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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hat jazz movie 래그타임에서 퓨전재즈까지 - 영화와 함께하는 재즈 산책 김동현 기자 출처 : <대학신문> 2007년 11월 24일
낙엽이 떨어지고 찬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재즈의 계절,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라디오와 카페에서는 귀에 익숙한 재즈 음악들이 흘러나오지만, 막상 재즈 음악을 찾아서 듣다 보면 그 복잡 다양함에 주눅이 들기 십상이다. 재즈가 여전히 어렵다고 느끼는 독자라면 재즈를 다룬 영화 쪽으로 눈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재즈와 영화는 그 시작부터 줄곧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1927)를 비롯해 재즈음악·아티스트를 다룬 영화들이 줄지어 제작돼 왔으며, 영화에 삽입된 재즈 음악들은 정규 음반 못지않은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따라서 재즈를 소재로 다룬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재즈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색다른 길일 수 있다. 흘러가는 가을이 아쉬운 지금, 재즈를 좀 더 알고자 하는 독자에게 재즈 정서가 물씬 묻어나는 영화들을 소개한다. ◆ 래그타임에서 시작된 재즈의 물결 스윙, 블루스, 비밥, 쿨, 핫, 퓨전… … .처음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라면 그 장르의 다양함에 혀를 내두를지도 모른다. 특히 극도의 즉흥성과 불협화음을 표방한 비밥재즈나 프리재즈 등은 재즈 초보자에게 ‘난해하다’는 느낌을 주기 십상이다. 그러나 초창기 재즈는 장르가 복잡하지 않고 연주가 난해하지도 않았다. 재즈 음악이 태동한 곳은 인종차별이 여전히 극성을 부리던 19세기 말 미국 남부 지역이었다. 교회나 학교에서 피아노를 배운 흑인 중류층들은 흑인 특유의 리듬으로 클래식 성향의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박자가 통통 튀고 리듬의 강약이 자주 변하는 이 피아노곡들을 ‘래그타임’이라고 불렀다. 영화 「스팅」(조지 로이 힐, 1973)의 삽입곡으로 유명한 ‘엔터테이너(The Enter-tainer)’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래그타임 작곡가 스콧 조플린의 대표곡이다. 클래식과 흑인 리듬을 접목시킨 래그타임 연주가 대중의 인기를 모으면서 흑인 피아니스트의 인기도 높아져갔다. 그러나 다수의 백인들은 ‘흑인이 백인의 악기를 연주한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영화 「래그타임」(밀로스 포만, 1981)은 당시 흑인 피아니스트와 백인 사이의 갈등을 잘 묘사해낸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는 백인에게 탄압받는 흑인 음악가들의 암울한 현실과 이에 대비되는 경쾌한 래그타임 선율이 교차돼 흐른다. 래그타임이 재즈 형식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곳은 미국 남부의 해군도시 뉴올리언스였다. 시골에서 상경한 흑인 음악가들은 뉴올리언스 해군 군악대의 연주에 영감을 얻어 피아노 반주에 시끌벅적한 코넷(트럼펫의 전신) 연주를 덧붙였다. 이른바 ‘뉴올리언스재즈’의 탄생이다. 당시 뉴올리언스 주점가에서는 많은 흑인 음악가들이 ‘재즈 밴드’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는데, 언제 어떻게 재즈(Jazz)라는 명칭이 생겨났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미국 남부에서 시작된 재즈의 물결은 급속히 북서부 대도시로 확산됐다. 뉴욕, 시카고 등 거대 도시의 밤무대 클럽들은 재즈 선율에 취해 춤을 즐기는 백인들로 북적였고, 춤에 취한 백인 손님들은 흑인 음악가들에게 좀 더 빠른 리듬을, 그리고 클럽 전체를 울리는 웅장한 사운드를 연주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스윙재즈’는 미국 전체를 재즈 열풍으로 몰아넣었다. 영화 「스윙 걸즈」(야구치 시노부, 2006)를 봤다면 20여명에 가까운 여고생 밴드가 무대를 가득 채운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1930년대 미국을 휩쓴 스윙재즈 역시 20명이 넘는 거대 ‘빅밴드’에 의해 연주됐다.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턴 등 유명 재즈 음악가들은 각자의 빅밴드를 결성해 클럽 무대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코튼 클럽」(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1984)은 1930년대 ‘스윙재즈 시대’의 분위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의 무대가 된 코튼 클럽은 실제로 뉴욕 상류층 명사들의 단골 클럽이었으며, 유명 빅밴드들이 경쾌하고 웅장한 스윙재즈를 선보이던 곳이었다. 