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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의 40년 음악인생
박준흠
출처:<가슴>(www.gaseum.co.kr) 2007/09/14
출처:<가슴>(www.gaseum.co.kr) 2007/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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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9월 9일) 신촌의 모 카페에서 한대수 씨의 첫 번째 딸인 ‘양호’의 백일잔치가 있었다. 그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그간 음반, 공연, 사진, 책 작업을 통해서 친분을 쌓은 동료와 후배들 그리고 매체 관계자들이 참여한 ‘파티’였고, 술이 거나하게 취한 몇몇 뮤지션들은 즉석에서 어쿠스틱 기타 몇 대만으로 공연을 가졌던 흥겨운 자리였다.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김도균과 김성민(선글라스)이 합주하는 <행복의 나라>가 들렸던 것 같고, 한대수 씨가 사람들 뒤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모습을 얼핏 본 것 같다. 그는 17살 무렵인 60년대 중반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며 ‘사랑과 평화’의 기치 아래 록과 포크를 폭발시켰던 히피들과 어울렸고, 한편으론 아버지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 응어리진 가슴을 쓸어안고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키웠는데 그 때 만든 노래가 바로 <행복의 나라>라고 한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본 첫 딸 백일잔치에서 그 노래를 듣는다는 것이 어떤 심정일지 궁금하다. 한대수는 음악평론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대중음악 평론’을 가능케 한 무척 소중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음악평론가에게도 평론 ‘대상’이 있어야 평론이 가능한데 그게 바로 앨범(‘작품’으로서의 음반)이고, 한대수는 신중현과 함께 ‘앨범아티스트’로서 선구자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가슴네트워크와 경향신문은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선정 작업을 공동으로 진행했는데, 왜 여기에 유명한 트로트나 댄스 가수들의 음반이 선정되지 않았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는 음악평론과 음악사연구, 앨범과 (단순)음반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우문에 가깝고 어찌 보면 이게 한국 대중음악이 처한 현실이다. 사실 ‘음악평론가’ 입장에서 보면 한대수 이전에서 평론의 대상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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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미국에서 귀국한 한대수는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당시 생소했던 ‘싱어송라이터’의 모습은 한국대중음악사에서 파격적인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싱어송라이터’는 진정성을 갖는 음악창작을 하기 위한 ‘방법론’이었기 때문이다. 70년대 초반 한국에서 청년문화가 개화될 때 김민기, 양희은, 양병집, 서유석 등이 발표한 새로운 가치와 음악적 외관을 담은 앨범들은 한대수의 활동에 일정 부분 빚진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한대수의 디스코그라피를 살펴보는 일은 ‘한국음악창작자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과 같다. 그는 단지 머리 길고 ‘빠다’ 발음 나는 히피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언뜻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그에 대해서는 90년대 중반까지 몰상식할 정도의 평가도 적지 않았고,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은 90년대 말에 들어서다. 신중현이 2006년 12월에 은퇴공연을 하고 잠정적으로 활동 중단한 것을 생각한다면, 8집 [Eternal Sorrow](2000) 이후 항상 “이번이 마지막 앨범일 수 있다”라는 절망적인 얘기를 하면서도 아직까지도 꾸준하게 신보들을 발표하는 한대수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음악적으로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면서 창작적으로도 뛰어난 그의 앨범들을 대한다면 단지 그를 ‘한국 모던포크의 시조’ 정도로 얘기하는 것이 너무 약소해 보인다. 왜냐하면 의심할 바 없이 한대수는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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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는 활동에 비해서 데뷔 음반은 매우 늦게 나왔다. 