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크랩/사람사진

신경숙 - 한 시절의 순수를 찾아서 자기 자신을 소모해버린 끝의 긍정

by 내오랜꿈 2007. 11. 22.
728x90
반응형


신경숙 - 한 시절의 순수를 찾아서 자기 자신을 소모해버린 끝의 긍정
<채널예스> 정혜윤 PD의 그들은?

출처 : <채널예스> 2007년 11월 22일 


지난주 서산으로 철새 투어를 갔을 때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세계적인 희귀종 노랑부리저어새도 아니고 곧 순천만이나 이즈미로 날아가기 위해 잠시 쉬고 있는 흑두루미도 아니고 야행성이라 해질녘에 기가 막힌 군무를 펼친다는 수십만 가창오리 떼도 아니었다. 정말 보고 싶었던 것은 반짝거리며 일렁이는 물결 위에 놓여 있는 철새들의 풍경 자체였다. 반사된 모습에서 세계는 두 배나 아름답다고 말한 것은 누구였을까? 창공의 달은 물결의 달을 찬미한다고 말했던 것은 누구였을까? “하늘의 달이 아름다운가? 물에 비친 달이 아름다운가?” 그 질문의 깊이를 헤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수십만 킬로미터를 날아온 철새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철새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반사하는 물을 사랑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이다. 긴 목으로 서로가 서로를 홀린 듯이 바라보는 그 상호 찬미의 세계야말로 우리가 부르다 목이 멜 그 세계가 아닐까? 하지만 단순한 반사나 투영보다는 훨씬 복잡한 인간 세계에 사는 우리가 한 시절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을 호출해야 할 때는 약간의 몽상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런 순간의 몽상의 힘은 바로 한 시절과 그 시절의 사람들에게 지독할 정도로 순수성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그것만이 한 시절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찾아내 적합한 지위를 찾아줄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여러분에게 소곤소곤 이야기해주고 싶은 신경숙의 모습은 바로 그런 모습이다. 한 시절의 순수를 찾아서 자기 자신을 소모해버린 끝의 긍정. 자리매김.


신경숙이 20대 후반 30대를 넘어설 무렵 잠 못 이루고 고민 끝에 전화해오는 사람에게 “내 말 좀 들어봐!” 이렇게 말하면서 읽어주던 시는 미당의 <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이다.

「그 애가 샘에서 물동이에 물을 길어 머리 위에 이고 오는 것을 나는 항용 모시밭 사잇길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동이갓의 물방울이 그 애의 이마에 들어 그 애 눈썹을 적시고 있을 때는 그 애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갔지만 그 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조심해 걸어와서 내 앞을 지날 때는 그 애는 내게 눈을 보내 나와 눈을 맞추고 빙그레 소리 없이 웃었습니다. 아마 그 애는 그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을 수 있을 때만 나하고 눈을 맞추기로 작정했던 것이겠지요.」 (『미당 시전집 1』)

그녀를 만나고 며칠 뒤 서울에 첫눈이 왔고 그 눈을 맞으며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던 나는 젖은 몸으로 귀가해 내 몸무게만큼이나 무거운 명주솜 이불을 뒤짚어쓰고 『미당 시전집』에서 이 시를 찾아 읊어보았다. 읽다 보니 신경숙의 느릿느릿 조용조용한 말투랑 하도 잘 어울려서 웃음이 나왔다. 아마 물동이의 물을 딱 한 방울 엎질러서 누군가 너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단지 그것뿐인 거라고 납득시켜주는 그 순하고 느린 말투.

신경숙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단절이었다. “인생이 단절될 때마다 책이 있었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책의 의미는 그 순간에는 지구상에서 오로지 한 단어로만 대체될 수 있다 “자존심!” 마음속의 순결한 빳빳한 자존심. 그러나 그 단어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만 다른 이름을 가질 수 있다. “존엄성”으로. 단절을 견뎌내는 자존심은 어느 한 시기 한 인간의 존엄성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뿌리깊은 소외와 단절을 겪으면서도 헤아릴 수 없는 거리와 도저한 시간을 헤치고 오늘 나를 방문해서 나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들 속에는 그들의 영혼이 스며있다고 생각했다.」 (신경숙, 『바이올렛』 저자 후기 중에서)

