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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습/생태환경

썩지 않는 채소?

by 내오랜꿈 2014.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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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어느 모임에서 한 친구가 텃밭에 채소를 기르기 시작했다며 무공해 채소를 먹을 기쁨에 들떠 떠들고 있었다. 그 친구가 여러 이야기를 하다 '농약을 많이 치고 화학비료를 많이 준 채소들은 썩지도 않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자기는 농약을 치지 않는 무공해 채소를 직접 길러서 먹겠다'는 게 그 날 그 친구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전혀 그렇지 않다, 농약을 많이 치고 화학비료를 많이 준 채소가 썩지 않는 게 아니라 자연상태에서 아무런 인공적인 도움을 받지 않고 자란 채소가 더 안 썩는 것"이라고 말했더니 친구들 사이에서 한바탕 논란이 벌어졌었다.


무슨 소리를 하느냐, 당연히 비료와 농약을 많이 친 채소가 안 썩어야지 어떻게 약을 치지 않은 채소가 안 썩을 수 있느냐며 나에게 이구동성으로 질타성 말들을 쏟아냈다. 이런 친구들을 한 방에 조용히 시키고 그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할 고요함을 확보할 수 있었던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너희들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많이 줘서 잘 썩지도 않는 채소를 먹고도 멀쩡한 인간이고 싶냐? 아니면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주지 않았기에 잘 썩지 않는 채소를 먹고 멀쩡한 인간이고 싶냐? 너희들 말대로라면 채소가 잘 썩지 않을 정도의 농약과 화학비료를 흡수했다는 말이 되는데 그런 채소를 먹고도 너희들이 멀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만약, 농약을 많이 치고 화학비료를 많이 줘서 그 농약과 비료의 화학 성분 흡수 때문에 잘 썩지 않을 정도의 채소로 자란 게 있다면, 그 채소를 먹은 인간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야 맞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을까?


난, 이런 '상식적인', 선입견이나 편견에 휘둘린 상식에서 벗어난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경험한 것들을 축적하고 정리해 가면서 사람들이 먹거리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들과, '다 똑같다, 마 대충 아무 것이나 먹고 살자'는 류의 생각들에 태클을 걸며 왜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가에 대해 말하고 싶다. 유기농 농사를 위해 준비하는 재거름 등의 자가 퇴비들에 비닐 한 장, 종이 한 장이라도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왜 피처병이 아니라 무거운 병맥주를 고집하는지에 대해서, 이것이 어떻게 환경, 생태 문제와 연결되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다(촌에 살아 보면 안다. 플라스틱, 비닐 등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농사짓는 땅으로 버려지는지를).


한 발 더 나아가 농사를 지으면서 느낀 것들이나 깨달은 것들이, 지금의 정치상황에 대해서는 아직도 20살의 감성을 가지고 진보적인 정치의식을 자랑하면서 자신의 자그마한 습관과 편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너무나 쉽게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는 우리 일상의 자그마한 모습들과 어떻게 매칭되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이 사진은 토마토를 정리하고 쪽파를 심은 모습인데, 쪽파 사이에 떨어진 방울토마토들이 한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와도 썩지 않고 말라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난 ‘영농일기’라는 걸 쓰고 있다. 2010년부터 쓰고 있으니 4년째다. 뭐, 그렇게 거창한 건 결코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2013년 11월 17일(일),   비(2mm)/맑음,   9~12,   바람 ↑

⦁ 무우 정리(동치미용 35EA, 저장용 50EA, 씨레기 등)

⦁ 무정리밭 굴껍질 뿌리기(석회 보충)

⦁ 완두콩 파종(고추 이랑 고추 사이 300EA)

⦁ 고추 따기(17th.)

⦁ 가지, 호박 정리


이런 정도다. 비가 왔다가 맑아졌고 최저온도는 섭씨 9도, 최고온도는 섭씨 12도, 일강수량이 2mm이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던 날이란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 밑에 적은 것들은 이날 내가 했던 농삿일을 적은 것이리라. 그리고 틈틈이 농삿일을 하다가 느낀 게 있으면 조금 길게 적어두는 정도다. 위에서 말한 에피소드는 2011년 9월 21일 부산 동래에서 고등학교 3학년 반창회 모임에서 있었던 일을 ‘영농일기’ 밑에 간략하게 메모해둔 것을 기초로 약간 살을 붙인 것이다.


어쨌든 이런 ‘영농일기’를 기초로 위의 바람들을 써보겠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당장 목표로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적어도 10년 정도의 데이터는 쌓여야 원하는 만큼의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물론 10년의 농사 경험 뿐만 아니라 그 기간 만큼의 삶 속에서 부대끼는 에피소드들도 쌓여가야 하리라. 바람대로 될지는 모를 일이다.


자,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썩지 않는 채소의 진실은 무엇일까? 단순히 썩는다, 안 썩는다의 문제로 사고해서는 안 되는 문제다. 잘 썩는다는 건 사람으로 치면 몸이 연약하다는 것과 같다. 연약한 몸이 탈이 잘 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약한 채소가 잘 물러지고 잘 썩는다. 이유는 속성으로 자랐기 때문이다. 충분한 시간과 충분한 햇빛을 받고 자란 채소는 하우스에서 속성으로 자란 채소보다는 확실히 씹는 질감이 억세고 질기다. 여기서 농약은 부차적인 문제다. 적어도 잘 썩는다 아니다의 문제에 관해서는 농약이 아니라 비료의 과다 공급이나 하우스 재배가 일차적인 원인이다. 사람들이 부드럽다고, 식감이 좋다고 선호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채소는 하우스 안에서 물과 화학비료의 도움으로 속성재배 되는 것이고 이렇게 속성재배된 채소가 빨리 문드러지고 썩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나 완고한 우리들의 사고방식, 식습관, 편리함 등의 문제와 연관된 문제라 생각한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단순하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는 걸 일직선으로 달려가 답을 구할 생각은 없다. 답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기에. 또 얼마나 오래갈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말 이틀 연속 영하 5도로 내려가는 추위 속에 텃밭에서 보랏빛 새싹을 틔워내는 마늘을 보며 생각했던 걸 기록하다가 내가 아닌 타인의 생각도 가미된 기록을 남겨둘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이 게시판에 몇 차례 시험 삼아 올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곧 여러분은 앞으로 내가 올리는 글에 대한 반응에 한에서는 시험용 '모르모트'가 될 수도 있음을 밝힌다. 모르모트가 죽지 않고 오래 살아남아야 실험은 오래 가는 법이라는 일반적 상식도 부기한다(오늘은 여기까지).


written date : 2013.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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