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일부터 어제까지 18일 동안 비가 내린 날이 15일. 많이 올 때는 150mm까지 퍼붓기도 하고 적게 올 때는 1mm 남짓. 비가 오지 않은 3일도 햇빛이 쨍쨍한 날은 고작 하루, 이틀은 잿빛 구름으로 뒤덮힌 날들. 뉴스만 들으면 마른 장마 어쩌고 가뭄 피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대세였는데, 습한 날씨를 걱정하는 지역도 있다는 사실을 좀 알아줬으면 한다.
오랫 동안 마른 장마에 지친 윗지방 작물들에게겐 버선발로 맞이할 만큼 반가운 비였을 터. 반면에 보름 넘게 비와 습기에 시달린 이곳의 작물들에겐 햇빛이 절실하다.
그 절실한 햇빛을 맞이한 날 아침, 텃밭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점검해 보니 토마토에 '풋마름병'이 번지고 있다. 30여 포기 중 아직까지는 6포기 정도만 증상을 보인다. 풋마름병은 바이러스를 매개체로 하는지라 일단 병이 왔다 하면 방제방법이 없다. 감기처럼. 뽑아낼 수밖에! 그나마 토마토를 제외하고는 다른 작물들은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점을 위안 아닌 위안으로 삼는다.
언제 봤던가 싶은 뜨거운 햇살이 집 안팎을 비추는 고요한 아침. 요란한 소리에 담장 밖을 보니 농약살포용 소형무인헬기가 논바닥 위를 바쁘게 움직인다.
헐~. 무슨 크나큰 평야도 아닌데 헬기씩이나.....
다시 하루가 저물 즈음.
집 앞으로 동네 경운기 몇 대가 약통을 싣고 '탈탈탈' 소리를 내며 왔다 갔다 한다. 관행농에서 경험 많은 농부들의 비 온 뒤 약치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게다. 일년 벼농사의 사활을 좌우하는 문제이므로 농약으로 어떻게든 병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려 애쓰는 것.
이제부터 우리 집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앓이를 시작한다. 바람을 타고 약기운이 우리 집으로 날아들까봐 창문 단속을 단단히 하고, 호스를 타고 허연 거품물이 뿌려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익숙한' 풍경처럼 바라볼 수밖에.
여름이 깊어가는 해질녘.
경운기 엔진소리가 잦아들고, 건너편 도로를 따라 띄엄띄엄 가로등에 일제히 불이 들어온다.
창문을 다시 열고, 우리도 식탁 앞에 앉는다.
일상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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