마을에서 가장 마당이 넓고 우물이 있던 집에 살았던 신경숙의 어린 날의 독서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은 셋째 오빠였다. “나는 시골 아이였고 남자 형제 많은 집안의 여자 아이라 해야 될 일이 참 많았어요. 상추도 뜯어야 하고 해지면 또랑에 가서 걸레도 빨아야 했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책만 읽고 있으면 엄마가 심부름을 안 시켰어요. 그래서 처음에 책 읽는 시간은 엄마가 나를 간섭하지 않는 시간으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우리 집엔 책이 없어서 셋째 오빠가 빌려오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들 때문에 오빠가 나를 미워하게 되었지요. 내가 자꾸 책을 갖고 사라지니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어공주』였어요. 고동색이었는데 오빠를 피해서 헛간에 가서 읽었는데 너무나 슬픈 거예요. 정말 철철 울었어요. 인어공주가 혀를 잘리고 발을 얻게 되었을 때 울었죠.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는 건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을 겪는 발걸음으로 가는 거구나 생각했죠. 인어공주의 고통스러운 걸음걸이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마지막에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기회가 생겼는데 그러려면 언니들이 구해준 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찔러야 하는데 못 하는 거죠. 공기의 딸로 허공에 흩어지는 물방울의 이미지가 기억에 남았어요. 안데르센 참 나빠요. 어린애들이 감당하기엔 비극적인 세계관을 담고 있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 존재를 알린다는 게 그렇게까지 힘든 일일까? 생각하다가 방안에 들어가 천장의 벽지를 오려 가지고 그 책을 숨겨 놓았어요. 그리고 그걸 다 읽을 때까지 끝내 오빠에게 주지 않았죠. 셋째 오빠랑 그만큼 책 읽기의 쟁탈전이 심했어요. 나는 그 오빠가 작가가 될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 법학도가 되더라고요. (그 오빠는 훗날 그녀가 묵던 공단의 외딴방에 올라와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문학 대신 검사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고 말하면서 매일 매일 최루탄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걸로 묘사된다.) 그 오빠 고등학교 때, 난 중학생이었는데 책상에 가보면 황동규의 『삼남에 내리는 눈』, 정현종의 『고통의 축제』 같은, 시골에서는 볼 수 없는 시집들이 있었고 그 시집을 펼쳐보면 구절구절마다 깨알같이 자기의 느낌을 적어 놓았었어요. 그 오빠 어깨 너머로 난독을 시작했어요.”

자전거를 타고 아침마다 볼이 빨개져서 중학을 다니던 신경숙의 시골 여학생 시절, 책에 관한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런 것이다. “도서 대여점 같은 게 학교 앞에 있었어요. 한 번은 책을 빌려서 읽다가 그 책을 갖다 줄 시기를 놓쳤어요. 우리 집에 커다란 감나무 고목이 있었는데 거기서 기대 읽다가 고목 구멍 안에 책을 놔둔 거예요. 그런데 그날 밤 비가 너무 너무 와서 그 책이 다 젖어버려서 반납을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학교 앞 그 집을 피해 다니느라 오 분이면 갈 학교를 뺑뺑 돌아다녔어요. 책값을 물어주면 된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그때 어린 마음에도 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어떤 것이란 느낌이 있었던 걸까요? 덕분에 고생 무지 했죠.” 그 어린아이가 자기 돈으로 첫 책을 사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그만큼의 단절된 시간들이 아슬아슬하다. 그 단절된 시간들을 거쳐 서울의 종로서적에서 이 책을 살까 저 책을 살까 자기가 가진 적은 돈을 자꾸만 헤아려보는 손길을 생각하면 나 또한 그녀의 마당에 있었다던, 그녀가 소중한 것을 다 감춰뒀다는 우물 같은 눈을 하고 어쩐지 어딘가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

「열여섯의 나, 모내기가 끝나던 마지막 날 밤기차를 타고 쇠스랑을 삼킨 우물이 있는 집을 떠난다. 마을의 끝은 철도이고 그 건너에서 아버진 상점을 하고 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드리고 버스를 타고 나오라한다. 아버지 나 가요! 열여섯의 나는 아버지에게 제대로 작별인사도 못하고 버스에 오른다. 얼른 버스 뒤로 가서 차장으로 바깥을 내다본다. 아버지가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실루엣만 우두커니 서 있다. 직업훈련원은 구로공단 입구에 있다. 직업훈련원 운동장에서 열여섯의 나와 열아홉의 외사촌이 엄마와 작별을 한다. 엄마의 큰 손에 내 손이 쥐어진다. 엄만 나를 잡고 있지 않은 다른 손바닥으로 외사촌의 손바닥에 천 원짜릴 쥐어준다. 배고플 때 곯지 말고 야구르트 사 먹거라.」 (신경숙, 『외딴방』)

