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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자연농업

놀라운 자연농업의 세계(3) : 이모작 논벼 직파와 밀 수확의 현장(2013년)

by 내오랜꿈 201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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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이문웅 교수의 Visual Anthropology Archive (http://vaa.anthropology.or.kr/index.aspx)

날짜:2013. 06. 19

만든이:이문웅(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논농사에서 <모내기>는 가장 중요한 과정 중의 하나이다. 논갈이를 하고, 물을 담아 모가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부드럽게 하고 평형을 이루기 위해 써래질을 했으며, 사람들이 줄을 서서 힘들게 모심기를 했었다. 지금은 트랙터와 이앙기가 있어서 훨씬 편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못자리를 만들고, 볍씨를 뿌려서 키운 모를 이앙기로 모내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모가 아니라, 분무기에 볍씨를 쏟아 부어 넣고, 마치 논에 농약을 뿌리듯이 볍씨를 뿌리면서 관행농업의 모내기 과정을 모두 마친다? 그 현장은 마치 텔리비젼을 통해서 더러 봤던 월남전에서 화염방사기로 숲을 태우기 위해 불을 뿜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해도 벼농사가 가능할까? 현실적으로 이렇게 벼농사를 짖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땅을 갈지도 않고(쟁기질을 전혀 하지 않고), 화학비료든 퇴비든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도 않고, 제초제도 필요 없이 벼농사를 짓는 ‘자연재배’의 방식이다.

 

나는 작년에 하동에서 이런 논밭의 밀 수확 현장을 답사한 적이 있었지만, 그 때는 사흘 전에 이미 볍씨를 뿌려놓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밀 수확 장면이었기에 꼭 볍씨를 직파하는 장면을 포착하고 싶었다. 금년에는 전남 진도에서 자연재배로 농사를 짓는 박주홍씨가 마침 볍씨 직파의 기회를 알려주었기에 만사를 제치고 찾아가봤다. 여기에 소개하는 영상은 더 많은 사람들과 그 현장의 움직임을 공유하고자 편집한 것이다.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하율리에서 올해로 4년째 자연재배 농사를 짖고 있는 박주홍씨는 귀농민이라고 한다. 그의 인터넷 블로그(http://blog.naver.com/jhpark0070.do)에 올려놓은 “내가 먹을 것은 내가 직접 만들자! 농업과 농촌을 미래의 희망으로 . . . “라는 말은 그와 그의 가족이 왜 고향을 찾아 귀농했는지를 말해주는 소박한 심정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에게는 귀농으로 당장 큰 돈을 벌어보겠다거나 큰 꿈을 이루어보겠다는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다만 여러 군데 흩어져 있는 그의 농사 하나 하나를 마치 자연재배의 실험장 같이 여기는 그의 생활태도에서 나는 한국 자연재배 발전에 대한 희망의 씨앗이 싹트고 있음을 읽을 있었다.

 

2013년 6월 13일 나는 진도읍에서 진도 토박이 박주언씨의 차편으로 박주홍씨의 하율리 댁으로 찾아갔다. 그날 목포역에서 진도까지의 차편은 목포에서 진도군립민속예술단으로 출근하는 한흥수씨(대금 연주가)의 차편 도움을 받았다. 이 두 개의 차편은 모두 김현숙선생(목포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박사과정, 강사)이 주선해주었다. 이 세 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

 

박주홍씨는 콤바인으로 밀 수확을 하든 중에 댁으로 돌아왔다. 나의 볍씨 직파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밀밭 한 곳에는 수확을 앞으로 이틀간 미루었기에 우리는 우선 그 밀밭으로 갔다. 이때 김현숙씨도 틈을 내어 현장으로 찾아 왔다. 밭에 도착한 박주홍씨는 가져간 볍씨 포대를 분무기의 통에다 쏟아 붓고 등에 지고 전원을 켜서 900평의 밀밭에 볍씨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사각형의 밀밭 두렁을 따라 우선 한 바퀴를 마치 화염방사기를 쏘듯이 뿌리고, 다시 돌아와서 나머지의 볍씨를 털어놓고 그 넓은 밭의 3분의 1씩 두 줄로 한번씩만 들어가 지나가면서 양쪽으로 씨를 뿌리는 것으로 씨뿌리기는 간단히 끝이 났다. 이렇게 씨뿌리기를 한 밭에는 2~3일 후에 밀 수확을 하면서 콤바인으로 자른 밀대는 잘게 잘라서 밀밭에 그대로 뿌린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새들이 볍씨를 쪼아먹는 것도 피하고 잡초의 성장도 저지하는 ‘멀칭’효과를 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볍씨를 뿌린 밀밭은 고군면 지막리에 위치하고 있었는 데, 마침 그날 밀 수확을 하고 있었던 밭이 있어서 그곳으로 이동하여 수확하는 장면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약 1km정도 떨어진 고군면 배들이에 위치한 두 번째 밭에서 박씨는 콤바인으로 밀 베기를 계속했고, 나는 이 현장을 역시 카메라에 담아 이 영상의 후반부에 편집하였다. 이 밭에는 사흘 전에 이미 분무기로 볍씨를 뿌렸다고 한다.

