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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문화예술

재키 브렌스턴 <로켓 88> - 원조논쟁 풍파 겪은 ‘최초의 로큰롤’

by 내오랜꿈 2008.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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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논쟁 풍파 겪은 ‘최초의 로큰롤’ 
[세상을 바꾼 노래] ⑬ 재키 브렌스턴의 <로켓 88>(1951년)

박은석/대중음악 평론가
출처:<인터넷한겨레> 2008 01 17 



 "rocket 88" - JACKIE BRENSTON & HIS DELTA CATS, 1951



» 재키 브렌스턴의 <로켓 88>(1951년)

2004년, <롤링 스톤>은 로큰롤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특집기사 시리즈를 내놓은 바 있다. 논쟁이 뒤따랐다. 관건이 된 것은 1954년을 원년으로 삼은 점이었다. <롤링 스톤>의 기준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댓츠 올 라이트>(1954)가 ‘최초의 로큰롤 레코드’라는 주장에 토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같은 견해에 동의한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상당수는 <롤링 스톤>이 권위를 앞세워 대중음악 역사에 대한 게리맨더링을 취한 것으로 간주했다. 최초의 로큰롤 레코드에 대한 음악사의 해묵은 쟁점이 재연된 것이었다. 

<로켓 88>은 <댓츠 올 라이트>가 최초의 로큰롤 레코드라는 주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박의 증거로 거론되는 곡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엘비스 프레슬리를 발굴해낸 전설적 프로듀서 샘 필립스가 “최초”라고 공언했으며, 1955년 로큰롤로서 사상 처음으로 팝 차트 1위에 오른 <록 어라운드 더 클락>의 주인공 빌 헤일리가 이미 1951년에 리메이크했던 노래라는 사실이 그 배경에 있다. 그래서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완곡한 표현으로 <로켓 88>이 “많은 이들에게 최초의 로큰롤 레코드로 인정받는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로켓 88>은 진짜 원작자에 대한 쟁점으로도 유명하다. 이 곡의 공식적인 크레디트는 재키 브렌스턴이 만들고 그의 밴드인 ‘델타 캐츠’가 연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실상은 아이크 터너의 작품이라는 게 정설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곡을 만들고 녹음했을 당시 브렌스턴은 터너가 리드하던 밴드 ‘킹스 오브 리듬’의 색소폰주자였다. ‘델타 캐츠’는 이름뿐인 유령밴드였고 실제 연주를 담당한 것은 ‘킹스 오브 리듬’이었다. 레코드 회사와의 계약관계 때문에 터너의 이름을 내세울 수 없는 상황에서 브렌스턴이 대역을 맡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로켓 88>에 대한 자료는 어느 것이나 재키 브렌스턴을 표제로 달고 아이크 터너를 얘기하는 표리부동의 아이러니로 채워져 있다. 

출렁이는 부기우기 리듬과 경쾌한 홍키통크 피아노의 경합으로 시작하는 <로켓 88>은 일그러진 전기기타 사운드가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녹음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강력한 존재가치를 갖는다. 또한 관행을 깨고 백인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이 곡을 방송했다는 사실은, 음악이 인종의 벽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획기적인 사건이라는 측면에서, 다가올 로큰롤의 폭풍을 예고한 것이기도 했다. 의외인 것은 뒷날 아이크 터너(1931~2007)가 최초의 로큰롤 레코드 논쟁에 보인 시큰둥한 태도였다. 그는 로큰롤이 “부기우기를 윤색한 것에 불과”하다며 “흑인들은 그것을 리듬 앤 블루스라 불렀고 백인들은 로큰롤이라 칭했을 뿐”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터너의 본심은 아마도 흑인음악을 빌어다 쓰면서도 원조는 백인이라 주장하는 미국사회의 보수적 편견을 꼬집으려 했던 것일지 모른다. 

오늘날 아이크 터너는 티나 터너의 전남편이었다는 사실로 먼저 인지된다. 80년대 이후 티나 터너가 거둬들인 거대한 성공의 여파에다 그녀가 자서전을 통해 폭로한 성차별적 폭력남편으로서 아이크 터너의 실체에 대한 여론의 반감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그래서 <타임스>는 지난 12월 12일 아이크 터너가 세상을 떠났을 때 다음과 같은 추모기사를 게재했다. “아이크 터너가 훌륭한 인간이었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의 개인사적 실패가 대중음악 발전에 기여한 바를 무색케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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