열여섯의 나이에 오디오 생산공장 스테레오과 A생산 라인의 1번이 된 하루 일당 7백 원 그녀, 외딴방에서 네 명이 자느라 생긴 그 시절의 버릇 때문에 아직도 반듯이 누워 자는 그녀, 공장에서 일한 덕에 어지간한 소음에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게 된 그녀, 큰오빠가 누군가 나를 일 년만 도와준다면 어떻게든 열심히 해볼 텐데, 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며 자기의 책들을 바라보다가 방위의 몸으로 가짜 서울대생 흉내를 내느라 가발을 쓰고 학원 강사 일을 하러 나갈 때 ‘왜 나는 그의 누나가 아닌지’ 발을 동동 구르던 그녀, 79년 1월에 영등포여고 산업체 특별학급 교복을 맞춰 입고 고향에 내려가 자랑하던 그녀, 79년 3월 어느 날 오후 다섯 시에 신길동의 영등포여고 일 학년 사 반이 되어서 석양의 운동장에 서서 입학식을 하고 애국가를 들으며 눈물짓던 그녀, 학교에 계속 다녀야 하므로 노조를 탈퇴했던 그녀. 그 단절된 시간 속에서 인어공주의 시간을 잃은 그녀는 사람을 하나 만나 책을 다시 만나게 된다.

“주산이나 부기를 가르치는 학교라서 내가 배우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어서 학교를 가지 않았더니 선생님이 찾아왔어요. 그리고는 일단 학교에 나오고 사흘 뒤에 반성문을 써오라고 했죠.”

반성문을 쓰느라 처음으로 대학노트를 사던 그날에 대해서 신경숙은 『외딴방』에서 이렇게 쓴다.

「반성문을 다 읽은 선생님이 말한다. 너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떻겠니? 그는 다시 말한다. 주산 놓기 싫으면 안 놓아도 좋다. 학교에만 나와. 내가 다른 선생들에게 다 말해놓겠어. 니가 하고 싶은 걸 하거라. 대신 학교는 빠지지 말아야 돼. 그는 내게 한 권의 책을 건네준다. 내가 요즘 최고로 잘 읽은 소설이란다, 표지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고 씌어 있다. 열일곱의 나, 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가지고 다닌다. 어디서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는다. 다 외울 지경이다. 이제 열일곱의 나는 컨베이어 위에서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노트에 옮기고 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고. 선생님이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 대신 시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으면 나는 시인을 꿈꿨을 것이다. 그랬었다. 나는 꿈이 필요했었다. 내가 학교에 가기 위해서, 큰오빠의 가발을 담담하게 빗질하기 위해서. 공장 굴뚝의 연기를 참아낼 수 있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노조원들은 잔업 거부를 하는 동안 그녀는 빈 공장에서 수치와 단절의 시간을 견디느라 컨베이어 벨트 위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올려놓고 필사를 한다.

“우리 학교엔 수업 시간마다 헤겔을 펼쳐놓는 아이가 있었어요. 읽지 않고 그냥 펼쳐만 놓는 거죠. 나중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죠. ‘이 책을 읽고 있을 때만 내가 너희들하고 다른 것 같아. 나는 너희들이 싫어!’ 그 아이도 뭔가 견딜 게 필요했던 거죠. 내가 선생님을 만났을 때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 사람을 도시에서 처음 만난 셈이에요. 그 선생님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일은 참 좋은 일 같아요. 머릿속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내가 뭘 하면 제일 좋아할까를 항상 생각하게 되잖아요. 어려서 어머니가 나를 간섭하지 않았던 것 때문에 책을 읽게 된 것에 비하면 당시의 책 읽기의 이유는 너무나 다른 거였죠. 하지만 내 환경이 실제로 그렇게 달라진 거죠. 『인어공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처럼. 시골에서 도시로 오면서 생긴 단절. 평범치 않는 청소년기를 보내는 단절. 그걸 건너오는 데 책이 필요했어요.”

헛간에서 컨베이어 벨트까지 이어진 난독의 덕분으로 혼자 치르는 체력장에서 윗몸일으키기를 고작 열한 개 하고도, 학력고사 점수 136점을 받고도, 신경숙은 “꿈”이란 주제의 작문 시험에서 만점을 받아 서울예전의 대학생이 된다. 대학생이 된 그녀는 큰오빠에게 축하 선물로 삼성출판사의 한국 문학전집 60권을 받아 읽는다. 그러고도 그녀는 차마 대학생이 되지 못 해 처음 몇 달간은 교문 앞에서 발걸음을 돌린다. 그녀가 살던 그 외딴방과는 너무나 다른 환경. 또 한 번의 단절이라고 그녀는 표현한다.

