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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문화예술

리안 감독

by 내오랜꿈 2014.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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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 리안 감독의 생각



리안 감독이 <라이프 오브 파이>의 연출을 수락한 시점은 <아바타>가 세상에 나오기 9개월 전이었다. <아바타>의 감각적 충격을 맛보기 이전에 이미 리안은 3D라는 시각상의 확대가 영화적 스토리텔링 기법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짐작했고, 나아가 이 신기술을 예술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산업적으로 성사 가능성이 희박한 기획을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던 것 같다. <라이프 오브 파이> 개봉을 앞두고 2012년 11월5일 내한한 리안 감독은 풍랑으로 파이(수라즈 샤르마)가 탄 화물선이 침몰하고 날치떼가 갑판을 덮치는 신, 호랑이와 대치하던 파이가 맹수의 입에 생쥐를 던져넣는 신 등 클립을 영화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골라 3D로드쇼에서 한국 기자들에게 소개했다. 다음은 이튿날 이루어진 그와의 인터뷰에서 오간 3D영화에 관한 문답이다.



-영화 도입부의 매우 아름다운 타이틀 시퀀스에서 동물원의 동물들을 다분히 정적으로 보여준다. 3D영화의 도입부로서 예외적인 이미지들이다. 마치 “여러분 리안식 3D영화의 포인트는 이것입니다”라고 예고하는 것 같았다.


=알아봤다면 다행이다. 모든 이미지에 3D에 대한 코멘트가 들어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소재는 인도산이지만 이 이야기에는 서구적 심지어 유대교적인 면마저 있으며, 모든 종교에 포함된 실낙원의 서사, 성장담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성장하려면 구원이 필요한데 이미 우리는 불완전하고 순수하지 않으니 어떻게 신에게로 돌아가고 외적, 내적 순수를 회복할 것이냐에 관한 물음이 있다. 그래서 나는 파이가 바다에서 잃어버린 폰디체리 동물원을 낙원으로 제시하고 바다에서 그것을 파이가 잃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타이틀 시퀀스는 파이가 사는 파라다이스를 그려낸 다음 각각의 개별 숏에 3D적인 포인트를 만들어넣은 것이다. 나로서는 3D가 새로운 요소였으니까. 예를 하나 든다면 곰은 볼륨감이 큰 3D로 찍은 사실적 세계지만 곰 뒤쪽의 그림은 평평하다. 2D도 심도는 있지만. 모든 동물 숏은 저마다 이유가 있다.



-2년 전 타이중 세트에서 프리비(previsualization: 3D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동영상 콘티)로 보았던 침몰장면이 결국 성공적으로 완성된 걸 보니 반갑다. 내한 프레스 로드쇼에서도 이 장면을 보여주었는데 화물선 침몰 시퀀스가 <라이프 오브 파이> 중 연출자로서 가장 자랑스런 장면이라고 말하겠나.


=로드쇼에서 공개한 세 장면 모두 자부심을 느낀다. 2D로 찍었다면 절반도 효과적이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영화는 하나의 정서적 여행이므로 궁극적으로 관객의 생각을 자극했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거기에서 실패한다면 도중에 뭘 했든 영화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기술적으로는 침몰 시퀀스가 가장 긍지를 느끼는 대목인 건 맞다. 동물 연기 일부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고, 만들기 까다로웠다. 자랑스러웠던 점은 우리가 동물을 동물로서 다루고 가능한 한 의인화를 피했다는 점이다.



-처음 <라이프 오브 파이>의 3D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 바다 스펙터클을 제외하면 과연 이 이야기가 3D를 필요로 하는지 의구심이 있었다. 그런데 당신은 3D를 통해 시각적으로만 한 차원을 더하는 게 아니라 스토리텔링에 한 차원을 더할 수 있으면 목표달성이라고 표현했다. 3D와 스토리텔링의 차원은 어떻게 연결되나.


=<라이프 오브 파이>는 스토리텔링의 의미를 검토하는 이야기다. 물론 ‘신을 믿게 만들어줄 영화’라는 광고 카피는 좀 허풍이다. (웃음) 어떤 영화나 책도 당신을 갑자기 교회 혹은 조직된 종교에 귀의하게 할 순 없다. 이것은 다만 이야기의 환각성, 입증할 수 없는 것을 믿게 하는 힘에 관한 영화다. 우리는 어째서 끝없이 이야기를 전하고 듣고 공유하는가? 이야기는 우리의 존재, 커뮤니케이션, 삶의 의미를 결정(結晶)시킨다. 영화는 이미지라는 환영에 의존하고 거기 기울이는 우리의 주의도 환각이지만 당신은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그 환각 안에 머무른다. 필름메이커들은 관객이 영화 도중 일어나 극장을 나가지 않도록 클라이맥스와 흥분을 넣고 능력이 닿는 모든 일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환각(illusion) 내부에서 환각을 돌아볼 수 있을까? 나는 그러기 위해 스크립트에 구조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나이 먹은 파이를 화자로 등장시키기로 했다. 원작을 읽으면서도 16살 소년의 목소리가 아니라 원숙한 사람의 내레이션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요컨대 파이는 1인칭인 동시에 3인칭인 것이다. 여기에 3D, 물의 표현, 미지의 대상을 그리는 새로운 시각적 흥분을 더하면 영화화가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만약 이 영화가 2D로 방향을 잡았다면 나는 연출을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3D로 찍는 데에 더 든 돈은 2500만달러다. 보통의 문학 각색 영화라고 보면 가능하지 않았을 예산이다.



-뜻밖이다. 나는 스튜디오가 3D로 방향을 잡고 당신을 설득했을 거라 짐작했는데.


=보통은 그렇다. 필름메이커들은 3D를 주저하거나 불편해하고 스튜디오는 티켓 값이 비싸니까 3D를 원한다. 하지만 그건 대부분 액션영화고 어떤 스튜디오도 드라마틱한 아트영화나 문예물에 그런 제작비를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3D에 비판적인 평자들은 3D가 두눈의 초점을 강제로 맞추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몰입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3D는 이제 막 시작하는 기술이고 2D는 백년 넘은 역사가 있어 고도로 세련된 테크놀러지다. 같은 이유로 2D에 대해서는 더 알아야 할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30, 40년간 새로운 건 없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3D는 영화언어로서 아직 고착되지 않았기에 창작에 있어서도 수용에 있어서도 흥미진진하다. 판단하기 이르단 소리다. 어쨌든 내게 3D는 새로운 예술 양식으로 보인다. 물론 장비가 더 발달하고 접근성이 높아져야 할 거다. 안경은 나도 질색이다. (웃음) 무엇보다 비용이 저렴해져서 젊고 독립적인 감독이 3D에 손을 댈 수 있는 날이 오면 이야기는 크게 달라질 거라고 본다.



