 탓에 낫질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않은 채 청소년기를 보내고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줄곧 도회지에서 생활한지라 연장을 갖고 무얼 만들거나 하는 데는 완전 젬병 수준이다. 그래도 눈으로 본 건 있는지라 그나마 지금 시골에서 대충 몸으로 때우고 있는 중이다. 그 덕에 농사일이나 일상생활에 필요한 건 대충 하는데 영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생선회 뜨는 거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바닷가 근처인지라 살아 있는 생선을 마주할 기회가 많은데 회를 못 뜨니 산 생선이 있어도 구워 먹거나 탕으로 먹는 게 일상이다..
평생교육원에 들렀다 읍내를 지나오는데 노점상들이 있는 곳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갓 잡은 숭어를 팔고 계셨다. 내 팔뚝보다 훨씬 굵은 팔딱팔딱 뛰고 있는 숭어가 세 마리 만 원이란다. 마리당 1~1.5Kg 정도는 되어 보인다. 살아 움직이는 걸 보자 군침이 돌아 덥썩 업어 왔다. 그런데 막상 집에 와서 손질하기가 만만찮다. 생선 손질은 원래부터 내 담당인지라 비늘 벗기고 내장 꺼내고 하는 건 괜찮은데 회를 한 번 떠 보겠다고 덤비는 순간부터가 시련의 연속이다.
회칼이 따로 없으니 부억칼을 가져와 뼈를 발라내고 껍질을 벗기는데 어떤 곳은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가고 어떤 곳은 껍질이 그대로 붙어 있다. 몇 분 씨름하다 겨우 마련한 반토막의 횟감.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하리라. 나머지는 뼈를 발라내고 물간을 한 뒤 살짝 말려서 구워 먹든지 쪄 먹든지 해야겠다.
목수가 서툴다 보니 발라낸 뼈에 고기가 더 많이 붙어 있는 것 같다. 오늘 저녁은 이 뼈와 대가리를 우려내 어죽이나 한 번 끓여볼까나.
'삶의 여유 > 먹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연산 미역, 톳을 따다 (0) | 2015.03.20 |
---|---|
봄 향기가 점령한 밥상 (0) | 2015.03.18 |
장 담그기 (0) | 2015.03.16 |
메주 씻어 말리기 (0) | 2015.03.13 |
청국장 발효의 몇 가지 문제 (0) | 2015.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