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 애국보다 더 애국적인 비판
[세상을 바꾼 노래] ⑨ 우디 거스리의 〈디스 랜드 이즈 유어 랜드〉 (1944년)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년 12월 13일
Woody Guthrie - <This Land Is Your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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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의 내부적 통합에 사용될 때 노래는 강력한 결속력을 발휘한다. 국가, 군가, 교가의 존재 이유다. ‘9·11 테러’ 여파 속의 미국에서 특정한 노래들이 반복해서 불렸고 들렸던 연유도 거기에 있다. 통합의 도구로서 노래의 사회적 기능을 작동시켰던 것이다. 우디 거스리의 <디스 랜드 이즈 유어 랜드>는, 어빙 벌린의 <갓 블레스 아메리카>(1938)와 함께, 당시 가장 빈번하게 선택된 노래였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디스 랜드 이즈 유어 랜드>가 본래 <갓 블레스 아메리카>를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였다는 점이다. 우디 거스리는 어빙 벌린의 노래가 현실과 동떨어진 퇴행적 이상주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음악사학자 리처드 크로포드에 따르면 거스리는 그것이 “사회적 불평등을 마치 신의 뜻인양 호도했다”고 여겼다. 그래서 1940년, 기존 민속음악에 가사를 붙여 처음 이 노래를 만들었을 때에는 제목도 <갓 블레스 아메리카 포 미>라고 칭했을 정도였다. 이후 시간을 거치며 새로운 멜로디와 제목을 붙인 <디스 랜드 이즈 유어 랜드>를 탄생시켰지만 거스리의 초심은 변하지 않았다.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영화 <프라이머리 컬러스>의 원작소설가인 조 클라인이 집필한 전기에 따르면, 가장 신랄한 문장이 담긴 6절에서 거스리는 <갓 블레스 아메리카>를 대놓고 반박하기도 했다. “어느 햇살 밝은 아침의 첨탑 그늘 속/구호소 옆에서 나는 내 이웃들을 보았다/그들이 굶주린 채 서 있는 동안/나는 거기 서서 의문했다/이것이 신이 아메리카에 내린 축복인지를”
실상, 요즘은 그 노랫말을 직접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3절까지 뿐이다. 우디 거스리 본인이 끊임없이 가사를 바꿔 불렀던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담긴 비판적 정서를 부담스러워 한 사람들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배제가 더 큰 이유였다. 그러나 역사는 거스리의 비판이 국가를 위한 보다 순수한 애정의 발로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오늘날 우디 거스리(1912~1967)는 “모던포크의 아버지”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그가 “민속음악을 사회적 저항과 관찰의 수단으로 전환시켰다”고 평했다. “밥 딜런과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나아갈 길을 개척했다”는 것이다. 그런 업적은 그의 출신 배경과도 무관치 않다. 존 스타인벡이 소설 <분노의 포도>를 통해 고발한 1930년대의 대공황은 거스리가 체험한 현실이었다. 그는 모래폭풍을 피해 고향을 떠난 오키(오클라호마 사람)였으며 수많은 톰 조드(<분노의 포도>의 주인공)들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민속학자 앨런 로맥스에게 발견되어 레코딩 제의를 받은 계기도 노동자들을 위한 ‘<분노의 포도> 저녁 콘서트’였다. 자신의 기타에 “이 기계가 파시스트를 제거한다”는 문구를 새겨 넣었던 무산계급자 거스리는 그렇게 세상과 만났다.
<디스 랜드 이즈 유어 랜드>는 맹목적인 애국의 노래가 아니라는 점에서 <갓 블레스 아메리카>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노찾사의 <광야에서>가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과 같을 수 없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부자들만의 전유적 위법행위들을 자행했던 사람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마당에 그 차이가 무슨 대수냐고 반문한다면 다시 한 번 상기할 일이다. 어쨌든 ‘이 땅은 당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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