-인디 3D영화를 말하는 건가.


=그거다. 나는 드라마 표현에서 2D보다 3D가 뛰어난 면이 있다고 확신한다. 3D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공간의 볼륨에 피사체를 배치하는 일은 거의 스테이징(staging)이다. 더 높은 밀도와 폭넓은 거리감을 통제하게 된다. 매우 효과적인 극적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3D 연출이 편집이나 사운드 편집에도 끼치는 영향이 있나.


=사운드는 모르겠다. 음향은 스테레오로 진화한 지 오래니까 큰 변화는 없다. 요즘은 천장에서도 소리가 나와 관객을 둘러싸지 않나. 조금 있으면 극장 바닥에도 스피커가 매설될 것 같다. 그동안 2D에 익숙해진 나와 스탭들은 자꾸 3D영화라는 조건을 잊어 꽤 어려움을 겪었다. 조명의 경우, 아직은 큰 차이가 없지만 지금까지 없던 깊이와 그늘이 생겨남에 따라 앞으로는 방식이 바뀌리라 생각한다. 다만 나는 3D영화에서는 마스터 숏과 미장센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리라 예상한다. 몽타주는 그다음 자리일 거다. 그냥 개인적 생각이니 틀릴 수도 있지만 3D는 확실히 더 많은 시각정보를 담는다. 리허설에서 배우 연기에 만족했지만 컨트롤 부스에 돌아와 3D 모니터링하고 나면 다시 배우에게 가서 연기의 스케일을 줄여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빈번히 있었다. 프레이밍도 달라질 거다. 그러나 여태까지는 2D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장차 3D를 독자적인 미디엄으로 취급하게 할 변화들이 일어날 것이다. 렌즈의 선택과 화면심도의 관계, 상이 맺히는 평면이 결정되는 방식부터 다르니까. 3D에서는 스크린 가장자리가 소실되는 경향도 있다. 2D만큼 프레이밍이 똑 부러지지(solid)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2D도 현실이 아니긴 마찬가지다. 현재 3D에 관해 코멘트하는 사람들의 다수가 완벽히 기술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저런 주장을 하고 있으며 그래서 많은 언급이 불공평하거나 나태하다고 본다. 게으른 사고나 모호한 인상, 오랜 버릇에서 나온 판단이 많다는 소리다. 3D로 만들어진 훌륭한 영화들이 생각의 변화를 가져올 거다. 물론 그렇다 해도 어떤 이들은 끝내 3D를 좋아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리안] “<색, 계>는 연기에 관한 내 자전적인 논문과 같다”Like

사진 : 이혜정 | 2007-11-15 Share it  페이스북  트위터 |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이어지는 기사

<색, 계>의 리안 감독을 만나다


<와호장룡>(2000)으로부터 7년 뒤 리안 감독이 다시 한국을 찾았다. 1930∼40년대 홍콩과 상하이를 오가며 펼쳐지는 <색, 계>는 일제강점기의 격동의 세월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몸에 짙게 새겨진 ‘색’과 ‘계’의 흔적을 그린다. 이처럼 <색, 계>는 그가 7년 만에 다시 시도한 중국어영화지만 필름누아르적인 무드에서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그만의 면모 또한 녹아 있다. 이렇게 영화를 둘러싼 궁금증에서부터 양조위는 물론 <색, 계>로 데뷔한 탕웨이에 이르기까지 리안 감독은 영화에 대해 꼼꼼한 주석을 달아줬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 7년 전 한국을 찾았을 때 인사동에서 맛보았다는 된장찌개를 다시 먹으러 갈 생각이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먼저 <색, 계>는 당신의 이전 영화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노출과 묘사의 수위를 보여줘서 큰 논란을 낳고 있다.


=아마 내가 중년의 위기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웃음) 과거에는 사랑에 대해 보수적이고 평범한 관점을 지녀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젊었을 때 표현하지 못한 것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정사신이 그 괴로운 마음을 표현해야 했다면, <색, 계>는 ‘색’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더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3, 4년 전 엘렌 창이 쓴 28페이지 분량의 단편소설을 읽다가 애국주의와 섹슈얼리티를 조합하는 방식에 큰 충격을 받고 영화화를 꿈꿨다. 물론 두 영화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어 자매 같은 영화라 할 수 있다. 사실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기 직전에 영화가 NC-17 등급을 받아 무척 마음이 무거웠는데, 베니스에서 수상하게 되면서 기분이 어느 정도 풀렸다. 무엇보다 심사위원 7명 모두가 감독이어서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브로크백 마운틴>에 이어 로드리고 프리에토 촬영감독과 함께했다. 그와는 이제 두 번째 작품을 함께했는데, 야외촬영이 많았던 <브로크백 마운틴>과 비교하면 <색, 계>는 실내장면이 주를 이룬다. 두 사람은 어떻게 작품에 접근했나.


=로드리고 프리에토는 굉장히 뛰어난 촬영감독이다. <아모레스 페로스>(2000)를 통해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게 됐는데 <8마일>(2002)이나 <알렉산더>(2004)를 보면 알겠지만 액션이 많은 영화들에서 특히 뛰어나다. 아마도 할리우드에서 핸드헬드를 가장 잘 찍는 촬영감독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이미 당신도 알겠지만 <브로크백 마운틴>이나 <색, 계> 모두 격렬한 움직임과는 거리가 멀다. (웃음) 맨 처음 그와 <브로크백 마운틴>을 함께한 건 그가 굉장히 민첩하고 빠른 속도로 정해진 시간 내에 임무를 완수해내는 촬영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즈음 그는 움직임이 많은 영화도 좋지만 정말 집요하게 캐릭터를 담아내는 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했었다. 아마도 <색, 계>는 그런 그의 바람이 가장 밀도있게 담긴 작품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런 방식이 어떻게 영화에 적용됐나.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물론 당시의 상하이와도 다른 순수한 시대의 홍콩을 담아내는 것, 그러니까 식민지 남부 중국의 느낌을 살려내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전쟁과 혼란으로 가득 찬 필름누아르의 공간으로서의 상하이다. 로드리고 프리에토와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바로 필름누아르의 고정관념을 버리자는 거였다. 그래서 보통 누아르라고 하면 떠오르는 명암의 대조를 드러내기보다는 색채를 많이 넣어서 그림자를 최소화하려 애썼다. 그리고 북유럽 덴마크의 한 마을이 있는데 거기서 느꼈던 어떤 잔잔한 옐로 톤의 빛이 있다. 그 빛의 느낌을 주된 정서로 끌어가다가 나중에 양조위가 건네는 다이아몬드 반지의 보라색과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촬영 내내 갖고 있었다. <색, 계>의 촬영에 대해서는 미국의 영화지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에서도 심도있게 다뤘다. 그렇게 촬영에 대해서 호평을 많이 들었는데 로드리고 프리에토의 공이 크다.



