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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인문사회

역사를 고민하는 두 디아스포라 - 서경식 김상봉 대담

by 내오랜꿈 2007.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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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슬픔에서 나의 슬픔을 만나다
〈만남-서경식 김상봉 대담〉


한승동 기자
출처 : <한겨레 > 2007-12-14 


» 너의 슬픔에서 나의 슬픔을 만나다


〈만남-서경식 김상봉 대담〉
서경식 김상봉 지음/돌베개·1만7000원 

김상봉-서경식 교수, 8개월간 9차례 나눈 ‘현실 진단’
신자유주의라는 갇힌 세계 넘어설 다양한 세계 사유
 

“지난해 어느 지방 대학에서 강연을 한 뒤에 40대 교수 한 분이 저를 보고 ‘잊어버리고 싶은 과거의 망령이 눈앞에 나타난 것 같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지난해 이른 봄부터 난생 처음 ‘조국’에서 장기체류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1년 반을 넘긴 그 ‘망령’은 지금의 한국사회를 진단하면서 자본주의 고도화와 더불어 물질적 풍요(라기보다는 돈)에 매몰된 일본 지식인들이 자조적으로 얘기한 ‘자발적 노예화’, ‘안락 전체주의’를 떠올렸다. 그는 안락하게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그것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그런 전체주의가 일본에서는 1970년대부터 20~30년간에 걸쳐 진행됐으나 한국에선 불과 5~10 사이에 그런 변화가 일어났다며, “이 나라의 대학과 엘리트(지식인)들에 대해 제가 지녔던 동경이 환상은 아닐까 하는 괴로운 의문이 요즘 들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성공회대 연구교수 생활을 하며 강연회 등을 통해 각계 사람들과 활발하게 접촉해온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학 교수(56). 내년 2월 복교를 앞두고 2년 예정의 조국체험 말기를 보내고 있는 그에게 ‘과거의 망령’ 발언은 이제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을까. “선생님도 이 사회에서 외로운 디아스포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선생님 같은 생각을 가진 분을 만났다고 해서 이 사회 전체에 아직 희망을 가져도 좋은지도 의문이고요.” 실망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하나, ‘섬세한 기질’의 그가 논점을 더 분명히 하기 위한 방편일 뿐 아직 결론을 서두를 리는 없다. 

그가 ‘선생님’으로 지칭한 대화 상대는 김상봉(49) 전남대 철학과 교수. 두 사람은 돌베개 출판사가 출판한 <만남>을 위해 지난 5월19일부터 8월15일까지 아홉차례 만나 총 40여시간에 걸쳐 얘기를 나눴다. 기획자는 민족주의에 비판적인 서 교수에게 “‘탈민족주의/민족주의 비판’을 넘어서는 지점이 있다는 걸 느꼈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 더 섬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두 사람에게 던진 질문은 깐깐하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여야 하는가? 우리는 누구일 수 있는가?”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위기의식이 행간에서 묻어난다. 그만큼 지금 한국사회에서 절실한 질문이기도 하다. 

대담은 비정규직 문제, 민족주의문제, 통일문제, 교육문제 등 현안들을 통해 언어와 교양·예술·종교·형이상학 등 다방면에 걸친 주제들을 다룬다. 기획자의 질문은 김 교수가 인용한 서 교수의 다음과 같은 필생의 질문과 상통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왜 여기에 있는가?”(<디아스포라 기행>) 바로 김 교수가 매달린 화두이기도 했다. 김 교수에게 ‘나’는 “내가 존재하는 장소일 뿐 아직 아무런 내용도 없는 것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는 …비존재와도 같은 것”이다. 현실적인 나는 언제나 그 장소가 내용을 통해 채워질 때에만 참된 의미에서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내 존재의 내용을 이루는 것은 바로 나의 경험이며, 그 경험의 총체가 ‘세계’다. 따라서 세계는 오직 그것을 경험하는 주체의 의식 속에서 열리는 지평이며, 주체의 경험이 달라지면 각자의 세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곧 “내가 사는 세계에 대한 물음”이며, “철학이 자기의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의 지도를 그리는 일과 같은 것”이다. 그가 ‘거리의 철악자’로 현실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학벌체제’와 ‘도덕교육의 파시즘’ 타파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 〈만남-서경식 김상봉 대담〉

그래서 되돌아본 “내가 살아온 역사와 사회”는 “치명적인 분열과 단절” 속에 빠져 있었고, 그것은 서구 제1세계와는 달리 ‘자기 땅에서 추방된’ 식민지배에서 초래된 자기상실의 결과였다. 그런데 자기상실은 자기 정체성과 주체성의 혼란을 초래하지만 또한 “타자적 정신과의 만남을 통한 정신의 임신이며 바로 그런 까닭에 현재 우리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동요는 새로운 정신을 잉태하기 위한 입덧과도 같은 것”이기도 하다. 김 교수가 말하는, 타자를 배제한 제1세계의 ‘홀로주체성’에 대비되는 ‘서로주체성’이 거기서 나왔다. 지배자의 철학이 아닌 참된 철학은 고통과 경악과 절망, 곧 슬픔에 대해 “왜?”라고 묻는 것이며, “철학은 너의 슬픔 속에서 나의 슬픔을 보고 끊임없이 이 슬픔과 저 슬픔을 만나게 함으로써 더 보편적인 슬픔의 바다로 나아간다.” “오직 타인의 슬픔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통해 한 사람의 정신 속에서 슬픔이 보편적인 형식을 얻을 때 그런 정신이야말로 철학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 교수에게 온 가족이 질곡의 삶을 산 재일동포 서 교수야말로 “걸어다니는 철학”이다. 

서 교수는 생활보수주의, 국가주의, 아류 제국주의가 횡행하는, 신자유주의로 귀결된 87년체제를 식민지 구조의 연장으로 파악한다. 이건 닫힌 세계다. “고통스럽고 어두운 지하실만이 닫힌 세계가 아닙니다. 네온사인 요란한 유혹이 있고,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 널려 있는 가운데서 당뇨병으로 죽어가야 하는 이런 세계도 하나의 닫힌 세계인 거지요. 다소 비약처럼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결국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도 그런 닫힌 세계, ‘이런 것이 성공적인 삶이다’라는 일원적인 가치관을 주입시키고 그 외부를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걸 넘어서서 굉장히 다양한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하는 것, “그것이 교양의 역할”이다. 김 교수에게 교양은 “올바르게 생각할 줄 아는 힘”이며 그것은 유영모·함석헌의 사상에서 내려오는 전통에 뿌리박고 있다. 예술 역시 타자성으로의 초월, 곧 타자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교양, 예술과 더불어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아를 실현하는 공적 주체를 키우는 교육을 통해 제대로 지킬 수 있다. 

조국생활 중간결산 쯤에 해당할까. 두 교수의 대담 주제들은 이미 그들의 여러 저작들을 통해 어느 정도 낯이 익지만 서 교수의 장기체류 체험과 대담형식이라는 중대한 변수를 깔고 있는 만큼 ‘철학적 깊이와 역사 담론의 넓은 폭’이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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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고민하는 두 디아스포라

한승동 기자
출처 : <한겨레 > 2007-12-14 

» 대담 중인 서경식(왼쪽) 교수와 김상봉 교수. 돌베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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