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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문화예술

대단한 유혹(La Grande Seduction)

by 내오랜꿈 2007.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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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유혹(La Grande Seduction) 

출처 : www.jinbonuri.com 2007-09-01





 

  ▲ 영화포스터

삶은 여전히 힘들고 별반 나아진 것 없이 흘러가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노라!"는 대선주자들의 외침은 무척이나 공허하게 흐른다. 무관심과 냉소로 점철된, 변화하지 않는 현실에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어떠해야 하고, 우리의 참여는 어떠해야 하는 것일까. 영화 <대단한 유혹>은 이 물음에 하나의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영화의 배경은 캐나다의 조용한 한 어촌마을이다. 우리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보이는 사회복지 혜택을 받고 살아가는 '그들'. 무려 8년을 아무 일도 하지 못한('안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채 실업수당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그들은 '일할 수 있는 권리와 조건'을 만들기 위해 '눈물겨운' 투쟁을 벌인다. 그 '진지한 투쟁'이 영 생뚱맞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 눈에 그들의 모습은 멋적은 웃음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마치 한 편의 잘 만들어진 휴먼코미디 영화를 볼 때처럼.

영화 속의 '무료한 현실탈피과정'과는 정반대로 우리는 늘 여유있는 삶을 꿈꾼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가끔씩 낚시를 즐기며 저녁에는 선술집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술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 비록 모두들 꽉 짜여진 틀 속에 갇힌 삶을 살아가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한번씩 그러한 삶을 꿈꾸곤 한다.

우리가 꿈꾸는 그런 삶을, 영화속 어촌마을 사람들은 한사코 거부하면서 '인간'이라는 화두에 얼마만큼 진지할 수 있는가를 이미지화 한다.

'놀라운 일'이라고는 찾기 힘든, 마을 구성원 대부분이 무기력한 나날을 살아가는 <세인트 마리>라는 공간에서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피동적인 복지' 대신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찾고자 애쓰는 그들의 진정성을 발견하는 과정은 차분하면서도 커다란 울림을 던져준다. 무료한 일상을 탈피하려는 시도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웃들과의 따뜻한 공감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여기 한국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두가지 정 반대의 사건이 오버랩되었다.


하나는 일본의 한 시골마을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불로장생수 사건. 이른바 '늙지 않는 성분이 포함되었다는 샘'을 홍보도구로 이용하여 관광지로 유명해지지만 결국 마을 사람 전체의 조작극이었다는 것이 들통이 나서 도덕적 비판을 받았던 사건이지만 그후 세월이 흘러 그 마을이 실제 장수마을임이 밝혀져서 더 유명해졌다는 일화다. 또 하나는 얼마 전 우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전남 신안의 한 작은 섬에 끌려가 40여 년 동안이나 '잃어버린 삶을 살아야 했던 한 사내'의 엽기적인 사건이다.

하나는 조작극을 벌였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지듯 그 과정의 시도와는 별개로 그러한 조작극을 벌여야 했던 현실탈피의 과정이 이해되어지는, '장수마을'임이 밝혀지면서 그들의 연출이 해프닝에 그치면서 외려 '이해 할 수 있음'의 기억들을 전달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엽기적인 사건은 이웃들의 무관심과 외면으로 인해 한 인간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과정 속에 담긴, 추한 이웃들의 비인간적 이미지가 몹시도 불편한 기억으로 남는다.

영화는 몇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는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는 삶의 과정은 피동적이고 시혜적으로 주어지는 복지가 아니라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노동의 댓가라는 것. 또 하나는 산업화의 과정 속에 내몰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다 중요한 가치', 곧 함께 하는 삶의 소중함을 보여준다. 나의 친구들이 아니라 내가 이겨야 하는 경쟁상대라는 걸, 내가 잘 되기 위해서는 타인을 이겨야 하는 '적자생존'을 가르치는 교육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잃게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의사를 속이기 위해 급조된 마을의 '크리켓 경기장면'은 희극적 요소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요소를 동시에 담고 있지만, 함께 사는 이들이 힘을 합쳐 이루려는 눈물겨운 투쟁의 과정 속에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순수성을 발견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누군가를 속이려 했던 것에 대해 변명하지 않았고, 그것이 속임을 당하던 이에게 더 큰 상처가 되기를 원치 않았던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인간애'라는 것이 확인되고 속이는 과정을 담당했던 이들에게 진정성이 있었기에 마을사람들은 용서를 받는다.

일상에서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일상을 보면서 사람들에 따라서는 영화를 그저 '비현실적인 영화일 뿐'이라고 치부해버리거나 작위적인 일상에서 잠시 머리를 쉬게 하는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고 반문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좋다. 비현실적인 일상의 모습일 뿐이라고 생각하자. 어디 세상에 '착한' 사람들만 살고 있겠는가. 그러나 8년을 노동하지 못해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현실'은 비현실적인 모습이 아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사회다. 어쨌든 이 영화는 논픽션이니까. 

하루 빨리 이런 세상이 오기를 꿈꾼다. 

<진보누리>에 실린 글인데, 원글은 앞뒤 문맥과 글 전개가 영 어색하기에 가져오면서 글 내용과 문맥을 대폭 손질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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