“또 너무 다른 환경으로 나온 거죠. 명동이란 공간 속으로 나오니 너무나 밝고 화사해서 섞이기 뭐한 느낌이었어요. 곁에서 아무리 데모를 하고 있어도 나에겐 화사한 세계인 거죠. 우리 외사촌이 남영동 동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거기 있던 산울림 다방에서 책을 읽으며 외사촌 퇴근 시간만 기다렸어요. 하루는 외사촌이 마구마구 화를 내더라고요. 자기도 진짜로 대학생이 한 번 돼보고 싶다고. 그러다가 오규원 선생님을 만났어요. 당시 선생님의 나이가 지금의 나와 같은 나이였지요. 선생님이 칠판에 스무 권의 책을 필독서라고 적어줬어요. 이를테면, 바슐라르의 『몽상의 시학』이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아드로노의 미학책, 함석헌의 『뜻으로 보는 한국사』 같은 것들이었어요. 20대 때 이 책들이 정말로 많은 역할을 했어요. 특히 바슐라르의 경우, 인간을 내 식대로 접근해서 해석할 길을 마련해준 느낌이었어요. 기존의 나와는 다른,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어요. 20대 들어가기 전 몇 년간 봤던 풍경과는 또 다르다는 의미에서 단절을 다시 한번 겪는 거죠. 『난쏘공』을 읽다가 미학이나 문장론의 세계로 가는 건데 슬프면서도 매혹적인 세계였어요. 나한테 소중한 어떤 것을 놔두고 문을 살짝 닫아놓고 다른 데로 가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아련하게 느끼던 흔들림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바슐라르의 글들도 다른 세계 속에 있다가 만나게 되었던 것이라서 꼭 기쁘게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점점 시대가 보였어요. 내가 『몽상의 시학』을 읽던 때 책 바깥의 현실은 암울하니까 야릇한 괴리감은 계속되었어요. 책을 읽으면서 현실과 괴리감을 느끼기도 하고 괴리감을 극복하기도 하고.”

바슐라르의 『몽상의 시학』에서 그녀가 매료되었다던 문장은 무엇이었을까? “놓쳐버린 추억은 필요 이상으로 고약하다. 그것은 삶을 꾸며내기 위해 끊임없이 말한다.” 이런 문장이었을까? 아니면 “물의 존재를 입증하는 가능한 유일한 증거, 가장 설득력 있고 가장 내밀하게 진실한 증거 - 그것은 목마름이다.” 이렇게 인간의 욕구와 세계를 연결시키는 문장이었을까? 나는 알고 싶다.

어쨌든 그 시절은 그녀가 최초로 그녀 돈으로 책을 사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그녀는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중국인 거리』『엄마의 말뚝』 등을 사 모은다. 또한 그 시절은 데모대에 쫓기던 그녀가 세종서적 안으로 숨어들어가 300원을 주고 프란시스 잠의 시집을 사던 시기이기도 하다. 프란시스 잠의 시집 『새벽의 삼종에서 저녁의 삼종까지』의 서문이야말로 그녀에게 저만큼 멀리 있던 문학을 곁에 두게 하는 위로와 다독임의 손길이었다.

「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는 괴로워하고 사랑하나이다. 나는 당신이 주신 목소리로 말했고 당신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게 가르쳐주시고 또 그들이 내게 전해 주신 말로 글을 썼습니다. 나는 지금 장난꾸러기들의 조롱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는, 무거운 짐을 진 당나귀처럼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인터뷰 장소에 프란시스 잠의 시집을 들고 나와서 ‘자 내가 여기 있나이다’를 복잡한 감정으로 읽어 주었는데 그녀의 그런 태도는 『바이올렛』의 저자 후기의 그 문장 “뿌리깊은 소외와 단절을 겪으면서도 헤아릴 수 없는 거리와 도저한 시간을 헤치고 오늘 나를 방문해서 나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들 속에는 그들의 영혼이 스며있다고 생각했다.”를 다시 한 번 떠오르게 했다. 그녀의 그 문장의 뒷문장은 바로 프란시스 잠의 ‘내가 여기 있나이다!’가 되는 것이다. ‘나를 방문하는 것들’을 밀쳐내지 않고 받아들이는 그녀를 웃게 하고 싶어서 집에 돌아와 프란시스 잠의 시집을 뒤적거렸는데 나라면 절대 놓치지 않을 시가 눈에 들어왔다.

