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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바다 1 - 바다와 역사

by 내오랜꿈 2007.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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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항해, 네트워크 시대를 열다 
문명과 바다 1. 바다와 역사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사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09 28

» 인간의 항해, 네트워크 시대를 열다

따로 떨어져 살아가던 각 대륙 문명은 15세기 들어 바닷길로 연결된다. 전염병과 새로운 동식물·침략과 약탈 같은 ‘야먄’까지도 오갔다. 이렇게 형성된 근대세계는 제국주의로 귀결되었지만 처음부터 초역사적으로 결정돼 있던 것은 아니었다.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자, 바닷길을 떠나보자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근대 세계는 사실 바다를 통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5세기 이전의 세계를 생각해 보자. 아메리카 대륙과 호주, 뉴질랜드 등은 아시아나 유럽과는 소통이 끊어진 채 거의 별개의 세계로서 존재하였고, 아프리카는 일부 해안 지역에 외지인이 도착한 외에 내륙 지역은 오랫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였으며, 유럽인들에게 아시아는 실제적인 정보보다는 환상과 유언비어에 의해 막연하게 채색된 아득히 먼 곳이었다. 

이렇게 서로 떨어져서 살아가던 각 대륙 문명이 드디어 15세기부터 바닷길을 통해 서로 연결된 것은 세계사의 흐름에서 결정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이때부터 세계 각 지역 사람들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 독립적으로 발전해 온 각 지역의 개별 역사는 하나의 세계사의 흐름 속에 녹아들어갔다. 사람들은 이전과는 현저히 다른 세계 속으로 깊숙이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한번 그렇게 되자 더는 뒤로 물러날 수 없는 외길을 따라 앞으로만 나가게 되었다. 

혹시 이런 반문을 제기할지 모른다. 세계의 흐름이 어떻든 간에 아마존 지역 내에 깊숙이 틀어박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삶의 방식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실상을 보면 오히려 이런 외지야말로 전지구적인 상호 영향이 생각보다 얼마나 더 큰지 잘 말해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지금껏 많은 사람들은 아마존 지역의 화전 경작을 두고 근대 이전의 원시적 생활 방식이 살아남은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화전은 오히려 유럽인들과 만나고 난 다음에 발전해 나온 ‘근대적인’ 농경 방식이다. 화전 경작을 하기 위해서는 숲에 불을 질러서 나무들을 재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숲에 불을 지른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나무에 불을 붙이려면 우선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고 적어도 한 철 동안 방치해서 바짝 마르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돌도끼로 나무를 쓰러뜨리고자 하면 실로 엄청난 노력이 소요된다. 

» 대항해 시대의 대표적인 범선. 본문 바탕 그림은 서배스천 캐벗의 세계지도(1544년)로 아마존 지역과 캘리포니아만이 자세히 소개된 최초의 지도로 알려져 있다.

가장 좋은 연구방법은 실제 실험을 해보는 것이다. 아마존 지역 주민들에게 전통적인 돌도끼를 주고 지름 1.2미터의 나무를 넘어뜨리는 실험을 해 본 결과 115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는 매일 8시간씩 3주의 노동에 해당하는 작업량이다! 그러므로 돌도끼로 1800평의 화전을 일구려면 하루 8시간씩 153일 동안 일해야 한다. 반면 쇠도끼를 사용하면 나무 한 그루를 쓰러뜨리는 데 3시간이면 되고, 1800평 화전을 일구는 데 8일이면 충분하다. 새로운 도구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가고도 남지 않는가. 유럽인들이 들여온 철제 도구를 접한 인디언들이 그것을 그토록 탐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유럽인들이 금을 찾은 만큼 아마존 주민들은 쇠를 찾았던 것이다. 아마존 주민들은 17세기에 유럽산 철제 도끼를 얻고 나서야 비로소 화경을 하게 되었고 또 정착 생활을 했다. 그 이전에는 농경보다는 사냥과 채집을 위해 여러 지역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화전 경작이 오래된 생활양식이라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며, 이는 오히려 ‘현대의 침입’의 결과물이었다. 

이 예에서 보듯이 15세기 이후 세계는 홀로 고립되어서 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세계 각 지역은 나머지 모든 지역과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한 네트워크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만들어진 구조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근대세계가 되었다. 

이러한 ‘네트워크’와 ‘구조’는 누가 주도하여 만들어낸 것일까? 

이 점과 관련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유럽중심주의’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학계에서 하도 많이 이야기해서 이제 진부하다는 느낌을 받지만, 그래도 여전히 깔끔하게 정리되지는 않았고, 오히려 더욱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해서 두 가지 상반된 논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해양 팽창을 주도한 것이 유럽인들이었고, 그 결과 근대는 전체적으로 유럽인이 지배하는 세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19~20세기에 제국주의 시대가 되어 세계의 나머지 광대한 지역이 서구(즉 유럽과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콜럼버스와 마젤란 같은 인물들의 해외 탐험은 유럽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시작한 첫 출발점이 된다. 

둘째, 유럽의 지배는 처음부터 결정적이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유럽인들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많은 문명권들이 모두 나름대로 팽창을 시도했으며, 사실 18세기 이전에는 유럽인들이 다른 대륙을 ‘지배’할 힘이 전혀 없었다. 처음 아시아에 들어온 유럽인들은 현지 세력을 지배하기는커녕 어떻게든 기존 상업 네트워크에 끼어들어 가서 생존을 확보하기에 급급했다. 19세기 초까지도 중국 일부 지역의 경제는 산업혁명이 한참 진행되던 영국과 유사한 수준이었다는 것이 최근의 학계에서 제기되는 중요한 주장이다. 

» 주경철 교수의 <문명과 바다>
이보다 더 과격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장구한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에서 서구가 지배력을 행사한 것은 19~20세기라는 비교적 단기간의 현상에 불과하며 21세기는 다시 중국과 인도가 세계의 무게중심을 차지하는 ‘정상성’을 되찾아가는 시대라고 말한다. 

과연 어느 주장이 옳은 것일까? 진실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근대 세계사의 흐름은 결국은 제국주의라는 무자비한 지배와 약탈의 구조로 귀결되었지만, 그것이 처음부터 초역사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하여튼 세계의 여러 문명 간 만남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조화로운 세계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던 것일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서 확인해 봄으로써 답을 구할 일이다.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보기 위해 이제 먼 바닷길을 떠나도록 하자. 


‘현경 교수의 이슬람 순례’에 이어 주경철 서울대 교수의 ‘문명과 바다’가 연재됩니다. 주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16세기 유럽 무역사 연구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테이레시아스의 역사> <네덜란드> 등 여러 권의 저서와 역서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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