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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문화예술

추락의 예술

by 내오랜꿈 2014.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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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의 예술

출처:르몽드 디플로마티크 [75호] 2014년 12월 04일 (목)

존 버거 /  영국 출신 작가

 


세기 초에 상영된 영화 중에는 “21세기의 은밀한 고발”이라고 할 만한 영화가 거의 없다. 유감이다. 그런 영화를 만들어내려면 재능과 활력과 평범을 벗어난 비범한 광대의 끼가 필요할 것이다.




그의 눈에는 세상일이라는 것이 도무지 무자비하면서도 불가사의한 것으로만 보인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것이 당연하다. 그는 모든 에너지를 당장 다급한 일에만 집중하고 어떻게든 거기서 빠져나와 좀 더 나은 상황으로 나아갈 수 있는 탈출구만 찾는다. 인생에서는 유사한 상황과 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그래서 그 상황들이 낯설음에도 불구하고 친숙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체득했다. 그는 꼬맹이 때부터 어투라든가, 농담, 교묘한 재치, 직업상의 요령 등에 익숙했으며 이것들을 자주 반복되는 일상의 일들과 연관 지어 잘 조합해 사용했다. 그래서 그가 자주 부딪치는 사건들을 예고해주기라도 하는 것 같은 예언자적인 지식처럼 간직했다. 그는 결코 어떤 일에도 당황해하지 않았다. 그가 체득한 속담조의 지식으로 가득 찬 몇몇 경구들은 다음과 같다.


엉덩이는 남자의 신체의 핵심이다. 그래서 적을 만나면 맨 먼저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야 한다. 남들이 너를 넘어뜨릴 때도 맨 먼저 땅에 닿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여자들은 전혀 다른 무기를 가지고 있다. 특히 그녀들의 눈을 보아라. 강자들은 언제나 거칠고 신경질적이다. 설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만 좋아할 뿐이다. 근처에 장애인들이 하도 많아서 휠체어의 교통정리를 위해 경찰이 필요할 지경이다. 단어는 권태로 가득한 일상과 채워지지 않는 욕구와 난폭한 욕망을 설명하거나 정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위한 시간은 거의 갖지 못하고 대부분 쫓기듯 삶을 따라갈 뿐이다.


그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당신 역시 아무것도 아니다. 적어도 당신이 통상적인 길에서 벗어나서 위험을 무릅쓸 때까지는 그렇다. 그 때에 당신의 친구들은 그 지점에 멈춰서 당신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그 놀라운 순간의 침묵은 모든 언어의 상상할 수 없는 단어들을 포함하고 있다. 당신은 인지(認知)상의 공백을 창조해 낸 것이 가진 것이 전혀 없거나 거의 없는 남자와 여성의 지위라는 것은 선량한 사람들이 피난처를 찾는 적절한 리필제품에 불과하다. 소화기관은 자주 우리들의 통제를 벗어난다.


모자는 날씨를 막아주지는 못한다. 다만 계층을 표시해 줄 뿐이다. 남자의 바지가 발목 위로 올라오면 그것은 모욕이나 여자의 치마가 올라가면, 그것은 빛나는 영감이다.


이 무자비한 세상에서 지팡이는 훌륭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장소와 계급에 적용될 수 있는 다른 격언조의 지식들도 있다. 건물의 핵심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적어도 돈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계단은 미끄럼틀이다. 창문은 물건을 내던지거나 넘어 들어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발코니는 잽싸게 내려가기 위한 지점이거나 물건을 떨어지게 만드는 지점일 뿐이다. 야생의 자연이란 숨기에 적절한 곳이다.


쫓고 쫓기는 모든 추격은 순환적인 패턴을 보인다. 한 발짝만 내딛어도 언제나 실수할 위험성은 있으니 모든 것이 꼬일 때는 차라리 남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는 술책이 더 낫다. 이 모든 것들은 대략 열 살쯤 되는 한 꼬맹이가 터득한 전조적인 지식이라는 느낌을 준다. 20세기 초 런던 남부의 램버트에서 막 그의 나이가 두 자리 숫자를 기록할 때 거리를 방황하면서 채득한 것들이다. 그는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공공 기관에서 보냈다. 먼저 소년원에 드나들었고 그 다음에는 빈곤층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녔다. 그는 어머니 한나에게 무척이나 집착했지만 어머니는 그를 돌볼 수 없었다. 어머니는 런던 남부의 뮤직홀의 예술가 출신이었지만 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정신병원에 갇혀서 보내야 했다. 그런데 소년원이나 빈곤층 아이들을 위한 학교 같은 공공 기관이라는 것은 내부 생활이 조직되고 이루어지는 것이 언제나 교도소와 비슷했으며 또 지금도 서로 유사하다. 루저들을 위한 징벌이라는 것 말이다. 나는 이 열 살의 꼬맹이와 그가 체험한 것들을 생각할 때, 오늘날 내가 알고 있는 한 지인의 그림들을 떠올리곤 한다.