-<색, 계>는 결국 ‘색’과 ‘계’를 떠나서 연기자를 꿈꿨던 한 연기자 지망생이 아마추어의 때를 완전히 벗고 자신의 최고의 연기를 완성하고 산화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색, 계>를 향한 대부분의 관심이 섹슈얼리티에 집중되고 있지만 나 역시 이 영화는 삶에 있어서의 연기와 연극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홍콩에서 오디션을 거치고 리허설을 마친 아마추어 배우들이 더 큰 무대인 상하이로 떠나는 것이다. 왕치아즈는 자신의 연기를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실험한다. <색, 계>는 연기에 관한 내 자전적인 논문과 같다. 그 누가 사람의 성행위 자체가 공연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쾌락도 연기해야 하고 거짓 오르가슴도 표현한다. 왕치아즈가 겪는 혼란은 결국 처음에는 연기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던 일이 점점 자신의 실제가 돼가고 있음을 깨닫고 받게 되는 충격과도 같다. 더불어 나중에 광위민이 왕치아즈를 바라보는 눈길은 승승장구하는 동료배우를 바라보는 부러움일 수도 있다. 영화도 결국 인생의 축소판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와 왕치아즈에 투영해 자신을 보게 될 거다. 영화에서 여러 번의 정사신이 있지만 어떤 장면을 두고 연기를 하는 거짓행위인지 진짜 사랑하는 것인지 분간하기는 힘들다. 사랑도 결국 연기일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홍콩을 떠나려던 왕치아즈 일행이 있는 곳으로 차오(전가락)가 오는 순간이었다. 불청객을 맞닥뜨린 그들은 굉장히 어설프게 차오를 한번씩 칼로 찌르게 된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순응자>에서의 처형식을 떠올렸다.


=그들은 철저하게 아마추어 킬러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어색해 보이게 만들어야 했다. 더구나 그 순간이 바로 그들이 아마추어 연극이 아닌 실제 연기를 펼쳐야 하는 첫 번째 순간이었다. 그들이 이제 상하이로 가서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해야 하는데 아마추어 연기자들임을 너무나 여실히 드러낸다. 그래서 이후 그들의 험난한 운명을 미리 암시한다고나 할까. 말한 대로 <순응자>에서의 느낌과도 비슷하다. 그 장면 이후 그들은 절대 예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그리고 베르톨루치의 경우 정사신을 찍으면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와 왕치아즈의 첫 번째 정사신은 무척 가학적이다. 그것이 혹시나 이의 변태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해서 걱정했는데 이후에는 아니었다. (웃음) 첫 정사신을 그렇게 연출한 이유는 무엇인가?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가를 드러내야 했다. 어떤 사람이 그 관계에서 더 우월한가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또한 그 속에는 전쟁에 대한 분노와 시대에 대한 노여움도 담겨 있다. 그 누구도 믿지 않는 이는 언제나 사랑을 비난하고 부정하는 캐릭터다. 더구나 그는 공공의 적이기 때문에 그런 동물적이고 사디스틱한 면을 보여주려 했다. 그래서 그는 맨 처음 왕치아즈가 자기를 유혹하려 하면서 자기 위에 서려고 할 때 더욱 열을 받은 것이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는 사랑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후 점차 변해가게 된다.



-양조위는 이전에도 <씨클로> <상성> 같은 작품들을 통해 악역을 연기한 적 있다. <색, 계>의 양조위도 연기 변신이라는 측면에서 그 연장선에 있는 것 같은데, 이전 그의 다른 작품들을 참조하기도 했나.


=양조위는 이미 자기만의 확고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배우다. 왕가위의 페르소나라 해도 되고, 허우샤오시엔의 페르소나라 해도 틀리지 않다. 나 또한 그들 모두와 달라야 했다. 로드리고 프리에토 촬영감독이 나를 만나 전혀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것처럼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로드리고 프리에토에게 나는 이전에 한번도 보지 못한 양조위를 만들자고 말했다. 그래서 피자 라이트 혹은 킬러 라이트라고 하는 방법을 써서, 전구를 여러 개 단 반사판으로 주인공의 얼굴을 더욱 악마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다 딱 한번 선한 양조위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다. 왕치아즈에게 반지를 주면서 쳐다볼 때의 눈빛만큼은 정말 진심어린 선한 눈으로 보여달라고 말이다. 그래서 어떤 여자든 ‘이 남자를 살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 만큼. 그리고 양조위는 단 한번도 만다린으로 연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 영화에서 다른 언어를 쓴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캐릭터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렇게 언어와 더불어 양조위에게 움직임이나 걷는 모습 등 그 시대의 딱딱한 공무원 같은 느낌을 요구했다. 그런 식으로 연기 지도를 하고 보니 어느 날은 양조위가 과거 우리 아버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웃음) 아버지가 그런 공무원이셨는데 양조위에게서 그 모습을 본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양조위만의 매력이란 무엇인가.


=그는 두려움에 가득 찬 악인의 모습이다. 모두가 증오하는 공공의 적이지만 동정심을 자아내게 하는 인물을 만드는 데 있어 양조위 말고 다른 선택이 있을까? 악역이지만 항상 두려움을 지니고 있고 양심의 가책도 가지고 있는, 그래서 사실은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섬세한 인물을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은 양조위밖에 없다. 그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 그가 악역을 연기하더라도 언젠가 마음이 바뀔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웃음)



-<와호장룡>이 홍콩의 무협영화 전통을 따르면서도 한편으로 멀리 이탈했던 것처럼, <색, 계> 또한 과거 홍콩에서 인기를 끌었던 캐세이 스튜디오나 쇼브러더스의 고전 멜로드라마의 영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와호장룡>에 내가 어린 시절부터 봤던 무협소설과 영화들의 영향이 은연중에 반영됐다면, <색, 계> 또한 어린 시절 열렬히 좋아했던 캐세이 스튜디오의 뮤지컬이나 멜로드라마의 영향을 분명히 받았다. 캐세이 스튜디오는 쇼브러더스가 패권을 차지하기 전까지 홍콩 상업영화의 대부분을 만들었던 곳인데, 이후 광둥어 영화들이 홍콩 극장가를 장악하기 전까지 꾸준히 만다린으로 그런 뮤지컬과 멜로영화들을 만들었다. <색, 계>를 만다린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데는 그런 영향이 크다. 영화의 전반적인 무드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그 당시의 기억이 큰 역할을 했으며 양조위나 탕웨이에게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특히 양조위에게는 캐세이 스튜디오의 멜로영화 속에 등장하는 악역의 모습을 많이 얘기했다. 그외 영어권 필름누아르 영화들 중에서는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로라>(1944)의 미스터리한 분위기와 니콜라스 레이의 <고독한 영혼>(In A Lonely Place, 1950)에 등장하는 험프리 보가트의 어두운 내면을 많이 참조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리안 감독 [1]Like