「내 눈앞에 다시 떠오르는 제비처럼 검던 네 머리
너처럼 아름답던 네 눈, 도톰하던 네 입
우린 웃었었지, 그리고 네게 난 이렇게
말했었다. - 넌, 이끼 위 당나귀에 올라탄
모습을 그린, 뮈세 시집 속의 오래된 삽화 같아.
그러자 넌 날 껴안았고, 네 높은 웃음의 몸 떨림과
함께 우리의 입술들은 서로 맞붙었지. 그리고
우린 다시 떨어져 얌전한 몸가짐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넌, 내가 그 옆에 놓아둔 내
큰 차양 모자 위에 내가 무심코
던져 놓은 글라디올러스의 긴 잎새를 바라보던 것이었다.」
- 프란시스 잠의 <플라타너스 낙엽이 하나> 중에서

(이 장면은 플라타너스 낙엽이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정원의 꽃들을 생각하고 그 길가에 서 있던 소녀를 생각하고 오래전 소녀가 이제 낙엽처럼 나이 들어갔음을 안타까워하다가 결국은 그녀의 새침한 입맞춤 장면을 생각해내는 장면 정도 될 것 같다. 그 시절의 소녀들은 먼저 도발적으로 입을 맞췄으면서도 잠시 후엔 옆자리의 글라디올러스 꽃을 새침하게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소녀들은 영악하게도 향정신성 의약품이 된다.)

“대학 졸업하고 나서는 취직도 안 되니까 남산 시립도서관에 매일 다녔어요. 그때의 독서스타일은 일이 년 정도 기간에 특정 작가의 책을 다 읽어보는 식이었던 것 같아요. 이청준의 책을 다 쌓아놓고 읽었고 서정인, 오정희. 박완서 이런 작가들을 전작으로 읽기 시작한 거죠. 지금도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방법을 권해요. 어떤 작가 책을 모두 다 읽어보길 권한다고요. 그럼 어떤 한 작가의 한 세계가 나의 핏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 거예요. 한 편씩 읽을 때랑 확실히 달라요. 그 무렵엔 나도 이젠 작가가 되어야겠단 생각이 있어서 낯선 단어들이 나오면 노트에 적어보고 찾아보고 소사전을 만들어 보기도 했어요. 졸업하던 해 한국일보 신춘문예 최종심까지 오른 게 크게 힘이 되어서 입시 공부하는 애들이랑 같이 하룻밤에 천 원씩 하는 독서실에서 이희승 국어사전을 베고 잠자다가 글 쓰다가 했죠. 한 줄 쓴 날도 있고 몇 장 쓴 날도 있고. 첫 등단작이 『겨울우화』였는데 9월 30일이 마감이었어요. 끝까지 제목이 떠오르질 않아서 우체국에서 국어사전 위에 원고를 얹어놓고 제목을 뭐라 할지 되게 고민했어요. 등단 소식은 바로 이 무렵에 들었던 것 같아요. 은행잎이 엄청 떨어질 무렵이었거든요. 그때 등단하고 나서 새로 생긴 호암아트홀에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데 바닥의 대리석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서 맘속으로 ‘누굴 만나든지 괜찮아.’ 하고 되뇌었던 게 기억나요.”

이 인터뷰 직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오정희 깊이 읽기』에는 그 집안에서 유일하게 흠 없이 반짝반짝 깨끗했던 직사각형의 등신대 거울 앞에서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거울을 업고 돌아다니다가 깨트린 계집애’란 별명을 얻게 된 오정희의 자전적 에세이가 묶여 있는데 그녀의 유년 시절의 독서체험 역시 다락방이 무대였고 그 무대의 소품은 트렁크였다.

「다락을 채우고 있는 온갖 잡동사니 가운데 낡은 가죽 트렁크가 있었다. 그 가방은 내가 태어나기 전 스물두 살 청년이었던 아버지가 만주 생활을 끝내고 귀국할 때 들고 오신 것이라 했다. 삼팔선을 넘고 전쟁을 치렀고 피난살이를 전전하던 역사의 흔적을 새긴 채 늙고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어둑신한 다락의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그것은 심해에 엎드린 늙은 조개처럼 조용하고 주술적으로 보였다. 나는 그곳에 일기와 『오 멀고 먼 나라여』를 숨겨두었다. 나 또한 슬픈 비밀을 간직한 소녀이고 싶었고 홀로 그림자춤을 추는 외로운 아이이고 싶었기에. 그 책에 부여한 나만의 비밀스러운 의미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구절을 읽는데 이상하게 신경숙의 『외딴방』의 우물이 생각났었다.

