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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여행

보성 녹차밭 - 잘 꾸며진 '상품'을 감상하다

by 내오랜꿈 2014.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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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여수로 직장을 옮기면서 남도의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잘 알려진 명승지는 물론이고 이름 없는 한적한 포구에 이르기까지. 그 중에서 가장 자주 가본 곳을 꼽으라면 순천만 갈대밭과 보성녹차밭이 아닐까 싶다. 순천만은 내가 특히 좋아하기에 사람들에게 안내하기 위해서고, 보성녹차밭은 나늘 찾아오는 손님들이 가보기를 원해서다.




순천만은 철마다 그 모습이 다르게 다가온다. 지금이야 갈대밭을 가로지르는 산책로가 놓여져 있어 용산전망대까지 편하게 걸어가 순천만의 전경을 볼 수 있지만, 6,7년 전만 하더라도 저 광경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순천만을 찾아오는 사람 백 명 중 다섯 명도 채 안 되었던 시절이었다. 가는 길을 몰라서 못 보던 풍경인지라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이끌고 가느라 손가락으로 세기 모자랄 정도로 가게 되었던 곳이다..




반면에 보성 녹차밭은 찾아오는 손님들, 그 중에서도 친구나 지인들의 아내들이 특히나 가보고 싶어 했다. 바로 이 삼나무 숲길 때문이다. 녹차밭(대한다원 제1차밭) 입구부터 약 1.5KM 정도 이어진 이 삼나무 숲길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데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드라마와 어느 이동통신 광고에 쓰이면서 유명해졌다. 특히 한석규가 나오는 이동통신 광고에 쓰인 그 유명한 광고 카피.


"새로운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이 '카피'의 세로운 세상이 바로 이 삼나무 숲길이었던 것. 그래서 이 시기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녹차밭을 가보고 싶어 했다. 이런 까닭에 녹차밭 역시 손가락으로 헤아리기 힘들 만큼 가게 된 것. 




그런데 보성녹차밭은 10여 년 사이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도 5년 전부터 입장료를 받기 시작한 것.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입장료 없이 무시로 드나들던 곳에 입장료를 주고 들어간다는 게 영 적응하기 힘들었다. 4년 전인가? 1,500원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가보니 1인당 3,000원씩 받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없던 건물도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었다. 이젠 조용한 곳, 휴대폰을 꺼두어도 좋은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이윤추구에 혈안이 된 자본주의적 기업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한여름 녹차밭은 이미 녹차와는 상관없는 곳이다. 찻잎으로 쓰기에는 너무 억세기 때문. 특히나 보성녹차밭의 꾸며진 저 곡선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 대신 카메라를 들이대기 바쁜 관광객들의 눈요기 풍경으로 그 본연의 기능을 대체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오도된 정보를 제공한다. 모든 녹차밭의 풍경이 이러할 것이라고.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지리산 자락의 어느 녹차밭


찻잎을 따서 녹차를 만드는 녹차밭 본연의 기능을 하는 곳의 풍경은 지리산 자락 쌍계사 인근을 찍은 위의 사진 같은 모습이 대부분이다. 각이 일정한 곡선이 아니라 지형을 따라 녹차가 자라는대로 가꾼다. 그리고 대부분 기계가 아니라 아주머니들의 손을 빌어서 한 잎 한 잎 딴다. 그러고 보면 보성녹차밭은 기계로 작업한다는 게 너무나 확연히 드러난다. 잎 뿐만 아니라 잔가지들도 한꺼번에 자르게 된다. 물론 어느 정도 선별이야 하겠지만 그게 손으로 딴 잎들과 비교가 되겠는가? 우리가 마시는 티백 녹차들은 거의 대부분 기계로 작업한 것들의 부산물이다.




이렇듯 나에게 보성녹차밭은 휴대폰도 꺼두게 만드는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내가 매일 부딪치는 너무나 '익숙한 세상'의 모습을 새삼 확인하게 만드는 곳이다. 어쩌면 너무 익숙해서 그런 것일지도...


2014 0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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