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7월 21일, 보스턴 하버드 대학 풋볼 스타디움, 아만들라 페스티발(Amandla Festival). 2만 5천여 명의 관중 앞에서 밥 말리는 노래가 아닌 연설을 시작한다.
"제3세계는 투쟁 중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짐바브웨를 위해 단결해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성들과 아이들도 이 혁명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고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4백 년을 넘겨 온 이 노예상태, 우리는 이 가축우리를 벗어나 우리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라스타파리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중략) 아프리카는 자유로워져야만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어나세요. 이건 삶입니다. 라스타파리!" (스티븐 데이비스, <밥 말리>, pp 408~409)
그러고 나서 밥 말리는 마치 그의 영혼을 머릿 속에 집어넣어려는 듯 이마를 문지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Live at Amandla Festival - Harvard Stadium Boston, 21/07/1979
너무나도 유명한 공연이다. 이미 그의 폐와 뇌, 심장으로 퍼져 가고 있던 암세포와 싸우며 혼신의 힘을 다해 짐바브웨의 독립과 아프리카 인민의 해방을 위한 자선기금 모금 행사 아만들라 페스티발(Amandla Festival)에서의 모습. 그 누구보다 강렬하고 인상적인 투사요 혁명가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아만들라(Amandla)'는 "아만들라 은가웨투!"의 준말인데 짐바브웨 쇼나어로 "민중에게 권력을!"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아프라카의 고난'을 응축하여 보여주는 짐바브웨의 역사 속에서 1979년은 또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낸다. 독립국이던 짐바브웨를 민족들간의 내전과 혼란을 이유로 미국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이 공모하여 영국의 식민지로 복원시키는 사건이 그것이다. 이에 밥 말리는 짐바브웨의 독립을 주장하며 '아만들라' 공연을 기획하게 되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980년 짐바브웨는 독립을 하게 된다. 다만 불행히도 부족들간의 내전은 지금까지 계속되면서 심심찮게 국제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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