「내 몸에 감출 수 없는 것들을 나는 우물에 감추었다. 오빠의 하모니카와 엄마의 브로치들, 아버지가 늪에서 잡아온 금빛 나는 붕어나 봄 산에서 따온 진달래 꽃잎들.」

어쨌든 그렇게 등단할 때까지의 늘 불안한 청춘시절이 그녀에겐 책을 가장 많이 읽었던 시기로 기억에 남는다.

“스물두 살에 등단하고 5년 만에 첫 책이 나왔는데 책 제목도 『겨울우화』였어요. 그 책에 내 20대가 다 들어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아마 내가 제일 많이 읽은 책이 바로 내 책 『겨울우화』일걸요! 나도 내 20대가 궁금하면 그 책을 펴보는데 행간에 불안한 청춘을 견디면서 썼던 것들이 다 보여요.”

일 년에 한 번씩 『이방인』이나 『악령』 같은 책을 다시 읽으며 자신의 관점이 어떻게 움직이나를 예민하게 느끼는 그녀는 되는 일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친구들에게는 미당과 백석과 프란시스 잼의 시를 읽어주고 가정용 홈비디오가 처음 보급되던 시절엔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향수>를 보고는 “혼자 보는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이야?”란 말에 매료되어서 그의 책 『봉인된 시간』을 사버리고, 자신을 좀 낮추고 싶을 땐 의도적으로 스콧 니어링 평전을 읽고 새 책을 쓸 때마다 그 분야의 책들부터 쌓아놓고 보는 어쩔 수 없는 독서광이다.

나에겐 『봉인된 시간』 말고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가 있는데 난 이 책을 97년 4월에 교보문고에서 샀다. 그 책을 읽고 처음으로 『거장과 마르가리타』와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가 엄청 좋은 책이란 걸 알았다 그때 내가 그 책에서 가장 좋아했던 문장은 타르코프스키가 헤세를 인용해서 쓴 문장이다. “사람들이 정열이라 부르는 것은 영혼의 힘이 아니라 영혼과 외부 세계와의 마찰이다.” 그 책을 읽은 뒤부터 누가 정열적인지 제대로 살펴보고 다니리라 결심했었던 기억이 난다. 조용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게까지 보이는 신경숙을 인터뷰하는 도중에 그 말이 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혼의 힘이 아니라 영혼과 외부세계와의 마찰이 중요하다는 것. 어쨌든 그날 우리가 박수치며 제일 좋아했던 말은 ‘책이 넘실넘실댄다.’라는 말이었다. 그녀와 나는 악수처럼 그 말을 나누고 헤어졌다.

이제 곧 한 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내 친구는 올 한 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른다고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 친구가 전화를 해온다면 신경숙의 흉내를 내면서 프란시스 잠의 이 시를 읽어주고 싶다

「이제 며칠 후에

이제 며칠 후에 눈이 오겠지. 지난해를
회상한다. 불 옆에서 내 슬픔을 회상한다
그때 무슨 일이냐고 누가 내게
물었다면 난 대답했으리라 - 날 그냥 내버려둬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난해 내 방에서 난 깊이 생각했었지
그때 밖에서 무겁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 오래된 참나무 옷장은 언제나
향긋한 냄새가 난다. 그러나 난 바보였었지
그런 일들은 그때 변할 수는 없었으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들을 내쫓으려는 것은 허세이니까

도대체 우린 왜 생각하는 걸까, 왜 말하는 걸까? 그건
우스운 일이다. 우리의 눈물은, 우리의 입맞춤은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린 그걸 이해하는 법, 친구의
발자국 소린 다정한 말보다 더 다정한 것

사람들은 별들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별들은
이름이 필요없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어둠 속을 지나가는 아름다운 혜성들을 증명하는
수치들이 그것들을 지나가게 하는 것은 아닌 것을

바로 지금도, 지난해의 옛 슬픔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았는가? 거의 회상하지도 못하는 것을
지금 이방에서 무슨 일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리라 - 날 그냥 내버려둬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 프란시스 잠의 <이제 며칠 후엔> 중에서

그러므로 어느 날 별을 꿈꾸던 사람과 혜성을 함께 보지 못했어도 슬퍼할 일은 아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