글 : 정한석 | 2006-03-03 Share it  페이스북  트위터 |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이어지는 기사

 





리안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브로크백 마운틴>이 방문했다. <와호장룡>의 신기를 뒤로하고 <헐크>를 만들었던 리안이 이번에는 눈부신 풍광의 서부로 들어간 것이다. 여기에는 남녀의 사랑이 아니라, 남자와 남자의 사랑이 있다. 그것도 거친 카우보이들의 사랑이다. 그런데, 애달픔이 한없다. 먼저 개봉된 미국에서는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을 얻었고, 아카데미 시즌 최고의 화제작으로도 떠올랐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전개를 따라 리안이 만든 과거 영화들을 하나씩 조우시켜 그의 세계를 되짚었으며, 몇몇 매체에서 나눈 인터뷰도 묶어 실었다.




리안이 장편 데뷔작 <쿵후 선생>을 만든 것은 1992년이었다. 같은 해에 차이밍량 역시 장편 데뷔작 <청소년 나타>를 완성했다. 한눈에도 둘은 달랐다. 리안은 유연했고, 따뜻했다. 차이밍량과는 또 다른 대만영화의 작가주의가 나온 것 아닌가 싶었다. 대중과의 친화력에서만 본다면 그에게 미래를 걸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두 번째 영화 <결혼 피로연>으로 보란 듯이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하더니, 여세를 몰아 <음식남녀>까지 만들어 ‘아버지가 제일 잘 안다(Father Knows Best)’ 삼부작의 형태를 완성했다. 그러나, 차이밍량이 힘들고 고된 작가의 길로 파고들어가는 대신, 리안은 대중영화의 상대적 자유로움을 선택했다. 바깥으로 눈을 돌려 19세기 유럽의 귀족사회로 건너가 <센스, 센서빌리티>를 만들었다. 자세히 들여다볼 때 이 영화는 <음식남녀>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놓일 만한 사부작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어쨌건 소재와 배경의 선택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그 보폭은 놀라운 이질감을 주었다. 보폭은 이때부터 더 빨라지고, 더 가늠하기 힘들어진다.



대만의 가족사를 다루던 그 실력으로 유럽의 가족사도 매끈하게 완성했구나 싶을 때쯤 <아이스 스톰>으로 미국의 1973년 겨울, 시체 같은 한 가족의 살풍경한 초상을 그렸다. 따뜻한 공기가 돌던 자리에는 얼음장 같은 무력감이 들어섰다. 주변인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딛고 어떻게 미국 현대사의 심장을 할퀴어냈을까 궁금해하는 동안, 리안은 어느새 시간을 타고 올라가 <라이드 위드 데블>의 남북 전쟁 중 민병대 안으로 들어가 성별과 인종의 이상한 화합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서는 놀랍게도 <와호장룡>에 이르러 고대 중국으로 다시 건너왔다. 그 안에 깃든 유연함은 자연과 인간을 조화롭게 존재하게 하여 보는 이들을 매혹시켰다. 미국에서 가장 높은 흥행을 거둔 외국어 영화의 감독까지 되었다. 아시아의 정서를 살리면서도 미국 관객을 사로잡는 희귀한 길을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즈음, 이번에는 난데없이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 중 하나인 <헐크>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비록 리안의 영화 중에서는 실패작에 속하지만, 코믹북을 원작으로 한 영화 중에서는 가장 별종에 가까운 흥미로움이 있었다.



그의 경공술을 따라잡기란 불가능했다. 혹자는 신기하게 쳐다보았고, 더러는 의심스러워했다. 어떤 아시아인들은 그가 바로 아시아의 정서를 그려낼 줄 아는 것 같다고 말했고, 어떤 미국인들은 네까짓 게 미국을 알면 얼마나 알겠냐고 불편해했다. 틀림없는 건 언제나 일정한 장인적 기질이 발휘되었다는 것이다. 서부극이 있었고, 무협물이 있었고, 액션 블록버스터가 있었다. 강호의 숲과 웨스턴의 계곡을 동시에 동경하고 포착할 줄 아는 유일무이한 감독이 바로 리안이었다. 현존하는 감독 중에 리안에 견줄 만한 탐험가라면 마이클 윈터바텀 정도를 꼽을 수 있겠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아시아의 정서를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다. 리안은 별스러운 지도를 지닌 감독이 된 것이다. 게다가 그 지도는 리안의 방식대로 이리저리 접혀 있다. “영어를 사용하는 무협영화를 만드는 것은 존 웨인이 중국어로 말하는 웨스턴을 만드는 것”만큼 이상한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사실 그가 하는 작업은 그것보다 더 종잡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헐크> 다음에 게이 카우보이들의 구슬픈 사랑 이야기인 <브로크백 마운틴>을 만들 줄은 아마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쿵후선생>



<음식남녀>



리안을 소재와 배경으로 따라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의미가 없다. 그조차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것이 영화에 영향을 미치는 바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서구의 많은 저널리스트들이 자신들의 전통인 웨스턴 안에서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말할 때마다 리안이 명백히 맞춤형 대답으로 거기에 응하거나, 완곡하게 “이건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이며, 웨스턴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차라리, <브로크백 마운틴>의 형제가 있다면 그건 이상하리만치 <와호장룡>이다. 혹은 <와호장룡>이 기존의 무협영화에 두었던 거리만큼, 정확히 <브로크백 마운틴>도 웨스턴에서 비껴나 있다.



줄도 열도 없는 것 같은 리안의 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접힌 리안의 지도를 훔쳐보는 수밖에는 없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일종의 그런 지도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크게 펼쳐놓고, 두 명의 주인공 에니스와 잭의 20년 사랑이 그리는 그 궤적을 순서대로 따라가며, 그 안에서 발견되는 어떤 지점들과 나머지 영화들과의 관계를 그어가면서 볼 때, 난수표처럼 보이던 리안의 영화적 행보는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거기에는 없을 것 같았던 리안의 산맥이 그려져 있다.



