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크랩/문화예술

행크 윌리엄스 <무브 잇 온 오버> - ‘컨트리 음악’ 촌티 벗기고 로큰롤 잉태

by 내오랜꿈 2008. 1. 4.
728x90
반응형


‘컨트리 음악’ 촌티 벗기고 로큰롤 잉태 
[세상을 바꾼 노래] 행크 윌리엄스의 <무브 잇 온 오버>(1947년) 

[박은석/음악평론가
출처:<인터넷한겨레> 2008 01 04 


Move it on Over - Hank Williams



» 행크 윌리엄스의 <무브 잇 온 오버>(1947년)
‘컨트리 앤 웨스턴(흔히 컨트리로 약칭)’은 백인 전통의 미국 대중음악을 통칭하는 관용어다. 문자 그대로 ‘시골’ 농부와 ‘서부’ 카우보이에 의해 불렸던 노래들이 그 원형이었다. 이전까지 ‘산골 촌뜨기’들의 음악이라는 의미에서 ‘힐빌리’라고 불리던 것이 1940년대 음악산업의 발전과 함께 확장된 개념으로 수용되었다. 당시를 즈음하여 컨트리는, 도시인들에게까지 널리 인기를 누리면서, 시골 사람들의 전유가 아닌 대중음악의 전위로 도약했다. ‘땡볕에 그을러 목덜미가 벌게진 무지렁이(레드넥)’들의 흥얼거림이 당대의 유행음악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행크 윌리엄스는 그 전환기의 이정표였다. 

1961년 ‘컨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은 그 최초의 헌액자로 행크 윌리엄스(1923~1953)를 지미 로저스와 나란히 세웠다. ‘컨트리의 아버지(로저스)’에 필적하는 인물로 평가한 것이다. 로저스와 윌리엄스는, 26년 터울로 각기 다른 시기를 살았지만, 당대의 표준을 결정짓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음악사적으로도 유사한 위상을 점하고 있다. 요컨대, 지미 로저스가 컨트리의 음악적 규범을 확립한 초기의 개척자라면 행크 윌리엄스는 그것의 현대적 전범을 마련한 전성기의 개혁자라고 할 것이다. 뛰어난 창작능력이 그들 공통의 미덕이었다. 특히, 윌리엄스의 탁월함은 오늘날까지도 동시대적인 숨결을 내뿜는 것이다. “컨트리와 그로부터 발화한 모든 대중음악 스타일에 미친 윌리엄스의 심대한 영향력은 무엇보다 작곡가로서 우선한다”는 <롤링 스톤>의 평이 그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행크 윌리엄스의 노래들은 그 현대적인 감수성으로 더욱 높은 평가를 받는다. 단순하면서도 선명한 멜로디와 현실 밀착적인 노랫말은 초창기 로큰롤에도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밥 딜런과 비견되는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은 그에게 바친 추모곡 <타워 오브 송>에서 작곡가로서 윌리엄스가 “나보다 100층은 더 높은 노래탑 위에 있다”고 경의를 바쳤을 정도다. 보컬리스트로서도 혁신적이었다. 요들링과 크루닝(섬세한 저음창법)이 대세이던 시절에 윌리엄스는 생생하고 직선적인 목소리로 관객의 심중을 가로질렀다. 
<무브 잇 온 오버>는 행크 윌리엄스의 이력에 불을 붙인 최초의 히트곡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 곡은 또한, 윌리엄스가 활동초기에 이미 독자적 영역과 독보적 영향력의 완성치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곡에 담긴 기타 중심의 사운드, 곧게 뻗은 명료한 멜로디, 현실적 소재의 해학적인 노랫말은 로큰롤에 대한 선험적 비전을 제시한 것이었다. 로큰롤 음악으로서는 최초로 인기차트 1위에 오른 빌 헤일리의 <록 어라운드 더 클락>(1955)이 이 노래에 빚진 바가 바로 그것이다. 

행크 윌리엄스는 1953년 1월 1일, 공연장을 향해 가던 자신의 캐딜락 뒷좌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불과 29살의 나이였다. 술과 약물의 상승작용이 불러온 비극이었다. 그래서 호사가들은 윌리엄스가 죽음에 있어서조차도 자기파괴적 로큰롤 스타 신화의 전범이었다고 얘기하곤 한다. 어느 모로 보건 행크 윌리엄스는 로큰롤 시대 이전에 등장한 로큰롤 스타였던 것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