40대가 될 때까지 미카엘 쿠안네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련의 절도 행위로 생의 절반을 교도소 안에서 보냈다. 그는 수감 생활 중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그린 그림들의 주제는 한 수감자가 상상하거나 바라본 자유로운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이야기다. 그의 회화가 가진 인상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등장하는 모든 장소나 지점이 익명이라는 점이다. 상상으로 만들어낸 인물들, 주인공들은 모두 인상적이고 표현적이며 열정적이지만 거리 모퉁이, 둔중한 건물, 출입구, 지붕의 선, 그리고 행인이 지나가는 통로들은 모두가 황량하고 이름도 없고 활력도 없이 냉랭한 무관심 그 자체다. 그 어디에도 어머니의 다정한 손길을 환기시킬 만한 흔적은 없다.


우리는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서 외부 세계의 장소들을 볼 수 있지만 그 장소로 직접 뚫고 들어가지는 못한다. 감방의 창문이 보여주는 자비조차도 없다.


열 살의 꼬맹이는 사춘기의 소년이 되고 젊은 남자가 된다. 조그맣고, 호리호리한 체구에 날카로운 푸른 눈을 가진 청년이 되어 춤추고 노래하며 판토마임도 한다. 그는 얼굴의 표정과 섬세한 손동작을 조합해서 대화를 전개시키면서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공기와 주변의 분위기를 표현해 낸다. 그는 예술가로서는 혼란과 절망의 동작으로 관객의 옷 주머니들을 능숙하게 뒤지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최고의 소매치기꾼이다. 그는 영화도 제작했으며 그 영화에서 직접 연기도 한다. 화면의 배경은 모두 황량하고 익명이며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다.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내가 지금 누구에 대해서 말하는지 짐작하시겠나요? 조그마한 체구의 방랑자, 찰리 채플린?


채플린이 1923년 <황금광 시대>를 촬영할 때, 스튜디오에서 팀원들과 함께 시나리오에 관해서 토론했었다. 그런데 파리 한 마리가 들어와서 주위를 맴돌아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화가 난 채플린이 파리채를 가져와 그 파리를 죽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한참 지나고 나서 그 파리가 채플린의 바로 옆에 있는 탁자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가 손을 내밀면 충분이 잡을 수 있는 위치였다. 그가 파리채를 들고 그 파리를 압사시키려고 막 내리 치려는 순간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는 파리채를 놓아버렸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왜 파리를 죽이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들을 빤히 쳐다보며 답했다. “그 파리가 아니었잖아.”


10년쯤 전에 채플린이 높이 평가한 굳건한 협력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로스코 아버클이 채플린을 가리켜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 시대의 가장 완벽한 코미디언으로서 앞으로 한 세기 동안 그에 대해서 말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한 세기가 지나갔고 그 ‘뚱보’ 아버클의 예언은 사실로 증명되었다. 한 세기 동안, 세계는 적어도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는 완전히 변했다. 워키토키가 발명되고 할리우드가 축성되는 등, 영화도 역시 변했다. 그러나 채플린의 초기 영화들이 가진 놀라움과 유머, 찌르는 듯한 진실, 그리고 계시의 효과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영화들이 갖는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에 더 적절하고 더 긴급하고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를 증명하는 내밀한 고백들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앞에서 언급한 채플린의 예언자적인 세계관을 들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광대로서의 그의 천재성에 있다. 역설적으로 이 천재성은 그가 어렸을 적 직접 체험한 시련에서 기인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금융, 투기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압제 하에 살고 있다. 이 경제적 압정은 정부와 혹은 정치인들을 자신들의 노예로 만들고 미디어의 세계를 자신들의 마약 공급책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유일한 목적이 이익을 남기고 항구적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인 폭압적인 지배력이 우리에게 허약하고 불안정하고 무자비하고 설명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인생관과 세계관을 강제하고 있다. 이 인생관이야말로 채플린이 초기 영화 시대의 세계관보다 열 살짜리 꼬맹이의 눈에 비친 전설적인 세계관과 더 유사하다. 2014년 7월 어느 날 아침 신문을 보니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열 살부터 아동의 노동을 합법화하는 조치를 제안했다고 한다. 그런데 모랄레스로 말하자면 그나마 상대적으로 냉소주의에서 벗어난 전진한 편에 속하는 정치인 아니었던가. 볼리비아에서는 백만 명 이상의 아동들이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이미 노동을 하고 있다. 이 법이 그나마 이들에게 법적인 보호역할을 할 것이다.