아버지가 있었다



리안의 아버지 리상은 본토인이었다. 혁명이 일어났고, 지주 출신의 그의 가족은 전부 몰살당했고, 리상은 홀로 살아남아 대만으로 내려왔다. 그는 승려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대만으로 내려온 또 한 명의 생존자 양수창을 만나 결혼식을 올리고 1954년 리안을 낳았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장으로서 경력을 쌓았고, 아들도 자신처럼 교육자가 되기를 바랐지만 영화감독이 되었다. 리안의 아버지는 리안이 <헐크>를 만든 얼마 뒤 세상을 떴다. “아버지가 (이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만들도록) 당신을 격려했다는데 사실인가?”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리안은 말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내게 계속 영화를 만들어 나가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그건 내가 얼마나 의기소침해 있었는지를 알고 계셨기 때문일 뿐이다. 그가 내게 영화 만드는 것 자체에 대해 격려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오스카상을 탔을 때조차 그는 여전히 내가 교사가 되거나 실제로 다른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나는 그에게 게이 카우보이 영화를 만들 거라고 말한 적이 없다.”



1963년 전까지 <브로크백 마운틴>의 주인공 에니스 델 마(히스 레저)와 잭 트위스트(제이크 질렌할)는 그들이 남자를 사랑하게 될 줄 몰랐다. 그들은 브로크백이라는 이름을 지닌 눈부시게 아름다운 산에서 한철 방목 일꾼으로 처음 만났다. 산중으로 들어가 양을 돌보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그곳에는 둘뿐이었다. 어느 몸서리치게 추운 날 술에 취한 채 좁은 텐트 안에서 몸을 부대끼며 잠을 청하던 새벽에 그들은 본능에 이끌려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눈다. 다음날이 되어 서로 간밤의 일을 부정하려 하지만 사랑은 싹튼 뒤고, 브로크백은 이제 에니스와 잭의 천국이 된다. 그 뒤로도 20년 동안 그곳은 에니스와 잭의 사랑을 허용하는 유일한 자연이다.




<브로크백 마운틴> 촬영현장



<브로크백 마운틴>의 아들들은 아버지들에게 자기들이 남자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아니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은 원초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아버지다. 에니스는 잭이 죽는 순간까지 잭이 그토록 원하던 둘만의 가정을 꾸리는 것을 미룬다. 에니스는 유년 시절의 그 끔찍한 광경을 기억한다. 아버지가 손을 끌고 가 억지로 보여준 장면은 마을에서 함께 살며 목장을 운영하던 두 남자 중 한 명의 죽음이었다. 그는 성기가 뽑혀 죽어 있었다. 단지 남자 둘이 함께 살았다는 죄로 그는 죽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사실상 극의 중심은 에니스인데, 그가 끝내 잭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바로 그 아버지가 보여준 도륙의 현장 때문이다. 에니스는 분명 아버지 짓이었을 거라고 잭에게 말한다.



리안은 자신의 영화적 관심을 ‘아버지의 자리’를 탐구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아버지가 제일 잘 안다(Father Knows Best)’ 삼부작에서 아버지가 주인공이자 영화의 중심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세 편의 영화에는 모두 주 사부라는 아버지가 등장하며, 랑시웅이라는 배우가 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의 아버지는 마치 리안의 가족사를 배경으로 굴곡되는 듯하다. 특히 <쿵후 선생>의 주사부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아내를 학살로 잃고 대만으로 내려온 사람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형상은 리안의 영화 속에서 여러 가지로 변모해갔다. <아이스 스톰>처럼 무능한 어른들의 세계를 상징하는 허수아비로 나오기도 했고, <와호장룡>의 리무바이처럼 스승이고자 하는 유사 아버지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 리안이 영화 속에 아버지의 자리를 넣으려고 얼마나 고집하는가는 없어도 될 듯한 곳에 그가 있을 때 더 명확해진다. 원작과 달리 과학자인 아버지로 인해 변이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아들이 괴물이 된다는 <헐크>의 내용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아버지는 <헐크>만큼이나 무서운 내력을 지닌 장애의 근본이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여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자리는 가족 안에 있고, 그건 곧 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리안 감독 [2]Like

글 : 정한석 | 2006-03-03 Share it  페이스북  트위터 |  글자 크게  글자 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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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비밀과 상실의 집단



에니스와 잭은 산을 내려와 헤어진다. 그건 곧 체계와 편견의 땅으로 들어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을 형성하고, 그들도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에니스는 약혼자 알마와의 결혼 생활을 시작하고, 잭은 생존을 위해 거부 농기구상의 딸 루린과 원치 않는 살림을 차린다. 그들에게 일반 여성과 가정을 꾸리고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허식과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결국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4년 만에 다시 만난 에니스와 잭은 낚시를 핑계로 일년에 한 두 번씩 브로크백으로 둘만의 여행을 간다. 그럼으로써 가족은 점점 더 위태로워진다.








가족은 리안의 영화를 연결하는 또 하나의 고리다. “(이전의 삼부작으로 구성된) 가족 드라마와 <센스, 센서빌리티>는 모두 가족 의무 대 자유 의지의 충돌에 관한 것이다”라고 리안은 말한 적이 있다. 동시에, “가족 드라마에 말싸움이 있는 거라면, <와호장룡>에는 발차기가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따르면 <와호장룡>도 청명검을 사이에 둔 유사 가족 드라마인 셈이다. 여기서, <센스, 센서빌리티>의 이성과 감성은 곧 리무바이-수련, 용-호의 세대로 대변되는 정과 동의 극단과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처음에 리안 영화에서 가족은 보다 공존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초기 삼부작에서 특히 그랬다. 그 예로, <결혼 피로연>은 가장 이상한 가족의 공존을 허용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서양 남자친구를 가족으로 인정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아들의 아이를 실수로 임신한 여자까지도 대를 잇는다는 차원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보기 드문 가족 한 무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형상이 바뀌는 만큼 공존을 찾아가던 가족의 이야기도 곧잘 파국의 가족으로 변모해 갔다. <아이스 스톰>의 가족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 속에서 가족은 엉망진창이다. 부모는 스와핑 게임에 휩쓸려 들어가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성장통의 늪 속에서 허우적댄다. 가족은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생이 기차역으로 마중 나가는데, 이미 하룻밤의 지옥 같은 일을 경험하여 바닥까지 내려간 뒤라, 이 가족에게 평화가 다시 올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가족이 어정쩡한 공존의 자세를 취하거나, 파국을 향해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이 가족에게는 어떤 ‘비밀과 상실’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존하거나, 와해되는 것은 그 비밀과 상실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는가의 문제에 달린 것이다. 리안 영화의 모든 인물들은 이 비밀과 상실을 지닌 자들이다. 그중에는 <센스, 센스빌리티>처럼 영화의 내러티브를 탄탄하게 하기 위해 기능적으로 도입된 것도 있지만,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생긴 존재론적인 비밀들이 대부분이다. 그럴 때 상실은 어느 틈엔가 그 옆에 있다. 주로 그 이유는 있지 않아야 할 자리에 누군가 있을 때 생긴다. 그걸 공존의 화합으로 기가 막히게 풀어낸 것은 <라이드 위드 데블>이다. 영화는 남북전쟁 시기 남군을 지지하는 민병대를 중심으로 다룬다. 그런데 거기에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 둘이 있다. 한 명은 독일계 청년이며 또 한 명은 흑인 청년이다. 전통적으로 북군을 지지하는 독일계와 자신의 인종을 해방시키겠다고 나선 북군을 죽이기 위해 맨 앞에 서는 두 사람이 이 영화의 아이러니한 주인공이다. 두 주인공은 그곳에서 마침내 서로를 감싸 안아준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게 이상적인 화합의 지점으로 풀려가는 것만은 아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그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서 생겨날 수 있는 가장 깊은 슬픔을 길어 올린다. 그건 <와호장룡>의 형체없는 슬픔과도 비견할 만한 것이다. <와호장룡>이 개봉되었을 당시, 대나무 위에 균형을 잡고 서서 가르침을 주는 리무바이의 몸은 마치 무와 도의 혼연일체처럼 보였지만, <브로크백 마운틴>을 통해 거슬러 보면 그 중력에서의 해방은 사실 상실의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강호를 떠나고자 했던 리무바이에게는 도저한 상실감이 있었다. 그러니, 그 풍경이 만약 외면화된 리무바이의 혼에 대한 표현이라면, 그가 모든 걸 상실하고 허무에 빠져 있는 자라면, 그 중력과의 무관함은 해탈이 아니라 상실의 풍경이다.