또 영화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연주자는 모두 흑인이었지만 정작 흑인 손님의 출입은 금지됐다. 인종차별의 모순이 잘 나타나는 공간이었다. 스윙재즈가 흐르던 1930년대 미국 대도시 클럽에서는 수많은 스타들이 탄생했다. 특히 빌리 홀리데이, 엘라 피츠제럴드 등 빅밴드 전속 여성 가수들은 국민적인 유명세를 얻으며 재즈의 인기몰이에 한몫했다. 영화 「레이디 싱스 더 블루스」(시드니 퓨리, 1972)는 빌리 홀리데이의 영화 같은 인생을 담은 작품으로, 유명 재즈가수 다이애나 로스가 직접 주연을 맡아 세대를 뛰어넘는 재즈의 매력을 선보였다. 경쾌하고 활기찬 스윙재즈는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모았다. 특히 히틀러와 무솔리니로 대표되는 전체주의 정권이 사회 전체를 억누르기 시작한 1930년대 유럽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스윙밴드를 조직해 억압된 욕망을 분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항의 춤’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스윙 키즈」(토마스 카터, 1993)는 나치 정권 아래서 몰래 스윙재즈를 즐겼던 독일 젊은이들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당시 전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재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오랜 기간 인기를 모았던 스윙재즈는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쇠퇴기를 맞는다. 대다수의 재즈 연주가들이 징집돼 유럽과 아시아로 떠났으며, 무수히 많았던 클럽 역시 하나 둘씩 문을 닫았다. 그리고 몇몇 재즈 음악가들은 매너리즘에 빠진 스윙재즈 대신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스윙재즈에 비해 훨씬 변화무쌍하고 전위적인 새로운 재즈, ‘비밥재즈’가 스윙재즈를 대체하며 모던재즈 시대를 연 것이다. ◆ 비밥과 함께 태동한 모던재즈 시대 담배연기 자욱한 재즈바, 화려한 조명 아래 색소폰이나 더블베이스, 트럼펫 등을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흑인 음악가들. 오늘날 ‘재즈’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들은 거의 대부분 1940~1950년대를 풍미한 ‘모던재즈’ 시대에 형성됐다고도 할 수 있다. 재즈의 본령 혹은 주류로 불리는 모던재즈는 비밥재즈, 쿨재즈, 하드밥재즈로 구분된다. 모던재즈 시대를 연 비밥재즈는 재즈 본연의 특징이 옅어진 스윙재즈에 반발해 창시됐다. ‘비밥의 선구자’로 꼽히는 찰리 파커의 일생을 그린 영화 「버드」(클린트 이스트우드, 1988)는 비밥재즈의 특징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이다. 색소폰 연주자 파커는 빠른 손놀림으로 음의 높낮이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즉흥연주를 즐겨 했다. 영화 속 파커의 연인 챈은 “당신의 음악은 익숙해지는 데는 오래 걸렸지만 지금은 항상 좋아해요”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비밥재즈가 높은 예술성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한 사실을 암시한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파커가 더러운 여인숙을 전전하며 동료들과 순회공연을 하는 장면, 일자리를 찾지 못해 결혼식 연주 아르바이트 등으로 연명하는 장면은 비밥재즈 음악가들의 어려웠던 상황을 잘 보여준다. 비밥재즈가 음의 높낮이를 쾌속으로 넘나들며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핫재즈였다면, 이후 등장한 쿨재즈는 느긋하고 편안한 선율로 비밥의 열기를 식혔다. 영화 「리플리」(안소니 밍겔라, 1999)에서는 쿨재즈의 선구자 마일즈 데이비스, 쳇 베이커 등 유명 재즈 음악가들의 쿨재즈를 들을 수 있다. 리플리가 감미로운 음색으로 부르는 쳇 베이커의 명곡 ‘마이 퍼니 발렌타인(My funny valentine)’은 쿨재즈의 서정성과 부드러움이 물씬 풍긴다. 재벌 2세 행세를 하는 리플리에게 쿨재즈는 자연스럽게 듣고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 외우고 공부해야 하는 신분상승의 도구다. 이는 도회적이고 지적인 쿨재즈가 백인 상류층의 감수성과 맞아떨어져 그들 문화의 일부를 이뤘던 당시 상황을 보여준다. 한편, 백인 취향의 쿨재즈가 탐탁지 않았던 흑인 재즈 음악가들은 거칠고 폭발적인 음향의 하드밥재즈를 선보이기도 했다. 