 

박주홍씨가 전해준 그의 자연재배 농법 이야기를 좀 옮겨보자. 그가 이렇게 직파한 볍씨는 전년에 수확하여 건조시킨 상태에서 아무런 추가적인 조치도 하지 않은 채 직파한 것이라고 한다. 관행농업에서 못자리에 볍씨를 뿌리기 전에 물에 담가서 소독을 한다든가 하는 과정도 일체 여기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올해로 4년차의 자연재배 농사를 하는 박주홍씨의 방식은 아직 완전한 의미에서 ‘자연재배’라고 할 수는 없다. ‘자연재배’라면 ‘무비료, 무농약’이 필수지만, 아직 박씨의 농사는 거기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완전한 자연재배에서는 씨앗과 땅이 조화를 이루고, 자가채종한 씨앗이 자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땅심’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지만 아직 이 땅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초기 년도에는 관행농에 비해 약 1/3을 투입했고, 해가 거듭될수록 그 양을 줄였다고 한다. 하지만 비료는 벼의 성장 상태에 따라 농부가 가늠해야 하는 것이고, 딱히 "1/3이다"라고 정의 할 수는 없다고 한다. 박씨의 경우 작년에(3년차 무경운 논) 관행농업에 비해 비료를 약1/5정도 투입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양은 같은 논에서도 벼의 성장 상태에 따라 투입량이 약간씩 달라진다고 한다. 성장이 좋은 곳은 적게, 성장이 더딘 곳은 많게 투입하고, 농약은 풀 관리를 위해 <침투이행성제초제>를 썼다고 한다. 그 외에는 다른 일체의 농약(살균, 살충제 등)을 사용하질 않았다고. 


침투이행성제초제의 경우 전작물의 재배상태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예로 올해 밀/보리가 좋은 경우, 확실이 풀은 거의 없는 상태가 된다고.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재연재배의 ‘땅 만들기’는 5~6년 정도 비료와 농약을 줄여나가다가 그 후에는 전적으로 비료와 농약,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은 채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주홍씨가 하고 있는 이 농법이 이영문씨가 창안한 ‘태평농’인데, 실제로 이영문씨는 경남 하동과 사천 일대에서 4만여 평에 달하는 농지에서 쌀과 보리/밀의 이모작을 전적으로 ‘자연재배’의 방식으로 벌써 20여 년에 걸쳐서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

 

박주홍씨는 어떻게 해서 이 ‘자연재배의 세계’로 발을 딛게 되었을까? 14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앞으로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그래! 농사란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란 것이 떠올리게 되었고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한다. 인터넷 상에서 ‘생명’에 대한 이것 저것을 검색하던 중 한 블로그에서 SBS-TV다큐 "생명의 선택"(2009년 11월22일 방영)을 보게 되었고, 거기에서 ‘자연재배’라는 단어를 알았다고 한다. 다시 "자연재배"라는 키워드로 여기 저기를 검색하던 중 이영문씨의 ‘태평농법’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전에 검색하던 자연재배는 일종의 철학적인(?) 내용이었다면 태평농법은 체계적인 ‘농법서’같았다고. 대단위 면적을 ‘무경운’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의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었다”고 한다. 그 다음해(2010년) 3월의 태평농 정기교육에서 “이영문 선생을 처음 뵈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드라마처럼 생생하다”고 했다. 하지만, 교육은 알고 싶었던 농법보다는 ‘생태’만이 계속 강조되어서 "그래 좀 더 깊숙이 들어가봐야겠다" 싶어 임원에 가입하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박주홍씨는 현재 태평농 회원들의 조직인 ‘태피들’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 영상 클립에서 박주홍씨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분은 바로 ‘태평농의 창시자 이영문선생’이다.


이렇게 그의 자연재배 경험에 대한 경험 정보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도록 허락해준 박주홍씨와 현장 탐방에 자리를 함께 해준 박주언씨와 김현숙씨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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