<센스, 센서빌리티>



<라이드 위드 데블>



<브로크백 마운틴>이 중반부에 이르렀을 때 비밀과 상실은 봇물 터지듯이 터져 나온다. 에니스는 알마와 억지로 산다. 잭은 돈 때문에 루린과 산다. 에니스와 잭은 알마와 루린에게 자신이 게이임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갖고 있다. 에니스와 알마, 잭과 루린은 점점 더 싸늘한 관계가 되어간다. 그건 상실의 연속이다. 뒤집어 봐도 마찬가지다. 알마와 루린 역시 마음이 없는 남편과 사는 처지여서 상실자이기는 마찬가지다.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함으로써, 자기의 자리가 아닌 곳에서 살아야 함으로써 생기는 비밀과 상실은 모두를 불쌍하게 만든다. 끝내 이혼하고야 만 알마는 어느 추수감사절날 에니스에게 그동안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다고 격한 감정을 쏟아낸다. 그러나, 에니스는 자기의 입으로는 결코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 에니스는 모든 것을 상실하고도 끝까지 무언가를 말하지 않고 침묵한다.




리안의 영화 친구, 프로듀서 제임스 샤무스


샤무스가 있기에 <브로크백 마운틴>이 태어났다





리안에게는 평생의 영화 친구가 한명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프로듀서 제임스 샤무스다. “그는 처음부터 영화를 함께한 나의 동반자일 뿐 아니라 내가 아는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이며 프로듀서다.” 리안은 그를 그렇게 설명한다. 그들의 인연은 십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리안은 학위를 마치고도 근 6년간이나 미국에 머물며 시나리오 작업만을 했다. 그러나 미국의 주류 영화계는 그에게 장편 데뷔작을 만들 기회를 쉽게 내주지 않았다. 리안은 고국 대만으로 돌아와 정부에서 지원하는 시나리오 공모전에 응모해 당선된 뒤, 장편 데뷔작 <쿵후 선생>을 준비했다. 그때쯤 제임스 샤무스는 뉴욕에 근거지를 둔 인디영화 제작사 ‘굿 머신’을 테드 호프와 함께 설립하고는 아직 장편을 만들지 않은 신인감독 중 유능한 단편영화 감독을 찾아다니다 리안을 만나게 됐다. “지금 당장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리안의 의지와 함께 둘의 동업은 시작됐고, 그 뒤로 리안의 모든 영화에는 제임스 샤무스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둘은 단순히 동업자가 아니라, 창작의 협업자 관계다. 제임스 샤무스는 에마 톰슨이 각본을 쓴 <센스, 센서빌리티>를 제외한 <브로크백 마운틴> 이전의 모든 리안의 영화에 각본가로 참여했으며, <아이스 스톰>으로는 칸영화제 각본상도 받았다. 프로듀서로서는 지금까지 단 한편도 빠지지 않았다. 애초에 리안에게 <브로크백 마운틴>의 원작과 각본을 건네주고 의향을 물은 사람도 바로 제임스 샤무스다. 구스 반산트와 조엘 슈마허를 거쳐 떠돌던 각본이 드디어 자신의 짝 리안의 손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타이타닉>의 러브스토리를 말할 때, 아니 이런 이성애적 러브스토리가 있다니, 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실은, 우리 포스터도 <타이타닉>의 포스터에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게이라는 말은 우리 영화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제임스 샤무스는 리안과 비슷한 말을 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리안과 더불어, 그의 오래된 친구 제임스 샤무스에 의해 탄생된 것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리안 감독 [3]Like

글 : 정한석 | 2006-03-03 Share it  페이스북  트위터 |  글자 크게  글자 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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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행간과 고백의 어휘



리안이 작가보다는 장인으로서 설명되는 이유는 주로 그에게 미학적인 어떤 구조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그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리안의 영화적인 풍부함은 비밀과 상실이 어떻게 전달되는가에 달려 있다. 그것은 ‘고백과 침묵’으로 드러난다. 리안의 영화에는 언제나 이 두 양면의 순간이 들어 있다. 왜 아닐까. 비밀은 고백하거나 침묵하거나 해야 하는 것이고, 상실은 뱉어내거나, 마셔버리거나 해야 한다.








리안의 영화는 명확한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더 특이한 건 영화를 주의 깊게 볼 때만 이 공백들을 눈치 챌 수 있게 되어 있고, 만약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그냥 아귀가 맞고 의문은 없어 보이도록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이 대중영화 안에서 리안의 실력이다. 예를 들어, <와호장룡>에서 관객은 왜 리무바이가 수련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가 청명검을 버리려는 이유도 분명치는 않다. 푸른 여우는 “살을 섞은 사이임에도 비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사부를 욕하지만, 그녀와 사부가 어떤 관계였고, 푸른 여우가 사부를 어떻게 죽였는지는 영화상으로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그 외에도 관객이 모르는 것은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영화는 정서의 끈을 따라 흘러가며 궁금증을 잠재운다.



