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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먹거리

장 담그기

by 내오랜꿈 2015.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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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은 주말, 장을 담궜다. 요즘은 직접 장을 담궈 먹는 집이 별로 없다 보니 장 담그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인 양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 장 담그기는 너무나 간단한 일이다. 소독한 항아리에 메주 넣고 소금물 부으면 끝이다. 달리 무얼 더할 게 없다. 숯이나 건고초, 대추 등을 넣는데 사실 이런 건 안 넣어도 상관 없다. 오히려 장 담그기 전에 콩 삶아 메주 만들어 띄우는 게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는, 조금 노하우가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요즘은 메주 띄워 파는 곳도 많으니 마음만 먹으면 장 담그는 건 일도 아닌 세상이다. 시작이 어려워서 그렇지 한두 번만 담궈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 것.




장 항아리는 며칠 전부터 물을 부어 불순물을 우려내고 있으니 장 담그기 준비 과정의 두 번째는 장물 만들기라 할 수 있다. 소금물을 만들기 위해 창고에 쌓아 둔 소금 포대를 가져와 무게를 달아 보니 헐~, 20Kg짜리 소금 포대가 16Kg으로 줄어들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하느님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소금도 그러한가 보다. 아마도 염화마그네슘이나 황산마그네슘이 주성분인 간수가 빠지고 수분도 증발되었으리라. 마침 띄워 놓은 메주가 16Kg이니 이 소금 포대 하나를 전부 녹이면 될 것 같다. 


소금물의 농도는 장을 담그는 사람에 따라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나는 메주:소금:물을 1:1:4 정도로 한다. 이곳은 날씨가 따뜻하고 습도가 많아 염도가 낮을 경우 장이 시어버릴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중부 내륙지방 같이 추운 곳은 소금물의 농도를 1:3 정도로 해도 크게 문제될 것 없으리라. 실제로 그렇게 담근다는 사람들도 많다. 곧 소금물의 농도는 담그는 이의 의도나, 지리적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SNS 상에서 유포되는 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소금물의 농도를 정하는 데 있어 계란을 띄워 오백 원짜리 동전만큼 뜨면 된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내가 장담하건대 소금과 물을 1:3.5로 하든 1:4.5로 하든 계란은 비슷한 크기로 떠오른다. 떠오른 계란의 단면을 오백 원짜리 크기로 인식하는 것 역시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그러니 자기가 담그고 싶은 장에 따라 정확한 비율로 계산해서 염도를 맞추시기 바란다. 비율 맞추는 게 뭐 어려운 것도 아니지 않는가? 


장 담그기에서 또 하나 중요한 건 장 가르기를 할 때 간장을 빼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간장을 빼지 않는 된장을 담글 경우는 메주와 소금물의 비율을 1:2.5 내지 1:3 정도로 한다. 옛날부터 울산, 경주 지방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된장과 간장을 따로 담궜다. 간장을 빼고 남는 메주는 된장을 만들지 않고 소 먹이로 주곤 했다. 이런 된장을 먹다 간장 뺀 된장을 처음 접했을 때는 냄새조차 맡기 싫었다. 그나마 요즘은 장 담근 지 4~50일 만에 장을 가르니 간장을 뺀다 해도 된장 맛이 어느 정도는 유지된다. 옛날처럼 장 담그고 두세 달 넘게 두는 집은 아마도 거의 없으리라. 




깨끗하게 씻은 항아리에 짚으로 불을 내 훈연으로 소독해 준다. 그런 다음 메주를 차곡차곡 쌓고 하루 전에 미리 만들어 둔 소금물을 부어 준다. 정제염이 아닌 천일염을 쓸 경우는 아무래도 불순물이 있으니 면보자기를 받쳐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 주는 게 좋다. 많은 사람들이 천일염을 하늘처럼 받들고 있는데 간수가 제대로 빠지지 않은 천일염 쓸 바에야 그냥 정제염 쓰시라고 권하고 싶다. 천일염에 들어 있는 불순물, 특히 간수의 주성분인 마그네슘은 음식 맛을 쓰게 만든다. 요즘 같은 영양 과잉 시대에 다른 미네랄 성분 조금 더 먹자고 마그네슘으로 덧칠된 음식 먹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난 없다고 본다. 





메주가 아무리 단단하고 무거워도 장물을 부으면 메주는 전부 떠오른다. 안 떠오른다면 염도가 부족하다는 증거다. 이런 장은 반드시 시어버린다. 장물을 부은 다음에는 대부분 숯이나 건고추 등을 넣고 마무리한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위로 떠오른 메주를 장물에 잠기게 하는 거다. 떠오른 메주를 그대로 두면 잡균이 생기거나 부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대나무로 눌러 두곤 했었는데 올해는 엄나무를 잘라와 실로 엮어 누르기로 했다. 대나무보다는 엄나무의 좋은 성분들이 묻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뭐 그리 큰 기대는 않는다. 어차피 할 일인지라 조금 더 수고로움을 더했을 뿐이다. 여기까지가 사람이 할 일이고 이제 나머지는 자연이 할 일이다.


요즘 SNS를 보면 장을 담궜다면서 '말날' 이야기를 많이 한다. 정월 말날에 장을 담근다는 옛말을 따른 것이리라. 옛 문헌을 보면 장을 담그는 것과 관련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정월 말날 이야기야 많이 알려졌지만 또 하나 미신적인 요소가 많은 에피소드는 '신'씨 이야기다. '신날'에는 절대 장을 담그면 안 되고, 선조 때는 궁중의 장을 총괄하는 관리에 하필 신씨가 임명되자 절대 안 된다며 신하들이 들고 있어났다는 기록도 있다. 단지 신씨라는 이유로. 그럼 신씨 집안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장도 못 담궈 먹는단 말인가? 이건 자기들과 다른 당파의 사람이 임명된 것에 대한 꼬투리 잡기에 불과하지 진정으로 장을 염려해서 한 짓은 아닐 것이다.


과학적으로 생각하자면 장이 시고 안 시고는 소금물의 농도가 첫 번째일 테고 두 번째는 날씨이리라. 장맛의 좋고 나쁨 여부도 메주가 잘 띄워진 정도와 물, 날씨에 영향 받을 테고. 그러니 굳이 '말날'이니 '신날'이니 하며 엄격하게 따질 이유는 없다고 본다. 오리려 맑은 날씨인가 흐린 날씨인가의 여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비 오거나 바람 부는 말날과 화창하고 바람 없는 신날 중에 어느 날에 장을 담그는 게 좋을까? 난 당연히 후자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음력 정월이란 해에 따라서는 양력으로 한 달 이상 차이가 난다. 올해처럼 2월 20일 근처에 설날이 올 수도 있고 빠를 때는 1월 20일 근처에 올 수도 있다. 이럴 때 중요한 건 말날 여부가 아니라 소금물의 염도다. 겨울에 가까운 날에 담글 때는 소금물의 농도를 좀 연하게 해도 되고 봄이 완연한 날에 담글 때는 소금물의 농도를 짙게 해 주어야 한다. 말날이니 신날이니 따지는 게 이보다 더 중요할까?


요즘 같은 시대에 굳이 날을 따진다면 난 화창한 주말에 자식들을 불러 모아 장을 담그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자주 볼 수 없는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식들이 출가를 했든 안 했든 장을 담그는 모습을 보고 그들도 배우고 익히며 나중에라도 장을 담글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부모 세대가 젊은 세대들에게 몸으로 가르쳐 줄 수 있는 방법이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보전해야 할 소중한 전통이 아닐까? 이에 비한다면 말날이니 신날이니 따지는 건 너무나 하찮은 논쟁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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