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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문화예술

<은하해방전선>

by 내오랜꿈 2007.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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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변증법처럼
영화·연애·정치 코드로 살펴보는, 윤성호의 야심만만 데뷔작 <은하해방전선>

▣ 황진미 영화평론가 
출처 : <한겨레21> 제687호 2007년 11월 29일 


윤성호 감독의 <은하해방전선>은 영화 만들기에 관한 메타 영화로, 제목 ‘은하해방전선’(과학소설 <은하영웅전설>의 패러디)은 영화 속 배우가 출연했던 어린이 특수촬영물의 제목이자, 영화 속 감독이 최종적으로 만드는 영화 제목이다. 한편 ‘은하’는 주인공과 헤어진 여자친구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는 신인감독의 좌충우돌 입봉(데뷔)기이자, 이기적인 남자의 연애 반성담이고, 좌파 청년의 정치 풍자 코미디이다. <은하해방전선>을 영화, 연애, 정치, 세 가지 코드로 나누어 살펴보자. 


연애와 영화, 좋을수록 말이 없다 

1. 영화와 자기반영성: 주인공은 감독 지망생으로 ‘센 플롯으로 스타를 꼬여서 투자자를 유치하려는’ 고민에 빠져 있다. 시놉시스를 들은 스태프들이 한마디씩 거들고, 배우와 (영화사) 대표의 동상이몽이 더해지고, 스타 영입 계획은 무산되면서 영화는 점점 ‘산으로 올라간다’. 이는 이 영화의 감독 윤성호의 체험담이다. 1년간 매달린 장편 상업영화가 투자 문제로 ‘엎어지고’, 제작비 1억원으로 준비하던 것과 전혀 다른 영화 <은하해방전선>을 8월에 찍어 10월에 열리는 부산영화제에 출품하는 그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다. 영화는 2007년 부산영화제를 배경으로 영화판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그 풍경이 영화가 최초로 상영된 2007년 부산영화제의 풍경과 ‘실시간 생중계’로 겹쳐진다. 영화가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1년 뒤 영화 촬영 장면에서 주인공이 찍는 영화 속 영화 역시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로 묘사된다. ‘혁권 더 그레이트’(어린이 특촬물 캐릭터)를 찍는 몽골 감독을 찍는 주인공을 찍는 윤성호 감독이라니. 이 지독한 자기반영성의 연쇄를 통해 감독이 전하는 말은 “이것은 바로 나를 담은 영화이자 나를 닮은 영화입니다”이다. 감독의 자의식이 묻어나는 자기반영적 영화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나르시시즘과 반성이다. 영화는 반성의 길을 간다. 넘쳐나는 말들 속에서도 거북함이 아닌 짠한 마음이 드는 까닭은 영화가 취하는 반성의 태도 때문이다. 

2. 연애와 언어: 실연으로 실어증에 빠진 남자가 옛 애인과 꼭 닮은 여자를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시나리오를 쓰던 주인공은 은하와 헤어지고 진짜 실어증에 걸린다. 말 잘하는 그가 만난 세 명의 여자는 모두 말보다 느낌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스킨십과 도시락으로 감정을 전하던 은하, 공허한 말들을 환멸하던 녹음 기사, 입 모양으로 마음을 보는 은성. 그는 ‘연애와 영화의 공통점은 좋을수록 말이 필요 없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고 나서 언어를 되찾는다. 영화는 ‘그것’이니 ‘소통’이니 하는 속 빈 기표만 난무하는 대화를 통해 말의 패착을 묘사한다. 달변의 감독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말의 한계를 넘어선 직접 소통이다. 영화의 마지막, 남자 로보트가 진심을 캐묻는 여자 로보트에게 ‘전선’ 케이블을 연결하자 그녀는 곧 사랑을 확신한다. 주인공 역시 은성과 몸의 언어인 수화를 통해 사랑의 대화를 나눈다. 복화술은 영화에 대한 은유이다. 배우의 복화술로 말을 하거나, 메가폰을 통해서만 말을 할 수 있는 주인공은 영화를 통해 자신의 말을 하는 감독을 은유한다. 복화술은 배우와 녹음 기사의 욕망으로 의미가 굴절되지만, 복화술로 노래를 하니 즐거운 퍼포먼스가 된다. 섹스 후 불러주던 은하의 고즈넉한 노래와 지하철에서 합주되던 〈Bella Ciao〉(이탈리아 빨치산 노래)는 주인공과 선임병이 던지는 섹스와 정치와 민중과 영화에 관한 무의미한 말들을 압도한다. 말의 한계를 넘어서는 음악의 수행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사랑도 자꾸 발명할게, 발명왕 에디슨이 될게” 

3. 정치와 풍자: 주인공의 채팅 아이디(ID)는 ‘2000년도에 25살이었던 영재’이다. 68혁명 이후 좌파들의 삶을 그린 영화 <2000년도에 25살이 되는 조나>(1976)의 패러디이자, 실제로 2000년에 25살이었던 윤성호 감독의 자의식을 담은 아이디이다. 주인공은 스스로를 “민주화 이후, 무임 승차한 좌파”라 칭한다. 영화는 386세대와 차별되는 감독의 정치성을 무시로 드러낸다. 독재정권은 가두투쟁이 아니라 “원고 자체에 모순이 있는” 학예회 웅변으로 기억되고, 그가 싸워야 할 적(敵)은 체 게바라와 김정일과 박정희의 카리스마를 동시에 선망하는 지독한 무정치성이다. 영화의 풍자 정신은 ‘남파 간첩이 자신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김정일이라는 한 남자를 사랑했던 것이란 걸 깨닫고, 동성애를 질병 취급하는 북한행을 포기하고 전향한 뒤, 경상도 귀신이 쓰여 경상도 사투리로 땅값이 오를 곳을 예언하는 재테크 무당이 된다’는 재미동포의 시놉시스 속에 집약돼 있다. 1인 독재체제의 북한과 부동산 공화국 남한을 동시에 풍자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조선일보>와 이명박과 미국과 신자유주의에 관한 풍자가 곳곳에 포진해 있는데, 이런 유머들이 일관되고 뚝심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영화의 철학적 기반부터 좌파적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변화와 실천을 긍정하는 변증법을 철학적 기반으로 삼는다. 시나리오 속 일본 여자는 “넌 쉽게 변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헤어지겠다 말하고,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은하의 말에 “영재6호가 되어 은하2호를 만나고 싶다”라고 답한다. 또 “(네가) 연애도 발명한 것이라며?”라고 말하는 은하에게 주인공은 “이제 자꾸 발명할게, 발명왕 에디슨이 될게”라고 답한다. 이는 사랑을 변치 않는 형이상학적 가치로 믿는 것이 아니라, 나날이 변화하는 실천적 가치로 믿는다는 것을 뜻한다. 

<은하해방전선>은 극한의 자기반영성을 통해 젊은 좌파 감독의 영화와 연애와 정치에 관한 자의식을 발랄하게 드러낸 영화이다. 386세대들과 차별되는 새로운 정치적·미학적 감수성을 지닌 신예감독의 입봉을 목도하니, 반갑고 흥분된다.(…막 이래^^)(11월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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