(다음은 <브로크백 마운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내용)에니스는 어느 날 반송되어 돌아온 엽서를 받는다. 거기에는 수신자 사망이라는 믿지 못할 사실이 적혀 있다. 영화 속에서 잭이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에니스와 잭이 마지막으로 간 브로크백에서의 순간이다. 거기서 잭은 “너는 나를 가끔 만나는 친구로만 생각하지만, 나는 너를 20년 동안이나 기다렸다”고 말한다. 그 뒤로 잭의 모습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으며, 죽었다는 소식만 들린다. 잭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소설 브로크백 마운틴이 뉴요커지에 실린 다음해 메튜 셰퍼드라는 와이오망 대학의 22세 게이 청년이 술집에서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한 일이 있었다. 잭의 죽음을 그것과 연관해서 생각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리안은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잭이 죽는 장면을 찍긴 했지만 넣지 않았다고 말한다).



에니스는 잭의 부인 루린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자신이 낚시 친구 에니스라고 말한다. 루린은 차 타이어가 펑크나 거기에 맞고 잭이 죽었다고 냉랭하게 설명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가 브로크백이라는 곳에 묻히고 싶어했지만 어딘지 몰라 화장했고, 절반의 유골은 그의 부모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에니스는 잭의 부모를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20년간 잭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징표를 발견하고는 집에 갖고 온다. 어느 날은 딸이 찾아와서는 결혼을 할 거라고 말한다. 에니스는 정말 그 남자가 너를 사랑하냐고 묻는다.




<아이스 스톰>



<와호장룡>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에니스에게 잭과의 관계를 캐묻지 않는다. 영화는 누구에게도 그런 대사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알고 있다. 루린과, 잭의 부모와, 심지어 찾아온 딸까지 그들은 모두 알고 있는 것 같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말하지 않으면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영화 속에는 어떤 순간들이 있다.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을 가로막는 그 절실한 상실에 대해 인식하게 되는 순간들. 에니스가 이혼했다는 말을 듣고 기뻐 찾아온 잭, 그와 만날 때 에니스는 한순간 저 멀리 지나가는 하얀 트럭에 눈길을 준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한 장면이지만, 그게 에니스의 침묵의 이유다. 그는 그 차를 타고 가는 주민이 자신과 잭의 관계를 의심할까 두렵다. 그런 세상의 편견을 이길 자신이 없다. 사랑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에니스는 영화의 마지막에 잭에게 “맹세한다”고 말한다. 사랑했다고 말하지 않고 맹세한다고 말한다. 무엇을 맹세한다는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그 의미에 있기보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에니스의 태도다. 잭이 사랑하는 방식이 언제나 구애였고, 마지막조차 20년 만의 슬픈 고백을 남기고 떠난 것이었다면, 에니스가 약속하는 사랑의 방식은 말해야 할 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다. 리안의 영화가 스토리텔링의 많은 부분을 속으로 삼키며 정서를 내뱉듯이, 영화 속의 에니스도 그렇게 한다.



그런 점에서 리안은 아주 독특한 방식을 갖고 있다. 리안에게는 ‘영화적 형식’이 없는데, ‘영화적 공기’는 있다. 만약 그 말이 과장이라면 영화적 형식의 독창성 없이 정서를 유지할 줄 아는 신기한 면을 지니고 있다. 그게 리안을 더 주목해서 봐야 할 이유다. 리안은 진정한 어떤 작가의 경지만큼 이르지는 못하지만, 늘상 자기 자장 안에서 인물을 살아 있게 한다. ‘형식’이 없는데, ‘순간’이 있다는 건 아무래도 침묵과 고백에 관계된 리안의 특징이다. “맹세할게”이 말은 다시 새겨도 모호한 말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엔딩은 그렇게 뭔가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리안의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 자연과 문화, 사회와 개인, 이성과 감성 등 수없이 많은 대립물을 세워놓고 시작하지만, 마지막은 거의 언제나 이렇게 사이 어딘가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거의 한 가지 약속이 있다. 슬프고 어쩔 수 없지만 살겠다는 것이다. 삶은 힘겹지만 지속된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그 마지막 말을 던진다.




원작과 영화 사이



소설 첫머리 나이먹은 에니스의 회상으로 이야기 전개




<브로크백 마운틴>이 포함된 단편집



<브로크백 마운틴>은 <쉬핑 뉴스>로 퓰리처상을 받은 바 있는 애니 프루의 30쪽짜리 동명 단편소설이 원작이며, 1997년 <뉴요커>에 실린 작품이다. 애니 프루는 높아진 영화의 인기 덕에 인터뷰 공세에 시달려야 했고, 급기야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인터뷰 사절’의 뜻을 표명할 정도였다. 질릴 정도로 반복했던 인터뷰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략 이렇다. 먼저 영화에 대해서는 “큰 충격이었다. 나는 제작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18개월 동안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거의 알 수 없었다. 좋게 나올지 나쁘게 나올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9월에 본 영화는 놀라웠다. 영화를 보는 순간 내가 공들여 만들어냈던 인물들이 새롭게 내게 되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두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도 “제이크 질렌홀이 연기한 잭의 경우 내가 생각했던 촌스러운 이미지와는 좀 달랐지만 감수성을 풍부하게 보여준 것 같다. 히스 레저는 내가 생각했던 소설 속 인물과 꼭 맞을 뿐 아니라 소설의 묘사를 뛰어넘은 연기를 성취해냈다”라고 평했다.



그렇다면 영화는 원작을 어떻게 각색했을까? 영화는 원작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몇 가지 점에서는 탈피를 시도한다. 젊은 시절의 에니스와 잭이 브로크백에서 처음 만나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에 반해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는 소설의 첫 번째 장에는 이미 늙어버린 에니스의 모습이 등장한다. 간밤에 잭의 꿈을 꾸고 나서 마음 설레는 에니스. 그 뒤로 이야기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에니스와 잭이 처음 정사를 나누는 순간, 에니스와 엘마의 결혼 생활, 4년 만에 다시 만나 사랑을 이어가는 것 등 긴 플래시백이 이어진다. 에니스와 잭이 브로크백을 떠나 각자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슬퍼하며 싸웠던 장면을 한 문장으로 처리한 소설에 비해 영화는 그 장면을 좀더 비중있게 다뤘고, 잭의 부인 루린의 모습이 전화 한통화로 묘사되는 소설에 비해 영화는 그녀의 역할에 좀더 힘을 실었다. 영화는 소설보다 잭의 부분을 다소 늘렸는데, 그럼으로써 두 인물의 세월을 ‘병렬’로 전개시키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리안 감독 [4]Like

정리 : 권민성 | 2006-03-03 Share it  페이스북  트위터 |  글자 크게  글자 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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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인터뷰는 www.indielondon.co.uk, www.afterelton.com, www.blackfilm.com에 나온 리안 감독 인터뷰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이 작품이 영화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나.


