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주콩 삶는 냄새가 그리워지는 시기다. 하루 세 끼 밥 말고는 달리 먹을 게 없던 시절, 집밖으로만 돌던 아이들도 메주콩 삶는 날은 집을 떠나지 않았다. 삶은 메주콩 한 줌 집어먹기 위해서. 배고팠던 시절, 어머니께 야단 들어가며 집어먹던 그 메주콩 맛을 기억 하시는지...
옛부터 한해 농사는 메주를 쑤고 나서야 마무리 된다고 했다. 겨울이 오기 전 메주를 빚어 처마 밑에 볏짚이나 새끼줄을 엮어 매달아 말리는 풍경은 그저 그런 일상의 하나였는데, 요즈음은 사진 작가의 작품 사진으로나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전락하고 있다. 뭐, 나도 그렇게 큰 소리 칠 형편은 못 된다. 내 손으로 직접 장 담궈 먹은 지 이제 겨우 3년째니까.
보통의 경우 메주 만들기는 11월에 하는데, 내 경우는 이상하게도 자꾸 12월이나 1월로 넘어간다. 달리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게을러서 그런 것이리라. 조금 변명하자면 이곳 고흥의 11월 날씨가 너무 습하고 따뜻하다는 이유가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 수도 있다. 올해는 그나마 작년보다 조금 빨리 메주를 쑨다.
메주콩을 고르고 씻어 물에 두어 시간 불린다. 메주 쑤는 방법은 만드는 사람들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딱히 정해진 모범답안은 없다고 봐야 한다. 만드는 사람의 경험이 녹아든 저마다의 레시피가 모두 다 정답이다. 나의 경우는 메주를 씻어 솥에 넣은 다음 적당량의 물을 부어 두어 시간 불린 뒤 6시간 정도 삶는다. 처음 1시간은 끓기까지의 시간이니까 5시간 정도를 불조절하며 삶는다고 보면 된다.
불조절이 중요한 이유는 끓어넘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넘치면 물을 더 부어야 하는 것은 물론 콩의 영양소가 손실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한 화력이 아니라 뭉근한 불심이 필요하다. 이때 이전에 담근 된장의 윗부분, 소금을 쳐서 짜고 햇빛을 받아 검게 변색된, 된장을 조금 넣어주면 쉽게 넘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맹신하지는 마시라. 무조건 불조절을 잘 해야 한다. 말이 쉽지 아궁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너댓 시간을 버텨야 한다. 남들은 어찌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변색된 된장을 조금 넣고 나서 끓어넘치지 않게 불조절 하며 메주콩을 삶는다.
메주콩이 갈색빛이 도는 노란 빛깔을 띄면 불을 끄고 아궁이에 있는 숯불로 1시간 정도 뜸을 들인다. 이 뜸들이기도 당연히 솥의 상태를 살펴가면서 해야 한다. 밑불이 너무 세다면 바로 꺼내는 게 옳다. 다 태우고 싶지 않다면. 메주콩이 이 정도 삶아지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삶은 콩을 집어먹게 된다. 내 기억 속 어딘가에 잠재해 있는 어릴 적 그 추억의 맛을 꺼집어내기라도 하는 듯.
삶은 메주콩을 김장하고 남은 비닐 봉투에 넣어 이리저리 밟아서 으깬다. 비닐 봉투가 찢어지지 않게 밟느라 이 과정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 옛날엔 절구에 넣어 으깨었는데, 절구가 없으니 이런 편법을 쓰게 된다. 이렇게 해서 만든 메주 덩어리 12개. 아마도 하나의 무게가 2~2.5Kg 정도 나가는 거 같다. 짚 위에서 며칠 말리면서 고초균이 메주에 듬뿍 스며들게 만든 뒤 새끼줄에 매달아 한두 달 말리면 메주 만들기는 완성이다.
아침부터 시작한 일은 언제나 밤이 깊어서야 마치게 된다. 달리 빠르게 할 방법이 없는, 온전히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는 작업이 메주 만들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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