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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옆지기의 글

멘붕

by 내오랜꿈 2013.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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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내내 일주일 가량을 저는 의욕상실이다 못해 '멘붕' 상태에 빠져 지냈습니다. 저를 이렇게 만든 주범은 바로 우리 집 삼순이. 귀촌하면서 함께 살기 시작한 삼순이는 한두 번 말하면 거의 말귀를 알아듣는, 똥개 치고는 매우 똑똑하고 영리한 아이입니다. 그래서 자유방임으로 키워도 여지껏 별다른 사고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성견이 되어 가임 시기가 오니까 통제가 안 되더군요. 그동안 세 번의 출산이 있었고 강아지들을 다른 곳에 보낼 때마다 감정 소모가 커서 이번에는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죠. 그래서 겨울 동안 남편이 틈틈이 대나무를 잘라 울을 쳐서 삼순이의 출입을 차단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다시 생리가 시작되었고, 삼순이는 본능에 의해 밖으로 나갈 궁리만 하는 눈치였어요. 일주일 전 월요일 새벽. 출입문을 조금 느슨하게 묶었더니 그 작은 틈을 노려 밤새도록 밖을 싸돌아다니다 온 삼순이를 발견했죠. 얼마나 신나게 돌아다녔는지 네 발은 흙탕물 투성이고 온갖 잡풀 씨앗도 붙어 있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주둥이와 얼굴을 몇 대 때리며 큰소리로 나무라는 등 한바탕 난리가 났지요. 여태껏 삼순이의 훈육은 남편 담당이었고, 저는 기죽어 있는 삼순이를 품어주는 역할이었는데 삼순이에게 저의 나무람은 나름 큰 충격이었는지 기상한 남편이 삼순이를 불러도 자기 집에 찌그러져서 꿈쩍도 않는 겁니다. 불러도 오지 않으니 자연 남편의 목소리 톤이 좀 올라갔고, 이에 위기 위식을 느꼈는지 삼순이는 순식간에 후다닥 도망을 가버렸지요. 우리는 좀 있다 오겠거니 하며 출근 했는데, 저녁에 귀가해도 삼순이는 없었습니다.

 

1일째... 햐~ 요넘 봐라. 이게 '간땡이'가 부었네?

2일째... 들어오기만 해봐라. 가만 안둘 테다. 씩씩..

3일째부터 서서히 불안해지며 걱정이 커집니다.

집 주변을 훓은 것은 기본이고요.

혹시 울을 넘을 때 자칫 다치지나 않았는지 당시 상황을 남편에게 세세히 묻고,

배 고파서 누가 밭에 놓은 쥐약이라도 먹었나,

교통 사고라도 나서 길가에 던져 버리지나 않았는지,

우리 말고는 쉬 잡힐 아이가 아닌데도 괜히 주변 농장이나 조합 작업장 주변을 살피기도 하고,

작은 움직임에도 반응하는 봄이 짖는 소리가 나면 자다가도 뛰어나가 살피고,

며칠간 자다깨다를 반복했더니 생체 리듬이 깨져 엉망이고,

정말이지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드는 겁니다.

주말에 이르자 남편은 급한 김에 멀리까지 가버려서 집을 못 찾아오는 거라고 말하여 저를 대성통곡하게 만들고....

 

어제 조금 늦은 저녁을 먹고 봄이 밥 챙겨주고 습관처럼 허허로운 눈으로 멀리 시선을 던졌는데, 건너편 도로에 하얀 개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산책중이지 뭐예요. 그래서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도 반대편으로 미친듯이 뛰어갔지요. 어둑어둑한 무렵이라 밑져야 본전이겠거니 하는 심정으로 논둑을 서성거리는 개를 향해 '삼순아~!!' 하고 불렀는데, 한 녀석이 제게로 막 달려오는 겁니다. 흑흑~ 우리 삼순이가 맞았어요. 저를 보자마자 미처 더럽다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물고 빨고.. 이러는 녀석이 왜 일주일째 집에 안들어오고 밖을 떠돌았는지...

 

그것도 어느 집 개인지 모를 남자친구와 함께 말이죠. 평소 삼순이는 사회성이 별로 없어서 다른 개를 붙여줘도 잘 안 노는 녀석인데, 바람 나는 시기에는 물불을 안 가리네요. 기쁜 마음으로 녀석을 안고 집으로 오는데, 삼순이 남자친구도 졸졸 따라오고..... 우리 모습을 본 남편의 얼굴이 금새 환해집니다. 우선 밥부터 먹이고, 화덕에 불을 피워 목욕물을 데웠습니다. 털도 거칠거칠 하고 꼬락서니가 도저히 말이 아니라 못 봐줄 지경이라서 목욕을 시키기로 한 거죠.

 


 

마치 반성이라도 하는 듯 기죽은 모습으로 쭈그리고 엎드려 있으니, 안쓰러워서 오며가며 쓰다듬어 주기 바쁩니다.

 



씻겨 놓고 터래기가 다 마르니 다시 뽀송뽀송한 우리 삼순이로 돌아왔습니다. 텅 빈 것처럼 느껴지던 집안이 꽉 차네요.호호~

 

나는 그동안 너무 속상해서 괜히 에먼 남편에게 말도 퉁명스럽게 하고,

작은 일에도 짜증 내고,

틈만 나면 삼순이 걱정에 질질 짜며 일주일을 보냈건만...

 

우리의 걱정에 비해 돌아온 '탕아'는 남자친구랑 알콩달콩 너무 잘 지낸 듯하여 좀 약이 오르네요. 지는 할 짓 다 하고, 너무합니다. 그렇지만 무사히 살아 돌아와서 천만다행입니다. 이제 걱정거리가 사라졌으니 다시 활기차게 귀환하여 블로그도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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