비틀즈 등의 록밴드가 인기를 끌었던 1960년대에는 재즈 음악가들이 상대적으로 설자리를 잃었다. 이 때 록음악의 영향을 받은 재즈 음악가들은 1970년대에 록과 재즈를 결합해 퓨전재즈를 만들어냈다. 퓨전재즈 선율을 느낄 수 있는 영화로는 샐러리맨들의 치열한 경쟁을 그린 「글렌게리 글렌 로스」(제임스 폴리, 1992)가 있다. 이 영화 전반에는 퓨전재즈의 거장 웨인 쇼터의 ‘인 더 카(In the Car)’, ‘유 멧 마이 와이프(You Met My Wife)’ 등 경쾌하고 가벼운 퓨전재즈가 흐른다. 1980년대에는 록과 어우러진 퓨전재즈가 재즈 본연을 잃어버렸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1940~1950년대의 모던 시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신고전주의재즈가 등장했다. 영화 「모베터 블루스」(스파이크 리, 1990)에서 주인공 블릭과 여러 재즈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즉흥적이고 빠른 음악은 영화 「버드」에서 느낄 수 있었던 비밥재즈의 격정을 다시 불러온다. 현대에는 댄스파티를 위해 재즈·힙합·펑크을 적절히 섞은 ‘애시드재즈’, R&B(리듬앤블루스)에 소울·팝·월드뮤직·클래식을 융합한 '크로스오버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결합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재즈는 숱한 변화를 거치며 그 모습을 바꿔왔다.가을의 끝무렵에서, ‘정형화된 틀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재즈 정신을 다양한 영화들을 통해 느껴보는 게 어떨까? 영화를 보면, 재즈 음악가가 보인다 노승연 기자 출처 : <대학신문> 2007년 11월 24일
◆「버드」(클린트 이스트우드, 1988)=‘버드(Bird)’는 비밥재즈로 한 시대를 풍미한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의 별명이다. 스윙재즈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던 1940년대에 등장한 찰리 파커는 디지 길레스피와 함께 비밥 혁명을 이뤘다. 그는 ‘버드’라는 별명과 같이 새처럼 높고 낮은 음을 즉흥적으로 넘나드는 연주를 즐겼다. 찰리 파커는 그의 음악만큼이나 즉흥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이는 영화의 한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밤중에 디지 길레스피의 집에 찾아간 주인공 찰리 파커는 느닷없이 연주를 시작하며 “이봐! 이걸 받아 적어, 어서!”라고 말한다. 막 자려던 참이었던 디지는 “내일 하면 안 돼?”라고 묻지만 찰리는 대답한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내일은 다 까먹는단 말야.” ◆「라운드 미드나잇」(베르트랑 타베르니에, 1986)=1950년대는 비밥재즈에 반기를 들고 쿨재즈, 하드밥재즈 등이 발전했던 시기다. 하지만 영화 주인공 데일 터너는 끝까지 비밥재즈를 고수하며 파리로 건너가 음악활동을 펼친다. 데일 터너의 실제 모델은 바로 ‘피아노의 찰리 파커’라고 불린 버드 파웰. 그는 피아노의 왼손 연주를 줄이고 오른손을 짧고 강렬하게 혹은 웅장하고 빠른 속도로 연주하는 모던 재즈피아노 연주법의 새 장을 열었다. 「라운드 미드나잇」에는 버드 파웰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음악가로서의 정체성 갈등이 담겨있다. 그뿐만 아니라 허비 행콕이나 웨인 쇼터, 토니 윌리엄스 등 1950년대 당시 활동했던 여러 재즈 음악가들의 대역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레이」(테일러 핵포드, 2004)=하드밥이 발전하던 1960년대, 록을 비롯한 다양한 음악이 인기를 끌면서 재즈는 쇠퇴기를 맞았으나 R&B는 계속해서 인기를 얻었다. 이 영화는 당시 활약했던 R&B의 거장 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레이 찰스는 가스펠과 블루스를 결합해 새롭고 흥분된 리듬의 R&B를 만들어냈다. 그의 독특한 R&B는 음악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가스펠을 성스럽게 여겼던 남부 흑인들에게는 ‘불경스런 음악’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도 독실한 한 흑인이 레이의 음악을 듣고 “신의 음악을 모독하지 마!”라고 외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평생을 시각장애인으로 살았던 레이 찰스는 탁월한 청각과 음악적 감수성으로 신체적 결함을 극복해냈다. 그의 인간승리 드라마를 영화에서 어떻게 실감나게 묘사했는지를 눈여겨 보는 것도 하나의 감상 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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