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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일상

천리길을 뛰어넘는 세월의 무게

by 내오랜꿈 2014.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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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부산에서 천리길을 달려 부부가 아이들 떼버리고 우리 집에 모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친구가 해외 출장길에서 업어온 좋은 술(꼬냑)을 나누기 위해서다. 오랜만에 분위기에 젖어 손에서 술잔을 놓지 않는 밤이다.

  



점심식사 후 나로도 봉래산을 올라 다도해 풍경을 감산한 뒤 나로도항에서 썰어온 자연산 광어회. 죽어서도 제 모양을 유지한 나름의 데코레이션이 꽤나 아름다운 모양새다. 굳이 이렇게 생선 눈을 바라보며 먹어야 하는 게 좀 그렇기도 하고 가격도 녹동 회센터에서 막 썰어 주는 것보다는 비싸기도 하지만 맛이나 식감 등 다른 것들은 모두 맘에 든다.  




비교하자면 이것은 1달 전 우리 집에 온 후배들과 녹동에서 사온 녹동식 막썰어 스타일 생선회. 맛집도 좋지만 요즘은 제철에 나는 것을 사와서 집에서 먹는 게 가장 편한 것 같다. 아마도 나이 들어간다는 증거이리라.



 

한 잔 두 잔 하는 동안 흥이 났는지 아줌씨 하나가 자기도 한 번 해보겠다며 '소맥'을 말고 있다. 수저를 탁탁 쳐서 거품을 만들면 잘 넘어 간다나 뭐라나. 그렇게 밤늦도록 마시며 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보낸다.

 

이튿날은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로 시야가 뿌옇게 흐리다. 하지만 날이 이토록 따스한데, 나들이 하지 않는 것은 봄햇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길을 나선다. 남열해수욕장 가는 길에 잠깐 <남포미술관>에 들렀다.

 



남열해수욕장은 고흥에 귀촌하기 전인 2006년 여름, 오늘 만난 세 가족이 텐트 치고 낚시 하며 함께 여름휴가를 보낸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고흥에 정착하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던 시절의 추억어린 장소다. 아무런 시설물 없이 한적한 시골 오지의 해수욕장 같았던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많이 번잡해졌다. 해마다 공식적인 해돋이 행사가 열리기도 하고, 40억원 가까이나 들인 우주발사 전망대가 생기고부터 예전보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진 탓이다.

 

집에서는 다소 멀지만 지금의 전망대 자리는 울산에 잠시 가 있기 전, 근처에 귀촌한 지인이 살고 있어서 자주 놀러와 산책하며 고사리를 꺽기도 하던 곳이다. 남열 해수욕장은 앞바다가 확 트인 곳인데, 지역 발전을 위한 명분을 붙인다 하더라도 몇십 억 원을 들여 저런 설치물을 꼭 만들어야 했는지 모르겠다. 

 



점심 먹을 때가 마땅치 않은 탓에 동강으로 나가기 위해 바닷가를 따라 드라이브했다. 고흥과 여수 낭도를 연결하기 위한 연륙교 공사가 한창이다. 저 다리 하나 놓는 걸 가지고 고흥과 여수가 자동차로 연결된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낭도와 사도, 사도와 여수 화양면을 연결하는 다리는 아직 설계도 들어가지 않고 있다. 내 살아 생전에 연결되는 걸 볼 수 있으려나? 미세 먼지 탓인가? 스모그인가? 요즘 고흥은 시계가 자주 이렇다.

 



헤어지기 직전의 점심은 동강에서 유명하다는 갈비탕으로 통일. 40년 전통의 유명 맛집이라는데, 일행과 두 테이블로 찢어져서 앉아야 할 만큼 손님이 많다. 예상과 다르게 맑은국이 아닌 연한 빨간국이다.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이후 벌교까지 가서 집집마다 꼬막 한 상자씩 안고 가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 일 년에 몇 번을 1박 2일의 짧은 만남을 위해 천리길을 달려오는 이 정성은 3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가 없다면 아마도 이루어지기 힘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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