=거의 4년 전이었다. 나는 프로듀서 제임스 샤무스가 내게 추천해준 애니 프루의 소설과 대본을 읽었다. 30쪽의 소설을 읽은 순간 숨이 막혔다. 특히 주인공 중 하나가 “우리가 가진 건 브로크백 마운틴뿐이야. 모든 게 거기서 시작된 거야”라고 했을 땐. 결말 즈음에는 내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여태껏 한번도 본 적 없는 미국의 리얼한 시골 생활을 다룬 매우 독창적인 작품이었다.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홀을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나는 20대 초반의 젊은 배우들을 원했다. 그들이 20년 전과 후를 연기하기에 더 낫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최고였기에 선택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레저는 웨스턴적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그는 좀더 남성적이고 수심에 잠겨 있지만 상처받기 쉽거나 화를 폭력적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그는 전문 코치에게 사투리를 배웠는데 빨리 적응해서 문제가 없었다. 질렌홀의 경우 로맨틱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 캐스팅했다. 질렌홀이 <투모로우>의 프로모션차 일주일간 떠나 있어서 우리는 그를 좀 기다려야 했다. 나는 다른 배우들을 봤으나 더 젊은 배우들에게 젊음의 순수함을 이용해 나이든 역할까지 맡기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서로 매우 달랐고 그래서 축복이었다. 멋진 커플이라고 생각한다.



-주연배우들이 키스신을 찍을 때 히스 레저가 제이크 질렌홀의 코를 거의 부러뜨릴 뻔했다는데.


=그렇다. 내가 좀더 열정적인 키스를 하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나는 배우들에게 여자와는 그런 격렬한 키스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가장 대담한 웨스턴식의 키스를 퍼부으라고 말했다.



-에니스가 캠프장에 도착한 뒤 잭이 그 앞에 나타나 말한다. “어디 갔었어? 하루 종일 양 치고 오느라 배고파 죽겠는데 여긴 콩밖에 없잖아!” 이 장면은 마치 1960년대 부인이 남편에게 하는 대화 같다. 멋진 장면이다. 그들의 관계를 위한 토대를 놓을 생각이었나.


=그렇다. 그 장면은 매우 민감한 작업이 필요했다. 장면이 이어지면서 그것은 점점 섹스를 향해 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함께 사는 파트너이고 누군가 요리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배경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로맨스 외에 주안점을 둔 부분은.


=훌륭한 로맨스는 거대한 장애물과 매끄러운 구성이 중요하다. 로맨스와 사랑은 추상적인 아이디어이자 환영이다. 나는 구성을 짜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장애물들이 그들의 로맨스를 돕도록 만들었다. 그것이 상상하기 편하고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한다. 그들은 매우 남성적이지만 로맨스는 부드럽다. 그들의 혼합은 매우 재밌고 신선하며 사랑이 무엇인지 더듬어 나가기 편하게 만들었다.



-<결혼 피로연>과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최고의 동성애 영화를 만든 감독이란 평가까지 듣는다. 사람들이 당신을 동성애 영화감독이라고 판단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결혼 피로연> 이후 게이와 레즈비언, 가족 드라마 등의 연출 의뢰가 쏟아져 들어왔다. 내가 최고의 동성애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내가 동성애 영화를 만들었는지 아닌지도 혼란스럽다. 동성애를 다룬 두 영화(<결혼 피로연>과 <브로크백 마운틴>)는 내게 다른 의미다. 전자는 내가 늘 접해온 가족드라마다. 내가 자라면서 본 중국의 가족드라마에는 동성애 문제가 나타난다. 나는 왜 <결혼 피로연>이 대만에서 크게 히트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게 수용된 것일까 생각해봤다. 그전까지 어떤 남자도 남자에게 키스한 적이 없었는데 그 틀을 깬 첫 영화였기 때문일 것이다. 수천명이 놀라서 헐떡이다 진정하고 영화의 나머지 부분을 보았다. 그들은 그 영화를 좋아했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주류영화다. 반면 <브로크백 마운틴>은 로맨틱 러브스토리가 중심에 있다. 그것은 내게 좀더 깊이 고민할 문제다. 운좋게도 나는 이 영화를 통해 감독으로서 더 경험을 쌓았고, 한 인간으로서도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잭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에니스가 잭의 부인 루린에게서 전화로 듣는 장면이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실치 않은 부분인데 어떻게 봐야 하는가.


=루린은 화가 잔뜩 났고 별로 말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녀는 브로크백 마운틴에 가본 적도 없고 완전히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에니스의 관점에서 상상하는 수밖에 없다. 그가 어렸을 때 겪은 나쁜 기억를 떠올린다면 이해는 좀더 명확해질 것이다.



-앤 해서웨이는 흥미로운 캐스팅이다. 그녀의 매력은 무엇인가.


=그녀에게 마지막 장면, 즉 화가 나면서도 미묘한 질투심을 표출시키는 전화 대화 장면의 리딩을 시켰다. 그녀가 인상적이고 정확한 리딩을 해서 매우 놀랐다. 오디션에서 그녀는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머리와 화장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난 <프린세스 다이어리>를 보지 않았는데, 나중에야 그녀가 <프린세스 다이어리2>를 찍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영화가 당신의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어디쯤 속해 있는가.


=가장 편한 영화다. 나는 이전의 두편 때문에 완전히 녹초가 돼 있었다. 내 경력을 쌓는 데는 도움이 됐겠지만 <헐크> 때는 몸이 완전히 망가졌다. 나는 오랫동안 영화를 찍지 못하거나 은퇴해야 했을 정도다. 제한된 관객을 타깃으로 한 저예산영화를 만드는 것은 내게 마치 치료 과정과도 같았다. 나는 영화를 만들면서 우울할 틈도 없었고 사랑하는 기분에 취해 있었다.



-영화 만들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떻게 시대를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였다. 이 영화는 서사극이지만 인생의 짧은 단편이기도 하다. 사건은 매우 빨리 일어났지만 20년의 흐름을 다룬 만큼 드라마틱하기도 해야 한다. 감독으로서 시대 문제를 건드리려면 디테일이 중요하다. 연기의 디테일과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방식 등 작은 것들간의 격차를 채우는 것, 그리고 남성적인 웨스턴 장르와 웨스턴의 생활 방식을 동성애 이야기와 엮어야 하는 점이 힘들었다.



-다음에 준비하는 작품은.


=뭔가 중국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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