6개월 전에는 이탈리아의 람페두사 섬 해안가에서 긴 항해에는 적합하지 않은 배를 타고 밀입국하려던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온 400여 명이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죽음을 맞았다. 이들은 모두 유럽에서 일자리를 찾을 희망으로 모험에 나섰던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3억 명에 달하는 남자와 여자, 아동들이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해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 독특하게 보이고 싶어서 방랑자의 길을 나서는 것이 아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날이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보통선거라는 정책의 개념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 왜냐면 정치인들의 담화라는 것은 그들이 실제로 하거나 할 수 있는 것들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모든 근본적인 결정들은 금융 투기 세력과 익명 또는 투표권이 없는 대리인들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단어는 권태로 가득한 일상과 채워지지 않는 욕구와 난폭한 욕망을 설명하거나 정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열 살의 꼬맹이가 이미 추측했듯이 말이다.


광대는 삶이란 것이 잔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릿광대의 어수룩하고 화려한 색채의 기이한 의상은 벌써 우울한 심정을 일상적으로 표현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농담이 되어버렸다. 광대는 상실하는 것에 익숙하다. 상실이야말로 그의 프롤로그인 셈이다.


채플린의 어릿광대가 갖는 에너지는 여전히 반복되고 매번 더해간다. 그가 넘어질 때마다 새로운 한 남자가 자기 발부리에 넘어진다. 그 새로운 남자란 매번 같은 사람이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매번 넘어질 때마다 그 활력이 소생하는 비밀은 넘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영속한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이 영속성이야말로 어릿광대가 다음번의 희망에 집착하게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그의 희망이 매번 허공의 웃음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에 익숙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릿광대는 평정심을 유지한 채 멸시를 참아내고 또 참아낸다. 광대는 어쩌다 반격을 할 때에도 주저주저하거나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시도한다. 광대의 이 평정심이야말로 그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 만큼 영속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희망 없는 이 일상의 사건들이 영원히 계속적으로 반복될 것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이를 웃는 것으로 대신 인정하는 것이다.


채플린의 세계에서는 웃음이야말로 불멸성의 대명사이다.


채플린의 85세 때의 사진이 하나 있다. 어느 날 이 사진을 보다가 그 얼굴에 드러난 표현이 내게도 친숙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이유는 나도 몰랐다. 나중에야 알았고 이를 확인했다. 렘브란트의 마지막 자화상 중의 하나인 〈웃는 제욱시스로 분한 자화상〉에서의 웃음과 닮았던 것이다.


그가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서푼의 보수로 일하는 희극배우일 뿐이다. 내가 원하는 전부는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다”


 

글‧존 버거 John Berger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서 널리 알려져 있는 존 버거는 현존하는 영국 출신 작가 중 가장 깊고 넓은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으면서 또 가장 광범한 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처음 미술평론으로 글쓰기를 시작해 점차 관심과 활동 영역을 확장하여 예술과 인문, 사회 전반에 걸쳐 깊고 명쾌한 관점을 제시해 온 그는, 중년 시절 영국을 떠나 프랑스 동부의 알프스 산록에 위치한 시골 농촌 마을로 들어가 근 삼십 년을 살고 있다. 노동과 글쓰기, 농부와 작가, 은둔과 참여를 아우르는 그의 삶은 어떤 대안적 푯대로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어서, 그보다 앞서 살다간 미국의 스콧 니어링을 떠올리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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