군대를 갔다 오느라고 1집 [멀고먼-길]은 1974년이 되어서야 간신히 발표되었다. 이 앨범에는 지금까지도 불려지는 그의 대표곡 <물 좀 주소><바람과 나><행복의 나라> 등이 수록되었고, 김민기, 양희은 계열의 음악과는 작법이 달랐다. <물 좀 주소> 같은 노래를 보더라도 다분히 록적인 어법이 강했기 때문에, 나중에 크래쉬와 헤비메틀로 합주할 때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집 [고무신]이 이듬해 나오고, 여기에는 <오늘 오후><나그네 길><고무신><여치의 죽음> 등이 수록되었는데 정부에서 마스터테입을 회수해 가는 바람에 더 이상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이후 미국 뉴욕으로 음악적인 망명을 갔고, 하드록밴드 ‘징기스칸’ 활동을 했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더 이상 음악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80년대 후반 한국사회의 부분적인 민주화 이후 1989년에 잠시 귀국해서 만든 앨범이 그의 최고작이라 할 수 있는 [무한대]이다. 이 음반은 장장 14년의 공백을 깨고 포크에서 록으로 방향 전환해서 만든 명작이다. 손무현(기타), 김영진(베이스), 김민기(드럼), 송태호(키보드)로 구성된 세션팀과 만든 <One Day><Widow's Theme><마지막 꿈>은 80년대 베스트 세션으로 기록될만하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새로운 음악을 인정해주지 않음에 실망해서 다시 미국으로 갔는데, 이전과 달리 이 때부터는 음악창작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음반들이 [기억상실](1990), [천사들의 담화](1991)이고 여기에는 잭리(이우진)와 이우창 형제가 참여한다. 6집 [1975 고무신 서울~1997 후쿠오카 라이브](1999)는 국내에서 한대수가 재평가 받으면서 나온 앨범이다. 그리고 이 라이브 음반에는 김도균(기타)과 이우창(키보드)이 참여하는데, 이는 현재 한대수 세션 밴드의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해에는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가 뉴욕에서 존 롤로의 프로듀싱으로 발표되었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분기점이 되는 8집 [Eternal Sorrow](2000)가 손무현의 주도적인 참여로 만들어졌고, 이 음반은 후기 한대수의 대표작이 된다. 그리고 2002년에 김도균밴드, 이우창의 독집 앨범들과 함께 묶여져서 발매된 [삼총사]에는 [고민 Source Of Trouble]이 담겨 있는데, 여기에는 <As Forever>와 같은 멜로딕한 노래부터 <호치민>과 같은 광폭한 노래들까지 함께 실렸다. [다큐멘타리 한대수 - Music & Life](2003)가 DVD로 나온 뒤에 2004년에는 10집 [상처]가 자신의 레이블 ‘Hahndaesoo Corp’을 통해서 발표되었는데, 이는 제작자가 마땅히 없었음을 의미한다. 이후 2001년에 가졌던 ‘마지막 콘서트’를 담은 [2001 Live](2005)가 나왔음에도 12집 [욕망 Urge](2006)가 어김없이 나왔고, 같은 해에는 철학자 도올 김용옥과의 합동 콘서트를 담은 [한대수 도올 광주라이브]를 발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외에 미발표 곡까지 담은 고품질 박스세트 [The Box](2005), 최근 낳은 딸에게 바치는 신곡 <양호야! 양호야!>가 수록된 [Best Of Hahn Dae-Soo](2007)도 주목 할만 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대수의 디스코그라피에서 주목하지 않을 음반은 하나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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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대수를 그의 작품 중심으로만 ‘간결하게’ 정리해서 얘기해도 숨이 가쁠 정도이다. 그렇다면 그가 현재 받고 있는 대접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대중음악을 ‘통사’가 아니라 ‘창작자 중심의 역사’로 기술할 때 상당 부분의 페이지를 그에게 할애해야 할 정도의 위상을 가진 아티스트이건만 아직도 음반제작비 수급이 여의치 않아서 신보 발매를 주저하는 상황이 현실이다. 물론 음반을 낸다고 해서 인세를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고 하니, 그는 여태까지 ‘기념음반’들만 발매한 형국이다. 결국 그가 첫 딸 양호를 이렇게 늦게 본 이유에도 이런 현실적인 상황이 반영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젊은 부부들의 ‘출산율 저하’ 현상의 이유가 어처구니없게도 대(大) 예술가 한대수에게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런데 올해 2007년, 한대수의 음악인생이 40년(1968~2007)을 맞았다는 것을 기억들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작년 2006년은 ‘음반 사전심의 철폐 10주년’이었는데 정태춘을 기억하지 않고 지나친 것처럼 올해도 한대수를 기억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년에는 누군가 꼭 한대수 트리뷰트 앨범과 공연을 제작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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